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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Aug 17. 2023

2023년 아르코창작기금선정작
-나의 단어, 수호자에게

5

   석사논문을 준비하던 봄이었다. 그날 나는 중앙도서관 100번 대 철학과 800번 대 문학 서가를 오가며 종일 시간을 보냈다. 목과 허리는 뻣뻣하고 눈도 뻑뻑해서 잠깐 쉴 생각에 지하 휴게소로 내려갔다. 과제와 시험 준비로 분주한 학생들을 둘러보다가 캔 커피를 하나 샀는데 문득 이 휴식이 가당키나 한가 싶어졌다. 논문에 쓸 만한 키워드도, 참고할 만한 구절 하나도 얻지 못한 날, 달달한 것은 기분을 낫게 해주지 못했다. 빈 캔을 버리려는데 쓰레기통 앞 게시판에 붙은 영화제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독특한 무늬로 직조된 붉은 옷을 입은 이들 아래 적힌 ‘티베트’는 흥미롭지 않았으나 무료 상영이었다. 게다가 멀리 갈 필요도 없는 게 후문 근처 영화관에서 하는 영화제였다. 성과 없는 하루의 끝자락, 나는 피로와 자책을 안고 걸음을 옮겼다.


   이런 주제의 영화제에 얼마나 오겠나 싶었으나 예상과 달리 영화관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미세한 틈도 없이 겹치고 겹친 말들에 둘러싸이자 피로는 배가 됐다. 그냥 집에 갈까 하는데 누군가가 나를 아는 체했다. 이따 보자, 하고선 반대편 좌석으로 가버린 시오를 보다가 엉겁결에 자리에 앉았다.


   중국의 티베트 침공, 그 역사적 배경과 현재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사실, 지겨웠다. 무겁게 내려오는 눈꺼풀을 깜박이며 끝나기만을 기다리는데 나도 모르게 스크린 쪽으로 몸이 기울었다. 다큐멘터리는 마지막으로 티베트를 탈출하는 사람들을 담았다. 풀 한 포기 없는 모래 언덕만 넘으면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와, 그가 이끄는 망명 정부가 있고, 그래서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인도 군인들은 몽둥이를 휘두르며 티베트인의 월경을 막았다. 나는 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 세계에 없던 이들로 인해 눈물을 흘렸고, 목숨 걸고 국경을 넘는 이들 앞에서 스스로를 질책했다. 저들을 봐, 생존과 존엄의 문제야. 너는, 너의 고(苦)는 고작 아닐까. 고작 석사논문이잖아. 배부르고 철없는 투정이라고. 87분이 지나는 동안 자책의 색은 확연히 달라졌다.


   월경은 실패했고 다큐멘터리는 끝났다. ‘이따 보자’가 마음에 걸렸으나 언제 밥이나 먹자와 비슷한 인사려니 여기고는 상영관을 빠져나가려는데 누군가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뒤를 돌아보니 시오였다. “이따가 지금인데.”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어어, 만 반복했다. 시오는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오른쪽 검지로 내 어깨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 “톡톡, 밥 먹으러 가자.” 그 가벼운 손짓에 어쩐지 이스트를 넣은 밀가루 반죽처럼 부풀던 어둑한 기운들이 펑, 터져 버릴 듯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서너 발자국 앞서가는 시오를 따라 걸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라멘 식당에 발을 들여놓은 후였다. 빈자리는 벽을 보고 길게 놓인 테이블뿐이라서 나와 시오는 나란히 앉을 수밖에 없었다. 테이블 주위로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 사람, 시오는 누구인가. 오가다 마주치면 가볍게 묵례는 했으나 대화해 본

 적 없는 일 년 선배, 학부 학번은 같다고 들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말 한마디 나눈 적 없는 어색한 사이. 흠흠, 헛기침만 연신 내뱉었다. 그렇지 않아도 길고 좁은 실내는 낮은 조도의 주홍빛 때문인지 더 갑갑하게 느껴졌다. 하필이면 음악도 없었다. 뭐라도 흘러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아까 들었던 티베트 전통 음악이라도 좋으니 제발.

 

   내가 속으로 주인의 센스 없음을 탓하는 동안 시오는 상체를 20도쯤 뒤로 젖힌 채로 벽에 붙은 메뉴판을 천천히 읽었다. 직사각형 나무 조각에 새겨진 글자에 시선을 두고 머리를 까딱까딱 흔들면서, 옆 사람이 불안할 정도로 세차게. 내 오른손도 덩달아 시오의 등 언저리에서 머뭇거렸다. 시오가 시오는 없네, 하고 작게 중얼거린 후에야 움직임은 멈췄고, 나도 낯선 역의 1번과 2번 출구 앞에서 덜 헤맬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처럼 굴던 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주방 쪽에서 그릇 부딪히는 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들렸다. 먼저 입을 뗀 건 시오였다.


   “나는 미소라멘. 너는?”


   “…나도 같은 거.”


   “내 이름은 시오야, 라고 말하면 진짜냐고 묻는 일본인도 있어. 세상에 시오라멘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부모님은 다른 이름을 택했을까? 세 개의 선택지가 있었대. 영복, 동강, 시오. 복실이나 똥깡이로 불릴 바에야 시오가 낫다 싶었나 봐. 시오가 시기와 미움을 뜻한다는 걸 안타깝게도 엄마와 아빠는 몰랐어. 배움이 많지 않은 분들이거든. 그런 선택지를 준 사람 잘못이지.”


   갑작스레 쏟아내는 말들에 뭐라 대꾸할지 고민하다가 아닌 줄 알면서도 혹시 시오니즘의 시오냐고 물었는데 시오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지 아니고 에스 쓰는데. 지오니즘 아니고요, 시온 아니고요, 시오입니다.”


   짐작대로 시오는 유대교를 믿지 않았고, 교회나 성당에 나가지도 않았다. 딸이 시험장에 있던 시간, 시오의 엄마는 오대산 골짜기에 있다는 작은 암자에서 1교시 언어영역 시간에 절을 하고 잠깐 쉬었다가 또 2교시 수리영역이 끝날 때까지 절을 하고는 현미밥과 소고기뭇국에 깻잎멸치찜과 연근아몬드조림을 곁들여 먹었다고 했다. 딸에게 싸준 것과 같은 도시락이었다. 소화에 무리가 없고 두뇌 활동에 도움을 주는 식사를 마치고-물론 소고기와 멸치는 골라내고 먹지 않았다-, 탐구와 외국어영역 시간에도 정성을 다해 부처와 보살들을 부른 엄마는 꼬박 일주일을 앓아누웠다. 들인 정성에 비해 성과는 미비했고 시오는 혹독한 일 년을 보내야 했다.


   “재수했으니까 언닌가, 그런 생각 금지. 나 빠른.”


   상대방을 고려하는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 화법이었다. 나는 일부러 벽에 튄 얼룩에 집중했다. 화용 언어에 약간 부족함이 있는 이와 무슨 얘길 해야 하나 싶었다. 옆자리 대화라도 들리면 좋으련만 혼자 식사 중인 남자와 여자는 앞에 놓인 라멘과 휴대폰만 번갈아 보고 있었다.


   학과 사람들의 입과 입을 떠도는 얘깃거리에서 시오는 아렌트였다. 인문관 복도를 지나가는 시오를 가리키며 나라 선배가 쏙닥거렸다. 스터디에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다가 옆에 있던 지완 선배에게 당신이 바로 아이히만이에요, 라는 말을 뱉은 후로 시오는 아렌트의 어깨에 앉게 됐다고 했다. “물론 지완 선배가 생각이 없긴 해. 별일이 다 있었다. 발제 때문에 교수님한테 깨질 수는 있지. 근데 다음 시간에 다시 해오라는 말을 들은 건 처음일걸. 거기서 끝났으면 지나갈 얘긴데 그 소리를 듣고도 다음 사람 발제할 때 핑크색 펜으로 다이어리를 꾸미다가 강의실에서 쫓겨난 거지. 시오 쟤, 사회성이 떨어지긴 해도 나쁜 애는 아니고. 좀 특이하지.”


   나는 아네트 베닝과 이히 리베 디히를 떠올렸다가 멋쩍게 웃고 말았다. 시간은 흘렀고 나도 타인의 관점에서 사유할 능력이 없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아이히만과,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던 그를 통해 평범한 모습의 악을 고찰한 책을 안다. 나치를 피해 독일을 떠나 미국시민권을 얻기까지 난민으로 살아야 했던 유대인 철학자도 안다. 맞다, 시오 아렌트. 그 사실을 인지하고부터 나는 침묵을 물리쳐야 하는 숙명을 지닌 수다꾼이라도 되는 듯 바삐 떠들어댔다.


   “…네 논문은 잘되고 있니? 내 논문은 산으로 가서 겨우 평지로 끌어내렸더니 도리어 심해로 곤두박질쳤는데, 다큐 보고나니까 논문으로 인한 고통은 별것 아닌 게 되네. 어떤 힘듦은 감히, 그래 감히가 되는 거 같아. 

그들 앞에서 감히 이게 뭐라고.”


   이 정도면 아이히만으론 보이지 않겠지. 안도하며 작게 숨을 내쉰 순간, 시오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게 객관적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영역인가? 고통은 절대적이진 않아, 적어도 내게는. 네가 느낀 감정을, 슬픔을, 좌절을 평가절하하지 마. 나도 감히 말하는데 네가 감히 안 그랬으면 좋겠어. 근데… 과연 우리에게는 어떤 책임도 없는 걸까?”


   코끝이 시큰해지더니 눈가가 촉촉해졌다. 하지만 눈물은 건조한 안구를 겨우 달래고는 사라졌다. 뜸을 들이며 뱉은 ‘과연’ 때문인지 문어체처럼 들리는 말에 요즘 <타인의 고통>을 읽나 싶었다. 의자 아래 바구니에 담긴 시오의 가방을 슬쩍 봤지만 수전 손택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중국을 상대로 싸울 거야?”


   아차, 싶었다. 별생각 없이 폭력과 전쟁을 일상으로 받아들인 사람처럼 비쳤으면 어쩌나. 하지만 다들 아이히만에게 얼마간 지분을 내주고 살지 않는가.


   “넌 국문과가 아니었을 것 같다.”


   “맞아, 나 국문과 아냐. 여기 출신도 아냐. 너 같은 사람들 때문에 대학원 생활 만만치 않았다.”


   “혜령 씨는 사두품이구나.”


   심드렁한 표정과 지나치게 부드러운 말투에 나는 눈과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분명 사, 두, 품이었다. 시오의 분류법에 따르면 지도교수의 애제자로 분류되는 소수만이 성골이 될 수 있었다. 동 대학 동 전공은 진골, 동 대학 타 전공은 육두품, 타 대학 동 전공은 오두품, 그리고 타 대학 타 전공은 사두품. 오리알이 될 바에야 다른 강에 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전공만 바꿔 진학한 시오는 육두품이었다. 편입이라는 변종도 있으나 그렇다고 삼두품으로 분류되진 않는데 어차피 사두품 이하로는 다 비슷비슷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강에서도 오리알은 될 수 있다는 연설을 마친 육두품이 분주히 움직였다. 테이블 밑 서랍을 열어 냅킨을 꺼내더니 가운데를 꼬아 리본을 만들고 그 위에 수저를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이 세계의 최하층에게는 지나치게 정중한 테이블 매너였다.


   김이 올라오는 그릇 두 개가 우리 앞에 놓였다. 시오는 차슈 하나를 입에 넣고 한참을 오물거렸다. 나는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진하고 묵직한 국물을 싫어하면서 이걸 왜 먹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고작 사두품밖에 될 수 없는데 ‘고’의 시간을 보내는 이유도 함께. 내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테이블 위로 침묵이 흘렀다. 오래가지는 않았는데 시오의 흥얼거림 때문이었다. …시오의 시오는 시오라멘의 시오도, 시오니즘의 시오도 아니지. 물론 시오지심의 시오도 아니야. 시기와 미움의 시오가 이름일 리가 있겠니. 시오의 시오는 착할 시에 대낮 오, 그렇다고 선한 낮은 아냐. 그럼 나는 어떤 사람일까.


   그날 밤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면을 몇 번 씹지 않고 삼킨 탓에 속이 불편했다. 명치 언저리를 살살 문지르다가 그만 웃어버렸다. 밥 먹자는 시오의 제안을 덥석 문 이유를 알 듯도 했다. 그러고 보니 가로등을 보지 않고 곧장 집으로 들어왔었다. 그즈음 나는 켜졌다와 꺼졌다를 반복하는 가로등 아래서 서성이곤 했다. 고장 신고를 하는 이가 없길 바라며 한참을 있다가 아무도 없는 방으로 돌아가는 게 마지막 일과였다.


   노래처럼 들렸던 시오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다짐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신분제 사회라면 최선을 다하지 않겠다고. 내 자리를 명확하게 깨달은 후 가로등 아래를 서성이는 일은 서서히 줄었다. 고장 신고가 들어갔는지 가로등이 수리됐을 때 심적으로 동요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시오와 나, 우리는 아무 때나 메시지를 주고받고 종종 만나 밥 먹는 사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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