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사실, 계속 글을 썼습니다.
쓰고 싶은 글은 얼마 동안 못 썼네요.
써야만 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논문이죠.
논문은 써야 하는 글이고 쓰고 싶은 글이기도 합니다.
상담 석사를 졸업하고
지도교수 없이 혼자 논문을 썼습니다.
생애 첫 논문은
세상에 존재하지만
아무도 몰랐으면 할 정도로 수준이 별로입니다.
하지만 그 논문은
못나도 내 새끼입니다.
혼자 공부하며 힘겹게 썼거든요.
꼬박 2년이 걸렸습니다.
여름휴가로 간 계곡에 책상을 펼쳐놓고
수정했던 일이 엊그제 같습니다.
시간이 흘러 다시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논문을 쓰면 제 밑천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두 번째 논문을 쓰니 밑천이 덜 얇은 것 같습니다.
논문 쓰는 것이 재밌다고 하면
이상하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힘들지만 재밌는 느낌입니다.
논문을 쓰느라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제대로 못 올렸어요.
독자분들이 혹시 궁금해하실 수도 있어서
마음에 걸렸습니다.
한 분이라도 궁금하실까 글을 씁니다.
상담을 하며 짬짬이 논문을 쓰고
생각이 나지 않거나
몸과 마음이 힘들면
산책을 나갑니다.
상담센터 인근 공원과 동네를 돕니다.
아파트와 주택,
공원 사이에 작은 공터가 있습니다.
공터는 높은 철판으로 둘러싸여서
안이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공터 안에 뿌리를 내린 밤나무가
철판 담 위로 풍성하게 자랐습니다.
잦은 비와 더위에 지치지 않고 풍성합니다.
담 아래로 늘어진 밤나무 가지에
밤송이가 탐스럽게 달렸습니다.
하루 이틀 산책을 할 때마다
밤송이는 두툼해집니다.
주인 없는 밤나무는
주인이 없어서 잘 자랍니다.
마치 담에 기대어 여유롭게
세상 구경을 하는 것 같습니다.
밤이 익으면
누가 그 밤을 먹게 될까요?
다람쥐나 청설모가 혹시 공원에 산다면
떨어진 밤을 줍겠습니다.
저처럼 산책하다가 떨어진 알밤을 발견하면
선물처럼 줍겠습니다.
논문을 쓰다가 산책을 합니다.
상담을 하다가 산책을 합니다.
작은 공원과 동네를 돌다가 우연히
버려진 공터 밤나무를 만났습니다.
거두거나 보살펴주는 주인 없이도
자신만의 시간대로 밤송이를 달고
익어가는 밤나무입니다.
사시사철 그게 그거인 도시에서
밤나무는 자신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삽니다.
덕분에 저는 가을이 왔다는 걸 알게 되네요.
9월 첫날인데 마치 여름 같은 날,
비가 왔다가 안 왔다가
술 취한 사람처럼 종잡을 수 없는
번덕스런 하늘 아래,
밤나무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시간을 삽니다.
그래서 기쁘고 반갑습니다.
공터 밤나무처럼
저도 제 시간을 살고 싶네요.
논문을 쓰는 지금 이 시간은
밤송이가 달리는 시간입니다.
시간이 지나 밤이 익는 것처럼
저도 논문을 완성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브런치스토리에 쓰고 싶은 글을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