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인 ‘오늘’을 살고 있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같지만, 각자의 시곗바늘 속도는 다를 수 있다. 모두가 같은 속도로 살아갈 수도,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적 기준이 정한 그 틀 안에서 다른 사람이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끊임없이 주파수를 맞춰가며 콩나물시루 속 콩나물처럼 애를 쓰며 살고 있다.
생각해 보라.
삶은 얼마나 비열한가.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나에게 주어졌다는 것, 그리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은 흘러간다는 것, 그리고 나의 의지가 품고 있는 희망을 때로는 절망으로 끌어내리기도 한다는 것만으로도 그 이유로 충분하다. 나의 예민하고 민감한 감각에 이런 생각이 더해서 나의 시곗바늘은 아주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마음의 동력이 약해졌다. 그럴 때마다 내가 나에게 집요하게 물었다.
여기서 끝내고 싶니?
처음에는 대답을 회피했다.
반복해서 묻고 또 물었다.
멈추게 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어느 날, 나는 대답 대신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하나씩 구겨 쓰레기통에 버리는 이미지를 머리 속에 그려냈다. 그래도 꼬리는 무는 것은 불에 태워버리는 상상을 했다. 깊은 무의식 속에 갇혀서 부지불식간에 불안으로 정체를 드러내는 나의 과거 흔적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고 현재 진행 중이며 그 작업이 언제쯤 끝이 날 지는 모르겠다.
직면하는 것이 두려워 애써 회피하고 묻어두었던 나의 지난 과거가, 그 과거에 동반했던 모든 관계의 상처가 곪아 염증이 되도록 스스로를 내쳐 두었던 나를 일으켰다. 나는 나를 불쌍하게 보지도 안쓰러워 하지도 않았다. 자기 연민은 자신이 만든 과도한 이타주의의 결과물일 뿐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자기희생이 아니라 자기 충족감 채무가(어떤 방식으로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깔린 자기희생은 다른 각도에서 보면 오만이다. HSP는 자신이 가진 기질적인 통찰력으로 자신을 억압하고 타인을 통제하려 들기보다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삶은 그 사람의 몫이고 인간은 누구나 자생하는 힘을 가졌다.
인간은 성향은 다양하고 다각적인 사고관을 가졌기에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다. 내가 가진 강력한 힘을 의심하지 말고 스스로를 존중하며 마음의 소리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남들과 다를 뿐이다. 다르다는 게 옳고 그름의 척도가 되지 않기를.
오늘이 내일의 과거가 되었을 때 후회나 상처가 남지 않도록 매 순간 빛나는 찰나의 선택을 하도록 하겠다. 나의 시곗바늘 초침이 1초씩 앞으로 나아가도록, 나의 의지 없이 시작된 삶의 비열함이 나의 의지대로 과정과 끝의 환희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내 자신을 돌보는 아주 큰 일을, 나는 지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