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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Aug 17. 2023

2023년 아르코창작기금선정작
-나의 단어, 수호자에게

3

   아까의 통화를 곱씹었다. 불쾌했으나 틀린 말도 아니었다. 나는 가르치는 사람, 성적을 주는 사람이 아니므로 학점을 책임질 수 없었다. 게다가 영민한 학생이었다. 담당 강사가 지난주에 졸업한 것도 맞고, 그러니 시간강사라는 것도 사실이었다. 미리 검색해 본 걸까. 국문과 최나라의 논문이 제출된 시기를, 아니면 전년도 강의목록을 확인했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다니 놀라운 학부생이었다. 한 세계의 지위 체계를 읽어내는 눈이 나는 부러웠다. 훅 불어온 바람 탓에 풍경이 꽤나 시끄럽게 울어댔다. 나는 창문 앞으로 의자를 끌고 갔다. 아직은 찬바람에 뺨이 얼얼해졌다.


   물고기 모양의 풍경은 지난가을 조교를 시작하며 내가 직접 걸었다. 시간강사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강사법이 시행된 후 학위가 없는 나는 강의를 계속할 수 없게 됐고, 학과 행정조교를 하라는 지도교수의 말에 딱히 델 핑계가 없어서 계약서에 사인해야 했다. 논문과 졸업, 그리고 강의가 동의어인 세상에서 학위 논문도 없고, 그래서 졸업도 하지 못한 내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좋게 생각하면 이력서를 쓸 때 한 줄 쓸 수도 있고, 게다가 학교에 나오는 일이기도 했다. 도서관에 발을 들이는 게, 아니 학교까지 오는 게 쉽지 않은 날들을 보낼 때였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논문을 쓰기에도 나쁘진 않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1970년대 여성 작가 소설에 나타난 애도를 주제로 잡았다가 석사논문처럼 환대로 확장해보라는 지도교수의 조언에도 나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도서관은,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퇴근 후 곧장 집으로 돌아가거나 카페나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과외를 하러 갔다. 논문은 내 일과에서 서서히 멀어졌고, 대신 풍경이 울 때마다 뛰쳐나가는 나를 상상하곤 했다. 어디론가 가고 싶을 땐 부러 창문을 열어 물고기가 울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결되는 괴로움은 아니었고, 그렇다면 풍경의 결말은 하나였다. 의자 위에 올라서자 휠들이 멋대로 돌았고 그 바람에 몸이 휘청거렸다. 형인이 언니, 하고는 뛰어와 의자를 잡았다.


   떼어낸 풍경을 저만치 있는 쓰레기통으로 던지려는데 주머니에서 휴대폰 진동이 느껴졌다. 지완 선배가 보낸 메시지였다. 혜령 선생님, 내가 어젯밤에 부탁했던 거 있잖아. 그거 학생들에게 안 보냈어요? 과제 때문에 빨리 연락해야 한다고 했잖아. 


   메일 주소록 안 주셨는데요, 라고 썼다가 지웠다. 내려와 의자에 앉아 다시 메시지를 입력했다. 저는 선생님의 연구조교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연구조교가 배정되지 않은 강사님이고, 저는 대학원 업무 담당자입니다, 라고 썼다가 또 지웠다. 대신 편집 버튼을 눌러 대학원 윤지완 선배를 윤지완 선생님으로, 다시 윤지완 강사님으로 바꿨다.


   개강 전 마련한 통합적 사고와 작문 강사 모임 자리에서였다. 학과의 지원에 관한 것, 예를 들어 자료 복사 등이 미비하다는 지적을 듣다가 가만히 있기 뭐해 한마디 거들었다. 학과장님께 말씀은 드려보겠지만 기대는 안 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라는 내 말에 분위기가 싸해졌고 그때부터는 입을 다물고 강사들의 말을 받아 적기만 했다. 화젯거리는 학생들의 수업 태도로 이어졌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또 입을 열어버렸다.


   “전 사무실 전화벨만 울려도 심장이 두근거려요. 어떤 억지를 피울지 몰라서요. 요즘 애들이란 표현은 싫지만 저도 감당 안 돼요.”


   침묵 위로 따갑고도 냉정한 시선이 느껴졌다. 박사논문은 시작도 못 했고, 모교에서 강의도 해본 적 없는 네가 우리의 고충을 아냐는 의미를 내포한 것만 같아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저들이 종종 해오던 부탁이, 실은 하급자에게 내리는 지시 혹은 명령이 아닌가 싶던 의심은, 의심이 아니었다. 관계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수용하지 못한 벌이라 여기며 나는 남은 회의 내내 고개를 깊게 숙이고 있었다.


   학과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안 배운 게 있다. 이사회와 총장 등 일부를 제외하고 학교의 갑은 차라리 학부생이고, 조교를 안 해도 돼서 갓 스물 넘은 아이들에게 ‘그쪽’으로 불릴 일이 없는 이들을 제외하곤 대학원 진학은 신분제의 가장 밑바닥에 자신을 밀어 넣는 행위였다.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 여섯 시 알람에 눈을 뜨면 나는 청소도구다, 라고 되뇌어야 했다. 내 위치를 거기에 두는 게 속 편했다. 학교, 교수, 강사, 학생이 쏟아내는 불평, 불만, 짜증, 화를 잘 담아야 하는 쓰레받기는 을도, 병도, 심지어 정도 아니었다. 쓰레기를 던지는 그들도 누군가의 을이라면 나는 주요 관계망에서 벗어난 비존재였다. 대학원의 사두품이, 다 같은 사두품이 아니라는 걸 시오도 알고 있을까.


   시오.


   메시지 창을 닫고 인터넷 창을 열어 시오를 입력했다. 방콕 에라완 사원 앞에서 폭탄이 터진 후로 종종 시오를 생각했다. 태국 정부가 위구르족을 중국으로 돌려보낸 데에 따른 터키인들의 보복일 수도 있다는 테러에서 한국인 희생자는 없었다. 그래서 별일 없겠지 싶었으나 걱정과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나는 검색될 리 없다는 것을, 희생자가 있다 한들 이름이 명시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오를 검색하곤 했다. 그건 내 습관이었다.


   늘 실패하고야 마는 습관은, 오늘은 달랐다. ‘-하시오’가 나오던 평소와 달리 다큐영화제, 감독 시오가 굵은 글자로 뜨는 기사가 검색됐다. 이게 시오라고? 설마. 하지만 ‘당신의 단어’가 아닌가. 드르륵, 의자 밀리는 소리가 내 귀에마저 거슬리게 울려 퍼졌다. 시계는 막 7시 반을 가리켰다. 형인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급히 짐을 챙겼다. 서두른다면 늦지 않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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