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사람들의 관심은 주식과 부동산에 쏠려 있었다. 나는 정치나 경제 분야에 딱히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스마트폰이 보급된 뒤부터 매일 인터넷에 올라오는 기사들은 한 번씩 클릭해 보는 터라 시시콜콜한 이슈들은 두루 섭렵하고 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도 이야기의 끝은 꼭 ‘돈’이었다. 부동산 중개 수수료가 꽤 쏠쏠하다는데 너도나도 뛰어든다는 공인중개사 시험이나 준비해 볼까 싶은 얕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천정이 뚫린 듯 주식과 부동산이 호황이던 작년까지만 해도 영혼까지 끌어모아 주식 사고 아파트 사는 친구들이 내 옆에도 여럿 있었다. 주식에는 문외한인 나는 주식 그래프를 보고 있는 친구가 참 멋있어 보였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증권회사 펀드매니저 같달까.
보증금 500만 원에 월 30만 원짜리 방 두 칸, 화장실 하나, 좁디좁은 거실을 둔 다가구 주택 반지하에서 결혼하기 전까지 20대와 30대를 보냈던 나에게, 내가 결혼한 뒤로 5년이나 더 반지하 생활을 한 친정엄마에게는 하루 자고 일어나면 억 단위로 올랐다는 서울 아파트 관련 뉴스는 먼 나라 이웃 나라 이야기 같았다. 그 월셋집에서 나는 대학생부터 15년을, 엄마와 동생은 20년을 꽉 채워 살았다. 사람 좋게 생긴 주인 할아버지는 여자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며 사는 게 대단하다며 20년 동안 월세를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 엄마는 주인 할아버지 앞에서는 감사하다면서도 뒤에서는 곰팡이 피는 단독주택 반지하에 누가 요즘 월세를 사냐면서 주택 셋방은 비어 있는 곳이 천지라며 구시렁거렸다. 우리 덕택에 월세 받으면서 노후에 용돈벌이 재미가 쏠쏠할 거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결혼하기 전에는, 집을 산다는 것에 희망이 없었다. 그저 앞뒤 전후가 이해되지 않은 3천5백만 원이나 되는 엄마의 부채가 갑자기 내 몫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그 빚을 갚는데 나의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아까운 시간을 갈아 넣고 있었고, 그저 빨리 빚을 갚고 전셋집으로나 옮겨 갈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 한 살 터울 남동생 그리고 나로 구성된 이 가족 중에 이 반지하 바닥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이는 나뿐이었다. 엄마와 남동생은 두 바퀴 차이 나는 소 띠동갑이라 그런지 항상 느긋했다. 안 되는 걸 굳이 하려고 애쓸 필요 있냐는 식이었고, 두 명의 소띠 속에 혼자 쥐띠 해에 태어난 나는 쥐들이 곳간을 드나들며 곡식을 탐하듯 내재되어 있는 적절한 속물근성과 욕망을 장착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혼자 다급했다. 매달 빠져나갈 금액이 정해져 있는 나의 월급을 언제쯤 모아 오르막 꼭대기에 있는 낡은 주택의 반지하에서 평지에 있는 전셋집으로 내려갈 수 있을까, 혼자 애를 끓이던 나는 겨우 빚잔치만 끝내고 결혼해 반지하에서 탈출했다.
집값은 2016년부터 낙폭 없이 우상향을 그리다 2021년 폭등하는 양상을 그렸다. 전셋집 매물 부족과 계속 바뀌는 부동산 정책으로 대한민국 주택시장은 무주택자들의 아우성으로 아비규환이었다. 그 집에서 평생 살 수 있을 것처럼 느긋하던 엄마는 빌라 건축업자에게 집을 팔았다는 주인 할아버지의 말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집이 팔렸다고 해서 당장 집을 부수고 빌라를 짓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이사하기까지 시간은 있지만 모아둔 돈도 없었을뿐더러 남동생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생활비라고 보기에는 부담스러운 금액을 집에 보탰기 때문에 이사를 하기에는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는 친정의 상황이 걱정스러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혼자서 속앓이 하던 때가 생각나 세상 통쾌하기도 하면서 께름칙하고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끌어모아도 서울에서 전셋집을 구하기는 힘들었다. 주택 전세 시세도 억 단위로 넘어가고 빌라, 아파트는 더 했다. 내 남편까지 더해진 가족회의가 열렸다. 깡통전세의 위험도 무시할 수 없으므로 주택과 빌라보다는 아파트 전세 쪽이 안전하겠다는 결론이 났다. 하지만 문제는 전세 금액과 지역이었다. 지금 사는 동네에서 20년 가까이 살았으니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아무리 서울 끝자락 동네라 하더라도 서울은 서울이었다. 가진 돈이 1억 도 안 되는데 아무리 전세대출을 한다고 해도 무리였다.
남편은 고민하는 나를 뒤로하고 인터넷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가서 한참을 검색하더니 매물 한 개를 찾아내 나에게 전화해 보라고 했다. 지금 사는 동네에서 20분 거리의 낡은 아파트 촌 매물이었다. 시세 대비 1억 5천이나 저렴한 매물이었는데 알아보니 임대업자 매물이라 시세대로 올리지 못하고 저렴한 가격에 나왔고 전속 중개하는 부동산이어서 곧바로 약속을 잡아 엄마와 함께 집을 보러 갔다. 지은 지 40년이 넘은 구축 아파트였지만 관리가 잘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집 내부가 깨끗하게 수리된 상태였다. 엄마도 마음에 든 눈치였다. 곧바로 계약금을 보내고 날을 정해 계약서를 작성한 후, 3개월 뒤에 친정집은 드디어 생애 첫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이사하고 엄마의 전세살이 2년 차에 접어든 작년 초부터, 우리나라 주택시장은 다시 혼란해지기 시작했다. 저금리 기조로 유동성이 풍부했던 경제 흐름이 금리 인상기를 거치면서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위축되었고 우리나라도 예외일 리는 없었다. 고금리 시대에 대출이자 부담으로 매수세가 실종되면서 주택시장이 하락기에 접어들었다는 인터넷 기사들이 하루에도 몇 개씩 쏟아졌다. 그러다 작년 하반기에 접어들며 반짝 상승장을 그리다 연말부터 다시 하락장의 혼조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 상승론자와 하락론자의 콘텐츠들이 들끓는 유튜브의 내용들도 이제는 구역질이 난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현금 부자가 아닌 이상에야 이자 부담에 집값이 내려간다고 해서 집을 사기도 어렵고, 이러다 금리 안정기가 오면 집값은 다시 올라갈 테니 넋 놓고 앉아 있기도 어렵고.
무주택자인 우리 부부나 친정집의 의지와 무관하게,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서 대박 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번외 편 같은 '시소게임'에 참가당한 느낌이다.
조금이라도 하락한 가격에라도 사서 고금리 대출이자를 감당하든지, 금리 안정기에 오른 집값을 감당하든지,
주거 안정을 위해서 앞선 두 가지 중에 양자택일하든지, 아니면 주거 불안정이 옵션으로 장착된 무주택자로 살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