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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Aug 17. 2023

2023년 아르코창작기금선정작
-나의 단어, 수호자에게

9

   ⟨당신의 단어⟩ 속 시오는 카메라를 들고 홍콩으로 갔고, 텐진 역시 목소리로 여정에 동행했다. 시오와 텐진이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소호의 쌀국수 가게였다. 길게 늘어선 줄에서 시오는 주말여행을 온 또래의 한국인들을 만났다. 헝, 하고 한 박자 쉬었다가 살짝 콧속으로 빨아들이는 식으로 ‘컹’을 발음하는 그들은 각각 방황과 내일 없음을 자신의 단어로 뽑았다. “방황하는 사람이랑 내일이 없는 사람이니까 서로에서 부담 없네.” 그렇게 말하며 방황 씨는 온종일 끓여댄 소고기에서 나온 기름으로 미끈해진 바닥을 하얀 운동화로 살살 쓸어댔다. 내일 없음 씨는 연두색 플라스틱 젓가락을 내밀면서 국수나 먹으라고 시큰둥하게 받아쳤다. 


   식사를 마치고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에서 그들은 높은 조도의 핑크빛을 뿜어내는 간판을 발견했고,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자꾸만 흔들려서 포기해야 했다. 다음 날 시오는 내일 없음 씨에게 메시지를 받았다. 날빛을 머금고 선명하게 찍힌 홈리스(homeless)는 오늘부터 나의 단어라는 설명과 함께 왔다. 화면은 까맣게 페이드아웃 됐고 시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혜령 씨, 당신의 단어는 무엇인가요?”


   스크린 위로 초록색 양말을 들고 웃고 있는 시오와 빨간 니트를 어깨에 두른 내가 나타났다. “이거 써도 되는 거지?” 장난스런 말투로 시오가 물었다. “그래라.” 내 목소리가 흘러나왔는데 극장 스피커를 통해 듣는 낯선 음성에 얼떨떨했다. 무엇 때문에 저렇게 심드렁하게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잠깐의 적막 후 시오 목소리가 들렸다. “나의 단어는요? 아, 아, 아.” 아, 아, 아, 허밍을 듣는 순간 나는 기억의 도래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너의 질문은 찾았니?” 그 질문 앞에서 나는 한없이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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