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휴, 말도 마라. 넌 갓난쟁이 때 등에서 내려 눕히려고 들면 잠들어 있다가도 깨서 울어대는데, 오죽했으면 등에 업은 채로 엎드려 잤다니까. 유별나게도 엄마 애를 태웠어.”
몇 달 전, 사촌 언니의 출산으로 이모할머니가 된 엄마가 아기를 보고 와서 잠에서 깨서 울지도 않고 아주 순하더라고 나에게 전하면서 보탠 말이다. 엄마는 아주 불편한 성향을 지니고 있는데, 마치 녹음 파일을 틀어놓은 듯 토씨 하나까지도 똑같은 대사를 푸념하듯 종종 늘어놓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엄마가 일하고 저녁에 오면 피곤해 죽겠는데, 너는 하루 종일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시시콜콜 종알거렸어. 종국에는 내가 넌 입도 안 아프냐고 한마디 해야 입을 다물더라.”
나의 어릴 적 모습이 엄마의 입으로 ‘어떻게’ 통과되느냐에 따라 그 정보가 분류되는 나의 감정 라벨이 달라진다. 내가 엄마의 말을 굳이 ‘푸념’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그 ‘어떻게’에 해당하는 몸의 언어에 부정적인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똑같은 말이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되는 데에는 몸의 언어로 볼 수 있는 말투, 어조, 표정이 큰 몫을 한다. 어쩌면 흘려들었어도 무방할 앞선 짧은 일화는, 엄마의 녹음 파일에 저장된 많은 레퍼토리 중 하나다. 내 기억에는 없는 당시의 상황이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엄마의 부정적인 몸의 언어와 무신경하고 반복적으로 흩날리는 말들은 마음의 상흔으로 남았다. 상대의 감정은 배제하고 당시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실어 쏟아내는 강하고 날카로운 목소리 톤과 자신이 힘들었다는 면만 강조하는 편향적인 사고가 담긴 부정적인 말의 높낮이 그리고 그런 말을 할 때마다 한쪽 입술 끝을 비튼 채로 들썩이는 엄마의 얼굴 근육은, 그렇지 않아도 민감한 나의 감각들과 예민한 사고(思考)의 레이더를 더 미세하게 만드는 데 한몫했다. 엄마가 같은 대사로 다른 몸의 언어를 취했다면 어땠을까. 마음의 상흔보다는 한때를 추억하는 모녀지간의 담소(談笑)로 남을 수 있지 않겠는가.
냉정하게 보자면 타인인 엄마의 말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면서 나의 자아 정체성이 형성되는 상황들에 노출되어 있었던 어린 나는, 나조차도 내가 그런 아이인 줄 알았다. 태어나 처음 맺는 타인과의 첫 관계 훈련이 혼란스러웠으므로 성장하면서 개인적으로 사회화되는 과정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사실은 지금도 매 순간 관계의 연속인 사회 생활이 어렵고 힘들다.
나는 HSP(Highly Sensitive Person)이다. 미국 심리학자 일레인 아론 박사가 도입한 개념으로, 인구의 15~20%가 기질적으로 예민하고 민감하다고 한다. 비슷한 듯 다른 두 가지 개념은 일상의 모든 자극에 반응하는 방식에서 예민한 사람은 부정적으로, 민감한 사람은 긍정적으로 반응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나는 두 가지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나는 모든 감각이 예민하고 주변 환경 변화에 민감하다. 나의 감각과 감정 레이더망은 견고하고 촘촘하게 잘 짜여진 거미줄과 같다. 거미는 거미줄을 자신이 이동하는 통로나 생존을 위한 사냥 도구로 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사용한 거미줄은 먹어버리고 다시 치기도 한다. 하지만 한 번도 새로 만들지도, 보수한 적도 없는 내 마음의 낡은 거미줄에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감각 정보가 여과 없이 걸려있다. 거미처럼 먹어 치우지도, 그렇다고 마음을 들여다보는 이동 통로로도 쓰지도 못하면서 무엇 때문에 힘든지 깨닫지도 못한 채 지난 시간속에 갇혀 있었던 나 자신이 무척 안쓰럽다.
HSP를 알게 된 시점으로 나의 인생이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힘들고 지치기만 했던 나의 마음이 스스로 치유의 방향을 설정하고 그 방향으로 표지를 세우는 중이다. 불과 삼십 대의 끝자락에서 마흔으로 넘어가던 3년 전부터 현재 진행형인 셈이다. 무너진 내면 체계를 세우는 데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나의 과거를 직면하는 그 과정이 고통스럽고, 인간이 지닌 본래 관성이 힘들어도 편하고 익숙한 환경으로 돌아가려는 습성이 있으므로.
HSP는 유전학적으로 부모로부터 기질을 물려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에 풀리지 않던 문제의 해답을 찾은 것처럼 속이 뻥 뚫렸다. 태어날 때부터 내 마음은 미세한 감정 거미줄로 설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인정했다. 그것이 부정할 수 없는 엄마와 나의 연결고리를 객관적으로 사고(思考)할 수 있는 열쇠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숙자처럼 떠돌이 생활하는 듯했던 마음이 더 늦지 않게 쉼터로 찾아들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나는 엄마의 편향적인 사고로 정립된 그런 성향의 아이였던 게 아니라, 잠결에도 듣는 감각이 예민해서 작은 소리나 움직임에도 잠이 잘 깨는 잠귀가 밝은 아이였을 뿐이고 하루 종일 일하느라 고단한 엄마의 표정에서 힘든 감정을 읽어내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전하면서 엄마의 기분을 즐겁게 해 주려고 고군분투했을 기특한 아이였음을, 지금의 내가 가볍고 무심한 말들로 상처받았을 과거의 어린 나에게 위로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