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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햇볕 Aug 02. 2024

진단명: 수련 수첩 강박 및 불안증



한때 누군가가 상담사가 되는 것을 가볍게 얘기하면 화가 치밀었다. 

군에서 상담사로 근무할 때 퇴직을 앞둔 원사가 

“퇴직하면 저도 상담이나 할까 봐요.”라고 했다. 


상담이나?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르며 상담사가 되는 과정을 매우 상세히 설명했던 기억이 있다. 

상세한 설명을 들은 원사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서 더는 상담이나 해볼까라고 하지 않았다. 

도대체 상담사가 되는 과정이 어떻길래 원사가 마음을 접었는지 설명하려면 한숨을 먼저 쉬어야 된다. 

긴 여정이기도 하고 돈과 마음과 노력을 지속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담사가 되는 길은 다양하다. 

듣기로 우리나라에 상담 관련 자격증은 대략 800여 종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 국가자격증과 민간자격증을 포함하는데 상담 국가자격증은 청소년상담사가 유일하고 관련한 자격으로는 전문상담교사와 정신건강전문요원이 있다. 


그 외는 전부 민간자격인데 영향력 있는(극히 개인적 기준임을 알림) 민간자격은 한국상담학회와 한국상담심리학회가 있다. 

이 두 학회는 상담 수련 과정이 잘 구성되어 있고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다. 


상담 분야는 방법에 따라 언어상담과 매체상담으로 나누며 내용에 따라 예술치료(미술치료, 음악치료), 몸 치료, 기독상담, 트라우마 상담, 중독상담 등이 있다. 

상담 대상에 따라 아동상담, 청소년상담, 성인상담, 노인상담, 커플상담(부부상담)으로 나룰 수 있다. 


상담 분야가 다양하기에 민간학회도 다양하다. 

나는 한국상담학회, 한국상담심리학회 포함 민간학회가 다양한 것이 중요하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상담”이란 단어만 있으면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상담전문가를 양성하는 규정과 수련이 있고 유지되는 학회로 한정한다. 

상담사 양성에 책임감을 가지고 필요한 수련을 진지하게 진행해서 발급하는 자격증은 신뢰할만하다. 


그런데 매우 많은 자격증 중에는 온라인으로 몇 시간 참여하고 발급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 

이런 자격증은 신뢰하기 어려운데 보이지 않는 마음을 다루는데 몇 시간 공부로 가능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석사 공부를 하면서 한국상담학회와 한국상담심리학회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이란 상담 사례 수퍼비전, 워크숍 참여, 사례발표회 참관, 집단상담 참여와 실시, 학술대회 참석, 심리검사 수퍼비전, 개인분석(상담사가 받는 상담) 등이 있다. 

상담 사례 수퍼비전은 상담 사례를 가지고 수퍼바이저에게(선배 상담사, 교수) 지도를 받는 것인데 개인적으로 지도받는 개인 수퍼비전과 여러 명 앞에서 지도받는 공개 수퍼비전이 있다.

자신의 사례만 지도받는 것이 아닌 타인의 공개 수퍼비전에 참관해야 한다. 

횟수도 여러 번이라서 지도를 받기 위한 보고서 작성을 하고 시간과 비용을 준비해서 받아야 한다. 


다양한 수련은 수련 수첩에 기록을 남기고 이를 자격증 필기시험 통과 후 수련 수첩을 학회에 제출해서 인정을 받아야 면접을 볼 수 있다. 

이런 과정은 1년에 한 번만 기회가 있다. 

그러니까 필기를 준비하면서 수련도 같이 진행해야 했다. 

필기나 수련 수첩이나 면접 한 곳에서 인정이 안 되면 다음 해에 도전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상담학회나 한국상담심리학회 자격증을 따려면 최소 3년 이상이 걸리는 것 같다. 


석사 시절 공부를 하면서 위에 언급한 과정을 밟아나갔다.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했을까 싶다. 

전일제 상담사로 근무하면서 대학원을 다니며 수련을 받고 집에서는 아내로, 엄마로 지냈다. 

나만 이런 상황이 아니었고 동기 대부분이 여러 일을 하면서 힘들게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준비했다. 

상담 수련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알게 되어 조금은 편안해지고 그만큼 상담에서 역전이를 알고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상담은 상담사가 자신을 아는 만큼 상담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알게 되는 과정이 곧 상담 수련 과정이다. 


하지만 수련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대부분의 동기들은 심신이 피곤한 상태로 버티듯 생활했다. 

수련 비용도 만만치 않아 일해서 번 월급으로 수련 비용과 생활을 감당하기는 벅찼다. 

참여하고 싶은 워크숍은 많은데 돈과 시간이 참 부족했다. 

개인분석도 계속 받고 싶지만 역시 돈과 시간이 문제였다. 

수련 과정은 고단했지만 피와 살이 되어 갔다. 







한국상담학회와 한국상담심리학회 자격증 시험이 다가왔을 무렵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는데 대학원 과제와 사례 발표 참관 일정으로 다들 바빠서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대학원 게시판에 누군가 다급하게 적은 글이 보였다. 


“수련 수첩을 분실했습니다. 발견하신 분은 꼭 연락 주세요.”


전화번호와 사례금도 준다고 적혀있었다. 

이 소식은 금방 과 전체에 퍼졌다. 

여기저기서 비명 같은 탄식이 들려왔다. 


수련 수첩을 잃어버리다니!

남 일이었지만 너무 끔찍해서 몸이 떨렸다. 

아등바등 일하며 공부하며 수련한 기록을 분실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다들 가슴 아파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의 수련 수첩은 무사한지 가방을 뒤져 확인했다. 

나도 수련 수첩을 꺼내 보고 또 봤다. 

짙은 남색의 수련 수첩을 꺼내서 꼭 안았다. 

비에 젖을까 수련 수첩을 비닐에 싸서 가방에 넣었다. 

수업 내내 나도 모르게 가방을 힐끔 거렸다. 

수련 수첩에 발이라도 달려서 내가 못 본 사이 가방을 탈출할 것만 같았다. 


우리는 점점 초췌해졌다.

늘 심신이 피곤한 상태이긴 했지만 자격증 시험이 다가오자 긴장과 불안으로 예민해졌다. 

어떤 동기는 수련 수첩을 잃어버리는 악몽을 며칠 째 꾼다며 울상이었다. 

사실 나도 수련 수첩을 잃어버리는 꿈을 꾼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 꿈을 깨기 전에 수첩을 찾았다. 

꿈에서도 얼마나 안도가 되던지 잠에서 깨자마자 수련 수첩을 확인했다. 


수련 수첩은 기록하는 규정도 까다로워서 기록을 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연필로 기록하면 안 되고 볼펜으로 작성해야 하는데 잘못 썼더라도 화이트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해서 잘못 기록하지 않으려고 긴장을 해야 했다. 

수련 수첩은 상담 수련생에게는 애증이었다. 

오죽하면 수련 수첩이 통과된 뒤 나는 수련 수첩을 쳐다보기 싫었다.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하고 책장에 모셔두었다. 

그 수첩을 보면 당시의 긴장과 피곤함, 불안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듯했다. 


대부분의 수련생들은 이런 피곤감에 시달리며 상담 자격 과정을 통과했다. 

그래서인지 자격증을 딴 뒤 안도하는 것이 아니라 억울함과 분노가 많아지는 것 같다. 

내가 어떻게 딴 자격증인데 하는 생각으로 누군가가 “상담이나 할까 봐.”라고 하면 울컥한다.

물론 자격증을 고생스럽게 따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힘들게 통과한다. 

이런 과정은 자신을 이해하는 시간이 되지만 없던 강박증과 불안증이 생기는 것 같다. 

힘들게 딴 자격증이 상담사로서 역량을 증명해주지 못할까에 대한 불안일 수도 있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자격증은 자격증일 뿐인데 자격증이 유능한 상담사임을 증명하는 것처럼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두 학회의 자격증이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을 구분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없는 사람은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치부하면 반대로 자격증이 있는 사람은 준비된, 완료된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도 초심상담사였을 때 이런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참 편협했구나 싶다. 


중요한 것은 자격증이 아니라 상담사로서 끊임없이 배우고 수련하느냐 일 것이다. 

그렇다고 자격증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상담사로서 불안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불안은 현실의 불안과 존재적 불안으로 설명한다. 

현실의 불안은 수련 수첩을 분실했다는 것이고 존재적 불안은 자격증을 땄어도 상담을 잘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다. 

내 존재가 부적절해서 자격증은 땄지만 여전히 상담을 잘 못할까 걱정하는, 두려워하는 마음일 수 있다. 

불안을 통제하고 싶은 마음은 수련 수첩에 투사되어 수련 수첩 작성과 보관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상담사로서 불안은 자격증을 따도 지속된다. 

전문성에 완료란 없다. 

그저 숙달이 되어 갈 뿐이다. 


초심상담사일 때는 석사를 졸업하면, 자격증을 따면, 상담사로 취업을 하면 완료될 것 같은 기대가 있을 수 있다. 

경력이 쌓일수록 그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래서 겸손해진다. 

겸손해지면 마음이 열려서 자격증이 있냐 없냐 구분에 시달리지 않는다. 

그저 나를 포함해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공부를 하고 싶어 진다. 


이런 상태가 되면 상담사란 명칭과 상담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드디어 상담사라고 불려도 수긍이 된다.      


현재 한국상담학회와 한국상담심리학회는 온라인 수련 기록을 수련 수첩과 병행하고 있다. 

온라인 수련 기록이 생겼으니 수첩 관련 강박과 불안은 사라졌을까?

또 다른 강박과 불안이 존재하는 것 같다. 


상담사로서 불안은 수련 수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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