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흥미롭게 읽었던 뇌 과학 관련 서적에 인간의 뇌에도 총량의 법칙이 있다는 글귀가 있었다. 뇌가 기억하고 저장해 둘 수 있는 메모리의 한계를 설명한 문구였는데, 그 말이 맞다면 HSP(Highly Sensitive Person: 아주 예민한 사람)는 다른 사람보다 뇌의 용량이 큰 걸까? 단순히 물리적인 크기로 이해하기엔 어폐가 있고 정신적 활동량이 남들보다 ‘과하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HSP는 생각이 너무 많다. 그것도 아주 방대하고 광범위하다. 그래서 24시간 가동하는 공장의 기계처럼 생각이 쉬지 않는다. 핸드폰도 디바이스 저장 공간이 부족해지면 필요 없는 파일들을 정리해 메모리 용량을 확보해야 기기 사용이 최적화되고 잠시 전원을 껐다 켜야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법이다. HSP의 문제는 그 최적화 작업도 하지 않으면서 과거와 현재의 데이터를 얼기설기 쌓아둔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최적화 작업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기 힘든 내면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HSP의 기질이 질환은 아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고(思考) 체계와 감정 회로가 복잡하고 세밀하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서론, 본론, 결론에 이르기까지 남들보다 몇 배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 과정에서 타인의 의견, 말투, 표정, 행동까지 감각 정보로 밀려들기 때문에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넘어가기가 어렵다. 하지만 사람들은 HSP의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표면적으로 결론에 도달한 일들이, HSP의 내면에는 무거운 돌이 얹힌 상태로 남는다.
슬프거나 괴로운 일에는 ‘시간이 약’이고, 기쁘고 즐거운 일은 삶의 한 추억으로 앨범처럼 기억 저장고에 쌓아두는 편이 일반적이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그 힘든 일의 근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감각과 기억이 무뎌지기도 하고 살아가면서 사람이 생각하는 방향이 바뀌는 부분도 있어 당시와는 다른 시선으로 멀리 떨어져 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HSP에게는 그 시간이 딱히 약이 되지 않는다. 아주 사소한 모든 일이, 그 순간의 감정과 생각까지 덧입혀져 생동감 있는 스냅 사진처럼 자동 저장되기 때문이다. 추억으로 곱씹을 일들이 그렇게 쌓이면 더할 나위 없지만, HSP의 머릿속에는 시간이 약이 되어 무뎌지면 좋을 일까지 앨범에 켜켜이 쌓인 과거 사진들처럼 보관되어 있다. 어쩌면 감정적으로 해소되지 않은 과거의 그 시간이 늘 현재와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가위로 싹둑 자르지 않는 한 풀기 힘든, 거대하게 엉킨 실뭉치를 머리에 이고 사는 것과 같다.
성향에 따라서 이런 상태의 스트레스를 감당할 여력이 부족해지면 상황을 회피하기도 하는데, 그 회피조차 어려워 감당하려 드는 사람은 머릿속에서 딱따구리가 자란다. 보통의 조류들은 지저귐을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삼는데, 딱따구리는 노래를 못해서 나무를 쪼는 행위로 대체한다고 한다. 입 밖으로 감정을 표현하면 좋으련만, 딱따구리가 부리로 나무를 쪼는 듯한 두통이 일상을 방해할 정도가 되어도 HSP는 알아채지 못한다. 신체적 통증보다 내면의 통증이 더 큰 탓이다. 이것은 타고난 기질적인 부분이다. 딱따구리도 지저귈 수 있는 새였다면 딱딱한 나무통을 부리로 쪼는 품을 들일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HSP도 마찬가지다. 남들처럼 감정을 쉽게 표출할 수 있었다면 머릿속에 엉킨 실뭉치와 딱따구리를 굳이 키울 이유가 있겠는가. 그래서 과거의 일에 어렵게 속마음을 표현한 이에게, “그때 그렇게 얘기하지 그랬어. 넌 지금까지 혼자 마음속으로 꽁하고 있었던 거니?”라는 식의 반응은 금물이다. 늦게 말한 것이 잘못한 일은 아니므로.
HSP의 내면 상태는 저장강박증 환자들처럼 쌓인 물건들로 집 안이 지저분해지고 종국에는 내가 살 공간이 줄어들어 불편을 겪으면서도 물건을 정리하지 못하는 증상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정리를 하면 생활 환경이 쾌적해 지지만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정리하지 않으면 언젠가 물건더미에 깔려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당장은 편안하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 일인가. 이 길로 가면 절벽 끝인 걸 알지만, 낭떠러지를 향해 걷고 있는 것.
그만큼 내면의 상태를 직면하는 일은 고통스럽고 괴롭다. HSP는 자신의 엉킨 실뭉치와 딱따구리를 잘 다루어낼 수 있도록 스스로를 잘 들여다보고 보듬어야 한다. 어차피 내버릴 수 없는 거라면 공생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현명하다. 길 한 가운데 서 있어도 절벽 끝이라고 생각하면 그곳이 한 길 낭떠러지고, 절벽 끝이어도 길 한 가운데 서 있다고 생각하면 삶이 힘겨울 이유가 없다. 지금 당장은 낭떠러지를 향해 걷고 있는 듯하지만, 옳은 방향으로 향하는 내면의 방향키는 자신이 쥐고 있다. 엉킨 실뭉치를 잘라도 꼬인 매듭은 남는다. 결국 그 매듭은 내 손으로 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