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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반 Mar 14. 2024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갔습니다(2)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심리상담은 괴리가 있다

 처음 심리상담을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 접수하고 진료 대기 하는 인원이 생각보다 많아 놀랐다. 그 수에 놀랐고, 내원자들의 다양한 연령대에 한 번 더 놀랐다. 그리고 그 놀라움이 상쇄되기도 전에, 예상 밖의 상담 대기 시간에 넋 다운됐다. 한 사람당 15분의 상담 시간을 계산해 예약리스트를 구성하고 30분에 한 명씩 대기 예약까지 있으니 한 명의 상담의가 1시간에 총 6명의 내원자를 받아야 하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예약 취소나 긴급 환자가 있을 수 있어 가감이 있을 수 있지만, 예약 상담제라는 말이 의미가 없을 만큼 그 예약 시간이 지켜지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내가 예약한 시간으로부터 적게는 1시간, 많게는 3시간까지 대기 시간이 늘어났다. 상담이 15분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니 대기 시간이 이렇게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역지사지의 의미까지 끌어다 내가 나를 설득했으나, 인내심의 바닥이 드러나기 직전에 이름이 호출되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자 화가 나기 시작했다. 특히 약속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강박적인 성향을 가진 내게, 계속 늘어지는 상담 대기 시간은 병원을 찾은 의미가 퇴색될 만큼 고역이었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나의 담당의는 항상 만날 때마다 외운 대사처럼 1년째, 같은 인사말을 건넨다. 오랜 대기 시간에 이미 지친 나의 머릿속에서는 미리 정리해둔 할 말들이 뒤죽박죽 뒤섞여 길을 찾지 못했다.

 “선생님,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해서 좀 지쳐요.”

 “아이고, 죄송해요. 너무 오래 기다리셨죠. 오늘 긴급 환자가 있어서 상담이 많이 밀려서 그래요. 약 바꿔서 복용하신 건 어떠셨어요?”

 길어지는 대기 시간의 불만에 대한 상담의의 대답도, 화제를 돌려 말의 화두를 바꾸는 것도, 늘 같은 패턴이다.

 “아, 그랬구나. 네. 힘드셨겠어요. 정말 그러네요. 무슨 이유로 그런 감정이 생겼을까요. 이번에는 약의 용량을 좀 높여서 처방할게요. 우리 언제 다시 볼까요?”

 15분은 생각보다 짧다.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한다. 그나마 내가 하는 말에 자동 반사적인 공감의 반응을 하다가 상담의는 벽시계를 흘깃 쳐다보며 다음 내원 일정을 잡자는 말로 상담 종료 기색을 내비친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하루는 2시간을 기다렸다가 상담에 들어갔는데 5분 만에 종료된 적도 있었다. 상담의는 내가 하는 말들을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여 컴퓨터 자판을 타닥거렸지만, 종종 다른 내원자의 기록을 보고 얘기하기도 했고, 했던 질문을 다시 하기도 했다. 앞서 말한 역지사지를 발휘해 보자면 한 명의 상담의가 하루에도 수십 명을 상대하면서 힘든 얘기를 듣는데 그 정도의 오차 범위는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이곳은 정신건강의학과다. 일반 내과나 외과가 아니다. 몸의 상처가 아니라 마음의 상처를 진료해야 하는 곳이다.

 내가 힘든 이유를 내가 알 수 없어 이곳을 찾는 이들이 다반사이고, 이 사람들은 자신의 상담의가 ‘오은영 박사’처럼 힘듦의 근원과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독이 된다는 게 내 결론이다. 그런 기대가 있으면 ‘오은영 박사’의 병원에 예약하는 게 맞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정신건강의학과의 대기 시간은 다른 병원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이고, 높은 진료비가 책정된 병원에서는 예약 상담으로 내원할 수 있으며(상담의도 직업인이므로, 환자가 상담의의 시간을 돈을 내고 사는 것이 맞는 이치다), 정신건강의학과와 심리상담센터의 차이를 알고 상담받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는 의사가 진료를 보기 때문에 의과학적으로 접근해 약물치료를, 심리상담센터는 의사가 아닌 전문심리상담사가 상담을 진행하므로 인지적 치료를 중점으로 한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하는 약은 대부분 항우울제인데, 짧게는 2주, 길게는 몇 달간 복용하면 증상이 완화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1년 동안 항우울제를 복용했지만 계속 쏟아지는 잠 외에 달라진 것은 없었다. 상담 초기에는 입 밖으로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한 발짝 나아간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내 말들이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감정조절이 어려운 사람들은 약물 치료가 필수적이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면(나는 약물치료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 심리상담을 집중적으로 할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병원을 바꾸자니 어렵게 내 상황을 설명하는 그 지리멸렬한 과정을 또 다른 상담의나 상담사에게 다시 되풀이해야 한다. 한숨과 짜증이 쌓인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음성녹음 된 파일이 재생되는 듯한 매번 같은 대사와 어조.

 상담의의 맞은편 의자에 털썩 앉아 콧구멍으로 큰 들숨과 날숨을 들썩이다, 나도 모르게 마음에 품고 있던 말이 튀어나왔다.

 “원장님, 진료비를 좀 더 받으시고 대기 시간 없이 상담받을 수 있게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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