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햇볕 Oct 25. 2024

해님과 바람의 내기




해님과 바람이 길가는 나그네 외투 벗기기 내기를 했다. 

바람은 강한 바람을 일으켜서 나그네 외투를 벗기려 했다. 

나그네는 더욱 옷깃을 여몄다.

이번에는 해님 차례다. 

해님은 나그네에게 따뜻한 햇볕을 보냈다. 

나그네는 외투 단추를 풀고 한숨을 쉬었다. 

햇볕을 받을수록 나그네는 옷깃을 풀어헤쳤고 드디어 외투를 벗었다.      

유명한 이솝의 이야기다. 



이야기 속에 햇볕은 여러 의미를 갖고 있다. 

나그네가 옷을 벗은 것은 햇볕 영향이지만 전적인 원인은 아니다. 

왜냐면 나그네는 이미 길을 가고 있었고 이미 몸 안에서 열이 났을 것이다. 

외투를 벗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햇볕을 받으니 좀 더 빨리 더웠을 것이다. 

상담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어려움(고통)을 해소해 주는 마법사가 아니다. 

어쩌면 내담자가 상담에 오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고통 해소는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길을 가는 나그네가 걷기 시작하면서 몸에서 열이 난 것처럼. 

작은 열기라서 미처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상담자는 햇볕처럼 외투를 벗을 수 있는 환경과 터닝 포인트를 마련할 뿐이다. 

상담은 바람처럼 강하게 조언하고 충고하지 않는다. 

내담자가 햇볕 같은 안정감을 느끼면 스스로 선택한다. 

안정감을 느낀 내담자는 몸 안의 열기를 느끼고 더운 것을 인식하고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한다. 

나그네 선택은 땀이 나는 상황에서 가장 좋은 결정이 된다. 

이것을 상담에 대입하면 딱 맞는다. 

나그네는 내부감각을 통해 몸 열기를 알아차린 것이다. 

사람은 내부보다 외부(타인)에 관심을 가질 때 고통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외부 자극과 충격 때문에 자신이 고통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부에 민감하다. 

고통받았던 과거 경험이 있을 때 더욱 외부나 타인에게 집중한다. 

그런데 밖은, 상황은 자신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벌어진다. 

외부는 파도처럼 항상 변한다. 

그러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의미 있는 것은 내 마음이 어떻게 파도를 타고 있느냐이다. 

외부 상황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자신 내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다. 



상담은 내담자가 내부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돕는다. 

조언과 통제는 짧은 기간에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결국, 옷은 나그네 스스로 벗어야 한다. 

내담자가 안정감을 느끼고 유지할 수 있다면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이것이 대처와 적응이다. 

내담자는 변화무쌍한 삶에서 충분히 대처하고 적응할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이 상담자에게 필요하다. 

끊임없이 고통만 당하는 약한 존재로만 내담자를 여기면 상담은 내담자에게 의존 경험일 뿐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상담을 햇볕처럼 하고 싶었다. 


따뜻한 영향력. 


예측할 수 없는 삶에서 행복으로 갈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고통에 사로잡혀 기능이 정지된 것처럼 느끼는 내담자가 우선 쉴 수 있는 상담센터를 열고 싶었다. 

자신을 문제 덩어리로 보지 않고 이번 생은 망했다가 아닌 내 삶의 내비게이션을 다시 설정할 수 있으려면 우선, 한숨 돌려야 한다. 

고치려 하지 말고 문제를 풀려고 말고 그냥 앉아서 햇볕을 쐬자. 

그러면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올 것 같다. 

군상담을 그만두고 세상에 나왔을 때 내게 햇볕이 필요했다. 

깊이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부터 나는 햇볕을 원했다. 

그래서 내가 상담사가 된 걸까?

내 오랜 염원, 오랜 고통의 여정 중에 마음햇볕은 태어났다.      

상담센터를 오픈하고 점점 내담자가 늘었다. 

월급쟁이 상담사를 할 때보다 늦게 퇴근할 때가 많았다. 

오픈한 해 늦가을 밤 9시에 퇴근하는데 문득 행복했다. 

비로소 상담사가 된 기분이었다. 

15여 년 가까이 상담사로 있었는데 이제야 상담사가 된 것 같았다. 

내담자에게 햇볕이 되길 바라는 내 마음이 펼쳐지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이제야 내가 가고 싶은 길에 접어든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눈물이 핑 돌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주택가에 있는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상담센터이지만 나에게는 큰 전환점이었다. 

마음햇볕 심리상담치유센터에 방문하는 모든 내담자들에게 긴 숨 같은 장소가 되기를. 

그들에게 고통 해소의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마음햇볕 심리상담치유센터 대기실




어떤 소설에 이런 문구가 있다.      


“내 마음이 일터를 반긴다."

     

당시 내 마음이 꼭 이랬다. 

마음이 상담하러 가는 일터를 반겼다. 

다른 곳에서 근무할 때는 쫓기듯 출근해서 도망가듯 퇴근했다. 

그러면서도 어느 한 곳 마음이 반기는 곳이 없었다. 

무한 진자운동처럼 출근과 퇴근을 반복할 뿐이었다. 

삶은 지루하고 답답하고 조바심이 나고 우울했다. 

그런데 내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출근이 즐겁고 일터가 안락하다. 

나는 내담자들도 마음햇볕에서 쉬기를 바란다. 

대기 공간에 잠시 앉아서 따뜻한 커피나 코코아, 차를 마시며 그저 편안하기를 바란다. 

내담자 마음이 마음햇볕을 반기기 바란다. 

센터 오픈 초반에는 마음햇볕을 찾아오는 내담자가 고맙고 신기했다. 

번화가가 아닌 주택가에 있고 따로 홍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마음햇볕을 선택했는지 내담자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이렇게 답했다.      


"마음햇볕이라고 해서 왔어요."     


너무 감동스러웠다. 

우문현답이 이런 걸까. 

마음이 추우니 햇볕에 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오래된 대장금이란 드라마에서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했다. “는 것처럼 말이다. 

솔직한 것, 그대로인 것은 감동이다. 

내 마음이 전달된 것 같아서 기뻤다. 




마음햇볕 대기실 전경




마음햇볕 대기실




마음햇볕을 선택한 이유 중에 다른 것은 센터 분위기였다.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따뜻할 것 같아서."


그것 또한 감사하고 기뻤다. 

나는 상담사이지만 내 역량을 모두 동원해서 내담자에게 안정감을 주고 싶었다. 

그중 하나가 센터 분위기였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센터가 아니라 내담자가 편안할 센터가 되려고 했다. 

마음햇볕 콘셉트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따뜻하고 편안한 작은 카페다. 

내담자의 다양한 편안함을 위해 센터에는 여러 의자가 있다. 

다리를 뻗을 수 있는 평상과 몸이 쏙 들어가는 암체어, 주홍빛 푹신하고 긴 패브릭 1인 소파, 일반적인 의자. 

의자들은 서로 마주 보지 않게 배치되어 있어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내담자들은 다양한 의자를 앉아보는 작은 기쁨이 있다고 했다. 

내담자들이 기쁘면 나도 기쁘다. 

나는 과거나 현재나 상담사이고 미래에도 아마 상담사일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이제 상담을 시작한 상담사처럼 느껴진다. 

모든 것이 갓 태어난 것처럼 새롭고 설렌다. 

스스로 외투를 벗고 간간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해님과 바람이 내기를 하든 말든 나는 길을 가고 있었다. 

그 길이 고통스럽고 외롭고 때로 절벽처럼 느껴져 무서웠지만 그래도 나는 길을 걸었다. 

바람이 불면 옷깃을 여미고 해가 나면 외투를 벗을 뿐이다. 

무엇이 오던지, 어떤 상황이 펼쳐지던지 내 마음에 햇볕이 있으니 괜찮다. 

내 마음에 햇볕, 당신 마음에 햇볕이 있다. 





이전 24화 실컷 맞고 돌아온 정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