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을 떠올리면 아찔하다.
예상하지 못한 일로 갑작스럽게 센터를 이전했다.
전 마음햇볕이 있던 공간은 스무 평 남짓했는데 애착이 컸었다.
원룸에서 “마음햇볕 심리상담연구소”란 이름으로 있다가 옮겨간 곳이라서 상담실 2개와 대
기 공간이 생겼기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때부터 센터 이름도 “마음햇볕 심리상담치유센터”가 되었다.
왠지 공간이 작으면 “센터”라고 부르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원룸에서 상담을 할 때도 공간이 작지는 않아서 파티션으로 구획을 해 내담자 휴게 공간이
있었다.
그런데 독립된 공간이 아니어서 그런지 한 명도 쉬어 가는 내담자가 없었다.
스무 평 남짓한 공간으로 옮겼지만 복도와 베란다 공간을 빼면 실 평수는 원룸과 비슷한
13평 정도였다.
작지만 공간을 나눠서 내담자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그때 센터 테마가 “여행길에 우연히 만난 작고 예쁜 카페”였다.
당시 포부는 컸지만 워낙 가지고 있던 돈이 적어서 인테리어가 쉽지 않았다.
인테리어 사장님에게 내가 원하는 분위기의 사진들을 보여주며 없는 돈에 어떻게 하면 비슷
한 분위기를 낼 수 있는지 상의했었다.
우드 앤 화이트 분위기를 원했기에 원목 창문과 출입문을 만들고 싶었으나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 포기하고 원목 시트지로 대신했다.
그 공간에서 나는 행복했으나 부족함은 있었다.
공간이 작다 보니 상담실과 대기실 냉난방을 따로 하지 않았다.
물론 따로 냉난방을 설치할 비용도 없었다.
그래서 상담 한 시간 전에 상담실 온도를 맞추기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
다.
그럼에도 내담자들도 춥거나 덥다고 하기도 했다.
공간 자체가 작으니 대기실 의자 배치도 애매했다.
두 명의 내담자가 와서 앉더라도 얼굴을 마주 보지 않게 의자를 놔야 하는데 어려웠다.
내담자에게 좀 더 쾌적하고 편안한 공간이 아니어서 미안했다.
화장실도 외부에 있었고 우리 센터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점포와 같이 사용했다.
물론 상담을 받는 것이 핵심이지만 나는 상담의 시작은 내담자가 우리 센터 이름을 인식하
는 것부터라고 생각한다.
내담자가 만약 인터넷 검색으로 마음햇볕을 발견하고 클릭한다면 그 순간이 상담 시작이다.
네이버 플레이스에서 마음햇볕을 클릭하거나 블로그, 홈페이지를 클릭했을 때 이미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센터 이름과 인테리어는 중요하다.
내담자가 우리 센터에 호기심을 갖기를 원했고 센터 이름과 인테리어 사진을 봤을 때 안정
감을 느끼기를 원했다.
안정감은 상담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상담 과정에서 라포가 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것이 안정감이다.
안정감이 들지 않는데 상대를, 상담을 신뢰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안정감은 어떻게 생기나?
안정감은 머리와 마음으로 느낀다.
5가지 감각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통해 자극을 수용한다.
그래서 상담센터 인테리어는 중요하다.
이런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공간의 제약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원룸 시절에 비하면 좋았다.
전 마음햇볕에서 2년 계약을 하고 2년이 다 되어 간 시점이 작년 11월이었다.
그곳은 오래된 3층의 작은 상가였고 마음햇볕은 2층에 있었다.
2층에는 마음햇볕 포함 다른 점포가 있었다.
처음에는 온라인 모자 판매 가게였는데 나중에 다른 공간이 되었다.
어떤 임차인이 들어오는지 신경이 쓰였는데 이유는 화장실과 복도를 같이 사용하기 때문이
었다.
그래서 건물 주인에게 상담센터 특성상 소음과 안전이 중요함을 알리고 옆 공간을 임대할
때 고려해 주기를 여러 번 부탁했다.
사실 건물 주인이 그리 신뢰가 가지 않아서 여러 번 부탁한 것이다.
내가 계약을 했을 때 주인이 했던 말과 실제가 많이 달랐다.
예를 들면 2층의 두 임차인이 반층 올라간 2층 화장실을 사용한다고 했는데 3층 임차인까
지 함께 사용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3층 임차인은 반층 올라간 3층 화장실을 사용한다고 했다.
그것이 이치상 맞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화장실을 사용하던 중 낯선 사람과 부딪히게 되었고 누구냐고 물었더니 3
층 임차인이었다.
3층 임차인은 건물 주인에게 2층 화장실을 사용하라고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3층 임차인은 오히려 내가 몰래 화장실을 쓰고 있다고 생각해서 사용하지 말라고
말하려고 했다고 했다.
알고 보니 건물 주인이 건물 옥상을 캠핑장처럼 꾸며 사용하면서 3층 화장실을 본인이 사
용하고 있었다.
건물 주인은 이런 식으로 계속 말이 달라졌고 사실 확인과 정정을 요구하면 다른 사람을 탓
하거나 회피했다.
건물도 거의 관리하지 않았다.
오로지 월세를 받는 것에만 관심이 있어 보였다.
옥상에 잔디를 심는 작업을 하길래 뭐냐고 물으니 건물 임차인들이 쉴 공간을 만든다고 했
었다.
그것은 거짓말이었고 자신의 아이들과 캠핑장처럼 사용했다.
너무 시끄러워서 조용히 해달라고 하면 기분 나빠하기도 했다.
더 문제는 옥상을 잠가놓아서 화재 대피 때 어떻게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정이 있었던 터라서 옆 공간을 임대할 때 돈이 되면 누구라도 가리지 않을 것 같았
다.
내가 옆 공간 임대 시 상담센터 특성을 고려해 달라는 부탁을 여러 번 하니 나중에 건물 주
인이 짜증을 냈다.
기억하고 있고 고려할 것인데 왜 자꾸 얘기하냐고.
이 말을 듣고 안심이 되지 않았다.
왜냐면 이미 신뢰가 낮았기 때문인데 결론부터 말한다면 역시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옆 공간에 새로운 임차인이 들어와서 공사를 시작했다.
건물 주인에게 전화를 해 어떤 성격의 사업을 하는 분이냐고 물으니 사무실이고 조용하게
사용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일반 사무실 같지 않았고 마침 임차인이 공사 현장에 있어서 물어봤다.
그 임차인이 말하기를 사진 촬영하는 스튜디오라고 했다.
자신도 촬영을 하고 촬영할 공간을 원하는 사람에게 간혹 빌려주기도 한다고.
내가 혹시나 싶어서 “파티룸은 아니시죠?”라고 하니 그 임차인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마음이 놓였다.
옆 공간의 공사 중 소음이 컸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었고 공사가 마무리되었을 때 개업 축
하 선물을 주며 축하했다.
그럭저럭 지내면서 어느덧 임대차 재계약 시기가 돌아왔다.
2023년 11월이 재계약 날짜였다.
나는 작은 공간과 화장실이 외부에 있고 여러 명이 사용하는 점 때문에 센터 이전을 고민했
다.
지하철 역 주변의 다양한 공간을 물색했는데 임대료가 생각보다 비쌌다.
그래서 일단 재계약을 하기로 결정했고 주인에게 알렸다.
다시 계약서를 작성해야 했지만 주인이 바쁜 관계로 구두로만 계약 연장을 하고 계약서는
추후에 작성하기로 했다.
2023년 10월 마지막 주 전 주말에 상담을 끝내고 퇴근하는데 복도에서 술이 거나하게 취한
키 큰 남자와 마주쳤다.
복도가 작아서 성인 두 명이 지나갈 때 옆으로 몸을 틀어야 했는데 술이 취한 남자와 마주
치니 깜짝 놀랐다.
술 취한 사람이 화장실을 찾으려고 건물로 들어왔나 싶어서 어디에 온 거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옆 촬영 스튜디오 이용자라고 했다.
남자가 촬영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실내를 보니 촬영이 아니라 술판이 벌어져 있었
다.
인터넷으로 옆 공간을 검색해 보니 “파티룸”이었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혹시라도 내담자들이 술 취한 사람을 복도나 화장실에서 만나면 어떻게 하나 걱정되었다.
나는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옆 공간이 파티룸인데 알고 있었냐고 물었다.
주인은 몰랐다고 했다.
그렇다면 옆 임차인이 나와 주인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결국 건물 주인과 옆 임차인, 이렇게 세 명이 우리 센터에서 만났다.
옆 임차인은 속인 적이 없으며 주인에게는 파티룸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런데 내게는 “파티룸”이 아니라고 했기에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냐고 하니 옆 임차인이
이렇게 말했다.
“그건 노래방이 있는 파티룸은 아니라고 한 거예요.”
정말 한 대 때리고 싶었다.
내게 노래방이 있는 파티룸인지 아닌지가 중요했을까?
더군다나 그 파티룸은 미성년자 남녀에게도 공간을 빌려줬었다.
파티룸을 규제하는 법이 없기에 이런 틈을 노려 영업을 하는 것 같았다.
물론 상도덕을 지키며 건전하게 운영하는 곳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옆 임차인이 운영하는 곳은 안전장치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주인, 옆 임차인과 삼자대면을 했지만 그들은 정치인 뺨치게 발뺌과 나몰라라로 일관했다.
건물 주인은 내가 너무 예민하며 까다로워서 3층 임차인도 나간다고 했다고 했다.
이건 또 뭔 소리인지?
사실 3층은 나중에 피아노 개인 레슨 연습실로 임대가 되었다.
낡은 건물이라 방음이 취약한데 그랜드 피아노를 놓고 레슨을 했다.
3층에서 레슨을 시작하면 그 밑에 있던 마음햇볕에서는 마치 옆에서 피아노를 치는 것 같
앗다.
상담 중에 방해가 될 정도로 소리가 크게 들렸고 3층 임차인에게 말했더니 미안해했다.
3층 임차인은 다른 층에 피해가 갈까 염려해 주인에게 말했는데 주인이 괜찮다고 했다고
한다.
3층 임차인과 주인이 우리 센터에 내려와서 피아노 소리 크기를 들었는데 주인은,
“피아노 공연 보는 것 같고 좋은데요.”
라고 말했다.
피아노 공연을 공짜로 듣는다면 좋겠지만 문제는 내가 상담을 해야 한다는 거다.
결국 3층 임차인은 방음 공사를 했고 3층과는 그 후 아무 문제 없이 지냈다.
내가 알기로는 레슨생 모집이 생각처럼 되지 않아 그만둔 것이다.
그것을 주인은 내가 예민해서 다들 불편하다는 식으로 말했다.
옆 임차인은 자신도 나 때문에 불편하며 자신은 나갈 수 없고 그대로 영업을 하겠다고 했
다.
그 공간에서 술을 먹거나 미성년자가 와서 이용하는 모든 것을 그대로 하겠다고 했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화가 났다.
이런 억지가 어디에 있나.
돈이면 다인가?
아무리 자본주의라고 해도 이건 아니다.
전투의지가 불처럼 타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현타처럼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그들과 씨름해서 내가 옳음을 증명하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우리 센터를 이용하는 내담자의 안전이 중요한가.
내담자의 안전이 내게 가장 중요한데 그것을 이곳에서 이룰 수 있나?
돈이라면 어떤 일도 할 이들과 내담자의 안전을 두고 씨름할 수 없었다.
탁한 방에 있다가 창문을 여니 차갑고 시선 한 공기가 들어와 정신이 깨어나는 것처럼 정신
이 들었다.
“제가 나갈게요.”
내 탓을 하던 주인도 옆 임차인도 하던 말을 멈췄다.
정적이 흐르다가 공기의 긴장이 풀렸다.
그들은 깜짝 놀란 것 같았다.
서로의 입장을 팽팽하게 버티고 있는데 내가 끈을 놓아버렸기 때문이다.
누군가 작은 한숨을 쉬었다.
건물 주인은 내가 임대할 공간을 찾을 동안 한 달 렌트 프리를 해주겠다고 했다.
옆 임차인에게 내가 요구한 것은 내가 있을 동안 화장실을 따로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옆 임차인은 3층 화장실을 사용하기로 했다.
건물 주인과 옆 임차인이 가고 나니 갑자기 힘이 풀리면서 눈물이 났다.
이제 어떻게 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
사실 크리스마스 전에 작은 수술이 잡혀 있었다.
수술 전에 센터를 이전해야 했다.
10월 마지막 주니까 수술 전까지 한 달 보름 정도 시간이 있다.
공간을 알아보고 인테리어를 하는 것까지 수술 전에 할 수 있을지.
내가 왜 이런 황당하고 힘든 일을 해야 하는지 막막함에 눈물이 났다.
집에 돌아가 인터넷으로 부동산 임대를 알아봤다.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센터 3분 거리에 있는 공간인데 방문판매 영업 사원들을 교육하는 곳이었다.
다음 날 부동산을 통해 공간을 방문했는데 마음에 들었다.
30평 공간이었고 실내에 화장실이 있으며 룸이 두 칸이었다.
제일 마음에 든 것은 2층 전체를 사용하는 점이었다.
임대로는 더 비쌌지만 주변 시세에 비하면 저렴했다.
건물 주인은 노부부인데 친절하고 건물 관리를 규칙적으로 했다.
내가 나가겠다고 한 뒤 3일 만에 새로운 센터 공간을 계약했다.
전 임차인은 의자와 테이블 몇 개, 냉난방기, 냉장고, 정수기, 프로젝터 등을 저렴한 값을 받
고 남기고 갔다.
전 임차인도 빨리 나가야 하는 상황이어서 11월 둘째 주에 새로운 센터로 정말 이전하게
되었다.
그렇게 현재 마음햇볕으로 옮기게 되었다.
급하게 이전하느라 금전적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벽지나 인테리어가 그대로 사용해도 될 만
큼 깨끗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짐만 옮겼다.
전 마음햇볕과 현 마음햇볕 거리가 가까워서 승용차로, 손으로 들어서 옮길 수 있어서 이사
비용도 들지 않았다.
정신없이 이전을 하고 어느 정도 정리를 마치고 나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나가겠다고 했을 때 막막함이 아직도 생생한데 보름도 안 되어 원하는 곳으로 이전을 하다
니.
더욱 놀라운 점은 이전한 공간이 사실 원룸에서 이전을 할 때 알아보던 중 마음에 들었던
곳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부동산 중개인에게 마음에 드는데 임차할 수 없겠냐고 물으니 이미 임대가 되어 안 된
다고 했었다.
2년 전에 마음에 들었던 곳에 온 것이다.
마치 이곳에 와야 했기 때문에 모든 일이 벌어진 것만 같았다.
새로운 마음햇볕에 와서 내담자를 위한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다양한 의자, 소파, 평상을 놓고 프로젝터로 영상과 잔잔한 음악을 틀고 풀 냄새 가득한 디
퓨져를 놓았다.
화장실이 실내에 있어서 내담자들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공간이 넓어지니 간단한 간식과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카페테리아를 만들었다.
이로서 내담자의 오감을 통해 안정감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이전한 뒤 지인들이나 내담자들은 나의 치밀한 계획과 준비로 이전한 것으로 생각했다.
인테리어도 새로 했다고 생각했다.
나도 믿기지 않는 일이라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가 않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니 억울함과 분노 속에서도 필요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마치 독화살을 맞았을 때
"왜 내게 독화살을 쐈어? 나는 너무 억울해. 누구야?"
라며 독화살을 쏜 사람을 찾기보다는 독화살을 빼지 않으면 독이 퍼진다는 현실을 알고 독화살을 뺀 것과 같다.
독화살을 빼고 치료를 받고 나니 새로운 삶이 펼쳐졌다.
마치 우주가 나를 위해 센터 보금자리를 봐놓고 기다린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바라는 것은 다 이뤄지는 기적이 벌어졌다.
마음햇볕은 이렇게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새롭게 출발하게 되었다.
이전을 한 뒤 마음햇볕은 더욱 잘 운영되고 있다.
마음햇볕에 오는 분들도 조금은 더 안락하게 되었다.
나의 마음햇볕은 모두의 마음햇볕이 되었고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햇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