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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반 Oct 31. 2024

마음을 다하지 않는 것

관계의 적당한 거리

 HSP는 밀도 있는 주제로 깊이 있는 대화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일대 다수의 인간관계가 어렵다. 대화가 분산되는 겉핥기식의 그룹 모임보다는 집중할 수 있는 일대일 만남에 더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질적인 개인 성향이 그렇다는 말이고, 관계란 모름지기 상호작용이므로 상대와 주고받는 에너지 레벨이 비슷해야 이어갈 수 있다. HSP 중에서도 내향성과 외향성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는데 전체 인구의 극소수의 비율로 외향의 성격을 가진 HSP도 있다. 외향의 HSP는 사람들로부터 즐거움을 얻는 편이어서 양적인 인간관계를 지향하는데, 안타깝게도 본인이 가진 예민한 기질은 다양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양의 자극과 갈등을 감당하기 어렵다. 예민한 기질은 기본적으로 남보다 뛰어난 감각과 센스가 바탕이 되므로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HSP의 사회생활에는 뛰어난 장점으로 적용되지만, 결국엔 그 모든 외부 자극이 스트레스로 쌓이므로 혼자만의 재충전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모순적인 면모가 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결국 외향의 HSP도 본질은 내향의 HSP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두 가지 측면이 혼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가면성 우울증처럼 겉으로는 외향의 성격을 가지지만, 그 기저에는 깊은 내향의 HSP 성향이 깊이 깔려 있어 일상적인 생활에도 스스로 내면의 갈등을 겪으면서 병적으로 혼란스럽고 괴롭다. 나의 심리상태를 타인이 알아채 배려해 주는 것도 불편한 마음이 생겨 태를 내지 않으니 그저 무던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지인들과의 사적 모임이 그다지 반갑지 않고 약속 잡는 일만으로도 버겁지만 그래도 관계를 생각해 참석한다. 하지만 그 행위 자체가 괴롭다. 식당이나 카페의 주위 소음이 괴롭고 대체로 수박 겉핥기식의 수다로 흘러가는 모임의 대화에 급격히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렇게 흘려보내는 시간보다 혼자 조용히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거부감이 들지만 그렇지 않은 척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데 익숙해지고 극단적으로는 인간관계의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혼자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니 인간관계를 만들고 유지해 나가거나, 인간은 결국 혼자이니 혼자여도 괜찮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거나, 이건 자신만의 사고관이 확실히 정립되어 있다면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같은 모임이더라도 상대에 따라 자신의 마음 상태가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마음이 불편한 관계는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 관계에 들인 시간이나, 엮여 있는 다른 관계를 이유로 굳이 스스로가 괴로우면서 내 시간을 더 들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는 괴롭고 힘든데, 그 정도 일은 아니라는 식으로 치부하는 20년 지기의 친구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지만 진짜 속마음을 말하기 힘들다. 친구가 내 감정을 가볍게 보려는 의도가 없음을 알지만 공감의 반응이 내가 예상한 모습과 다르면 실망스럽다. 보통 이런 경우 HSP는 관계를 서서히 단절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앞서 말했지만, 관계는 상호작용인데 내 감정을 뚝 잘라버리는 느낌이 드는 상대는 어쩌면 나와 맞지 않은 사람이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내가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관계의 적당한 거리’를 설정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마음을 다하지 않는 것, 그것이 상대의 반응에 민감한 HSP가 건강한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다. 마음을 다한 만큼 기대를 하게 되고 그만큼 실망도 커지므로.

 HSP의 감정적 공감의 밀도와 크기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높은 차원에서 변동한다. 그렇기에 자신이 HSP임을 인지 했다면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해받기를 갈망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굳이 타인을 이해하려 들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혼란한 내면의 감정이 자유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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