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옆자리 테이블의 아주머니가 큰 목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고 동석한 동행이 손아랫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상대방에게 으스대고 거들먹거리는 말투가 유난히 귀에 꽂혀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는데 입맛이 뚝 떨어져 결국 몇 숟갈 뜨지 못하고 울렁이는 속을 눌러가며 그들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공장소에서 의도가 있건 없건 간에 큰 목소리로 통화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흔하다. 그런데 왜 나는 식사를 포기하고 나올 만큼 불편했던 걸까.
사람들이 붐비는 식당의 점심시간은 들고나는 사람들의 움직임, 직원의 분주한 움직임, 음식 주문하는 소리, 식기 부딪히는 소리, 사람들의 대화 소리 등이 어우러져 복잡하다. 모든 소음이 귀를 통해 날카롭게 들어와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바람에 정신이 멍한 상태가 된다. 그래서 가능하면 사람이 많은 시간대나 장소는 피한다. 이날은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때여서 사람이 많지 않았고, 평소에 자주 가던 동네의 테이블 수가 적은 식당이어서 익숙한 곳이었는데 왜 그랬을까.
아무리 그 아주머니의 행동이 불편하게 느껴졌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짧은 시선으로 쳐다보거나 눈살을 찌푸리는 정도로 해 두고 각자의 식사를 이어간다.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서 밥을 먹다 말고 자리를 뜨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내게는 그 아주머니의 강한 목소리 톤과 크기, 상대를 대하는 강압적인 말투가 그렇게 두루뭉술한 형태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 아주머니가 뿜어내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느끼는 강도가 컸고 그로 인해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몸이 긴장했다. 그런 상태를 참기보다는 그 식당을 벗어나는 것으로 나를 파고드는 긴장감을 끊어냈다. 나는 식당을 나와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아주 얕은 리듬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의 파동을 자각하며 입으로 크게 숨을 내쉬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감정의 크기가 1이면, HSP(Highly Sensitive Person: 아주 예민한 사람)는 10이다. 불편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식사를 이어갈 수 있는 상황이 내게는 식사를 포기하고 그 자리를 떠나야 할 만큼 예민하게 느껴진다. 기쁨, 화남, 슬픔, 놀라움, 두려움, 걱정 등 다양한 감정들의 파고가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1의 크기로 지나갈 일을 HSP는 10의 크기로 감정을 뒤집어쓴다. 그래서 고마운 일도 나의 온 마음을 다해 갚으려 들고, 기분 나쁜 일도 너무 크게 받아들여 마음이 곪는다.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지만,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오래 가지고 있기보다는 일이 벌어진 그 시점에서 충분히 느끼고 겪어내고 흘려보내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새로운 감정을 담으려면 과거의 감정은 그때 해소하는 게 맞다. 그래서 HSP는 무엇보다 자신의 예민한 기질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사람들의 말투와 표정 변화 하나하나에 그렇지 않아도 민감하게 타고난 신경계가 과하게 작동해 쉽게 피로하고 지친다. 똑같은 일상을 보내도 HSP는 10의 강도로 하루를 겪어낸다. 지쳐 떨어져 나가는 상황이 될 때까지 자신을 방치하지 말고 그 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피로한 상태임을 자각하고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해야 할 때를 자각하는 것, 그 멈춤이 필요하다. 멈추고 쉬어주면 될 문제를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려 자신의 감정을 참아가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하루 종일 이어가며, 자기 자신을 들들 볶아대며, 스스로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사고(思考)의 흐름을 깨야 한다.
HSP는 외부 자극을 ‘과도하게’ 감지한다. 직관적 상황 판단에는 장점으로 작용하지만, 타인의 감정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되기도 한다. 상대의 불편한 기색을 감지했을 때, 미루어 짐작하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직접 상대에게 물어봐야 한다. 대체로 HSP는 타인의 감정을 잘 캐치하고 놀랍도록 상대의 마음과 생각을 간파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하지만 상대의 대답이 자신의 예상과 다르다 할 지라도 캐묻거나 의심하지 말고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 타인의 감정은 타인의 것이므로,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선을 넘어 타인의 마음과 생각을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오만이다.
삶을 살아가며 느끼는 모든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 것, 극과 극을 달리는 감정 변화가 삶의 전반을 흔들지 않도록 양팔 저울의 중심을 맞춰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쁜 일에도 과하게 기뻐하지 않고 슬픈 일에도 과하게 슬퍼하지 않으려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두어도 좋을 만큼 중요하다. HSP에게는 내면의 고요한 상태가 ‘생명’과 같기 때문이다. 나의 감정의 크기가 타인과 다름을 인지했다면, 그 차이를 자각해야 늘 해일처럼 밀려드는 자신의 감정을 잘 다룰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기질을 가진 ‘내’가 ‘나’임을 그 자체로 인정해야 행복하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 줄 몰라서, 타인의 감정은 그대로 뒤집어쓰고 나의 감정은 눌러가며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았다. 내가 HSP 기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그 많은 생채기에 연고를 바르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상처를 만들지 않기 위해 ‘멈춤’의 상태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나에게 묻는다.
괜찮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