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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Aug 17. 2023

2023년 아르코창작기금선정작
-나의 단어, 수호자에게

7

   터미널을 자신의 단어로 뽑은 텐진은, 딱 거기까지만 가능했다. 터미널에 앉아서 오는 이들과 가는 이들을 바라볼 수는 있었으나 자신이 오고 가는 사람이 될 수는 없었다. 대신 그는 눈을 얻었다. 텐진은 자신의 목소리로 시오가 만난 이들의 단어를 전달했다.


   맥그로드 간즈를 떠난 시오와 텐진의 ⟨당신의 단어⟩은 터키 이즈미르의 고성(古城) 근처에서 삼십 대 후반의 한 여자를 만났다. 그는 엄마, 그리고 세 명의 이모들과 함께 왔는데 여행인지 노예 체험인지 잘 모르는 채로 며칠을 보내다가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던 중 인터뷰에 응했다. 여자는 당신의 단어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곧장 균형과 조율을 뽑았으나 잠깐 고민하더니 감튀!로 바꿨다. 느낌표는 꼭 붙여달라는 말과 함께. 마음이 가라앉는 날에 감자튀김을 먹으면 조금은 위로 떠오르는 기분이 든다며, 웨지도 나쁘진 않지만 기본 스타일인 프렌치프라이를 제일 좋아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인터뷰를 마친 감튀! 씨 앞에는 식은 웨지 감자가 서너 개가 남아 있었다.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는 화산을 보겠다며 새벽 세 시에 혼자 산길을 걷던 이십 대 후반의 여자를 만났고, 

그에게서 심연을 얻었다. 심연 씨는 정작 화산의 분화구를 들여다보길 주저했는데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다 한들 그게 심연이겠냐며 자조적인 말투로 말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함께 여행한다는 메이트 구리 씨를 자랑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구리 씨는 납작하고 보들보들한 초록색의 개구리 인형이었다.


   자바섬을 떠나 발리섬으로 가는 페리 안이었다. 시동이 꺼진 버스의 제일 뒷좌석에 앉아있던 시오는 짠 바닷바람을 맞으며 앞자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다. 대장암 3기 선고를 받았으나 병원에서 눈 감기 싫어 여행을 시작한 오십 대 후반의 남자는 오해가 화산으로 이끈 힘이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오해 씨는 출발 직전 대장의 종양이 실은 염증을 오진한 것임을 알게 됐고,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울컥하는 마음으로 길을 떠났다.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은 아닌 여행을 하는 오해 씨의 이야기 후에 심연 씨가 재차 등장했다. 발리 옆에 위치한 작은 섬 누사 렘봉안에서 만난 심연 씨는 자신의 단어를 수정하고 싶다고 했다.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거쳐 파키스탄 훈자, 살구나무의 마을에 가고 싶지만 출발지인 카슈가르가 있는 위구르 신장 지역의 정세 불안으로 갈 수 없다고, 훈자는 괜찮겠지만 파키스탄도 만만치 않다며 별 탈 없이 여행할 수 있을 정도의 안정을 원했다. 그건 곧 그곳에 사는 이들에게도 최악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평화까진 아니라도 최악은 피할 정도의 안정, 시오와 텐진이 만난 열세 번째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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