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닫으면
영역과 경계의 문지기
예민하고 민감한 성향은 완벽함에 대한 기준점이 높고 외부 자극에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불안이 동반될 수밖에 없는데, 부모의 불화로 안정적이지 못했던 성장 환경은 나의 HSP 기질에 더해 불안 증상을 키우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불안 장애가 있으면 두통, 소화불량, 신경병증 등 육체적인 통증으로 발현되는 신체화 증상을 겪는데, 나는 나의 모든 감정과 욕구를 철저하게 통제하고 눌러내야만 하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던 탓인지 모든 통증에 무뎠다. 내 몸과 마음은 곪아 한계점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 참고 견디는 것에 익숙했던 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하기 싫고 힘들어도 할 도리는 해야 하는 거라는 엄마의 교육관이 나의 정신적인 통제의 틀을 만들어 냈다. 내가 40도에 육박하는 고열과 몸살에 시달리면서도 내게 주어진 일에 대해서는 어긋남 없이 해내야 하는 강박적인 성향이 강한 것은, 그 때문이다. HSP의 심리적 안정감은 채워지지 않으면 불안으로 발화되는 강도가 일반적인 경우보다 세진다.
HSP는 상대의 말과 행동의 숨은 의도를 빠르게 파악하고 몇 수를 앞서 다양한 상황을 예상해 대처 방안까지 생각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문제는, 사고관이 정립되지 않고 자아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시기의 이러한 능력은 사회적 민감성만 높인다. 자신의 감정과 욕구보다는 타인의 것에 맞추려 들며 그 시선과 평가에 민감해진다.
안타깝게도 나는 순응형 아이였다. 특히 주 양육자였던 엄마의 모든 생각과 시선을 그대로 답습하고 수용하는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고 그게 엄마를 뿌듯하게 하는 어린 시절 나의 타이틀이 되었다. 어른들이 어린아이에게 부모 말을 잘 듣거나 어른들의 말대로 아이가 행동했을 때 착하다는 말을 무심코 한다. 하지만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말일 수 있다. 착하다는 칭찬은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내세우는데 독이 된다. 특히 사회적 민감성이 높고 어른의 미묘한 표정과 감정 변화를 잘 읽어내는 예민한 아이에게는 그 스치는 말 한마디가 복잡한 내면 체계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아이를 향한 어른의 착하다는 말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HSP였지만 성향상 순응형이었던 나는 엄마와 표면적으로 부딪히지는 않았지만, 그 여파는 내 삶의 모든 면에서 지금까지 무의식적으로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도 나는 내 말을 하기보다 상대의 말을 듣기만 하는 축에 속했고, 내키지 않지만 억지로 하는 일이 많았고, 힘들지만 힘든 태를 전혀 내지 않았으며, 나의 힘듦을 누구와도 나누는 법을 알지 못했다. 누군가 나의 영역에 침범하는 행위를 방어할 여력이 없었으나 나는 타인의 영역을 절대적으로 존중했다.
자신의 경계가 약한 사람인 경우, 타인의 감정을 습자지처럼 빨아들여 자신의 감정을 섞는다. 이는 마음을 헤아리는 긍정적 공감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과하게 느끼는 부정적인 공감이다. 대체로 감정선이 세밀한 HSP는 이런 부정적 공감이 우울과 불안의 증상을 키우므로 자신만의 영역과 경계를 분명히 세우고 그 선을 넘어서려는 사람이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일지라도 분명하게 차단해야 한다. 하지만 대체로 그 문지기 역할을 스스로 해낼 여력이 없다. 나 역시 그랬다. 문지기의 필요성조차 몰랐던 나의 경계는 세워진 적이 없었으며 나의 영역은 여러 사람이 공유했다. 나만 참고 견디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어리석은 믿음은 나의 감정, 에너지, 경제적인 부분까지 무상으로 타인에게 흩뿌려져 바닥이 드러난 뒤에야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결과 나는 마흔을 목전에 두고 심한 삶의 몸살을 앓았다. 한 발짝만 물러서면 벼랑 끝 허공인 지점까지 몰리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그때부터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닫았다. 내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상황들을 관찰하고 외부 자극과 거리를 두며 내면의 불안을 무심코 바라보는 과정을 반복했다. 회피라고 보아도 좋다. 그렇게 해서라도 혼란한 정신이 숨 쉴 공간을 만들어야 했다. 그 과정은 사십여 년 동안 살아온 나를 뒤집는 과정이었기에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 지난하고 지리멸렬한 시간은 썰물의 갯벌에 발이 묶여 움쭉도 못한 채로 보냈다. 마치 갯벌에서 뻗어 나온 검은 손이 나의 발목을 휘감고 있는 것처럼.
2-30대에 축적해 온 것들로 한창 사회적 성과를 내야 할 시기에, 나는 3년이라는 시간을 그렇게 정지된 상태로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혀 있었다.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던 그 시기에 닭이 알을 품듯 나는 나를 그렇게 품고 있었나 보다. 내 삶의 영역과 경계를 세우고 두텁게 만드느라 고립을 선택했지만, 그 울타리에 적당한 크기의 문을 내고 나를 지키는 선에서 유연하게 여닫는 기능을 만드는 쪽으로 그 시간의 효율을 높였다. 객관적으로 볼 때, 그 3년은 가족을 비롯한 모든 관계를 심리적으로 단절하고 갈등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명목적 성찰의 시간이었다. 히키코모리처럼 병증적 단절의 정도만 아니라면 HSP 내면의 건강한 문지기를 키우는데 회피와 단절의 시간을 적당히 활용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