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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Aug 17. 2023

2023년 아르코창작기금선정작
-나의 단어, 수호자에게

4

⟨인터뷰 : 당신의 단어⟩


   나는 인도 다람살라 맥그로드 간즈에 있는 티베트인의 망명지를 찾았다. 중동 분쟁 지역의 천막 난민캠프를 떠올리지 말라. 이곳은 형성된 지 육십 년이 넘었고 세월을 머금고 단단하게 뿌리내렸다. 이곳에서 양철 지붕 너머로 붉은 노을이 번지던 오후에 텐진을 만났다.


   텐진 : 무슨 말을 해야 하죠? 내 단어가 뭔지 모르겠어요.


   시오 : 당신이 하고픈 말이요. 텐진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일 수도 있고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것, 아니면 당신이 원하고 꿈꾸는 것일 수도 있고요.


   텐진 : 잘 모르겠어요. 나에게 그런 단어가 뭘까요?


   시오 : 있잖아요, 난 저 룽가가 좋아요.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 하얀색, 색색의 직사각형 천이 이어진 걸 보면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물론 저기 적힌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몰라요. 아마도 부처님의 말씀이겠죠?


   텐진 : 그럼 당신의 단어는 룽가예요?


   시오 :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텐진 : 근데 당신도 불자인가요?


   시오 : 난 절에선 부처님에게, 모스크, 여성 출입이 가능한 곳이 있다면 그곳에선 알라에게 기도해요. 물론 힌두교 사원도, 자이나교 사원도 들어가고요.


   텐진 : 하하하, 그게 뭐예요. …잠깐만요. 이거 봐요. 내 망명자 등록증이죠. 망명 정부에서 발급해 준 거예요. 오 년에 한 번씩 갱신해야 하죠. 나는 삼 세대에요.이곳에서 태어나 자랐고 여길 벗어난 적도 없죠. 그래서 당신이 부러워요. 여기저기 다닐 수 있는 사람들요.


   시오 : …혹시 돌아가고 싶나요?


   텐진 : 제가 돌아갈 곳이 어디죠? 저기요, 나는 그곳을 그리워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아니에요. 여기도 싫고 난민이니 망명자니, 그런 것도 지긋지긋해요. 그냥 멀리 떠나고 싶어요. 낯선 것을 보고 새로운 것을 먹고 특별한 사람을 만나고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어요. 아, 그러니까 내 단어는 저거예요.


   텐진의 시선이 닿은 곳에 지프 몇 대가 모여 있고 배낭을 메고 캐리어를 끄는 사람들이 오고 갔다. 룽가 뒤로 붉은 태양이 사라지고 사위는 푸르게 어둑해져 갔다. 터미널, 시오가 얻은 첫 번째 당신의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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