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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Aug 17. 2023

2023년 아르코창작기금선정작
-나의 단어, 수호자에게

6

   “저는, 숨 쉬고 있었습니다.” 논문은 왜 아직 이 모양이냐, 대체 뭘 한 거냐는 지도교수의 말은 질문이 아니었으나 시오는 답했다. 논문을 좀 못 썼기로서니 이렇게 질책받을 건 아니지 않느냐는 의견을 피력한 후 시오는 위대한 철학자의 이름을 빼앗기고 그냥 이상한 애가 됐다. 같은 질문을 받고 고개를 숙인 채 연거푸 죄송하다고 말한 나는 논문을 썼다. 선배들에게 딱딱한 검은 책을 건네며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이 불타거든 과하게 튼튼한 냄비 받침을 재로 만들기 위해 내가 저지른 일인 줄 알라는 말도 덧붙였다. 논문을 끝낼 수 있던 원동력이 시오의 묘하게 설득력 있는 분류법이었다는 건 말하지 않았다.


   논문 전달을 끝으로 나는 학교를 떠났고, 곧장 수험 생활을 시작했다. 대외적으로는 교사가 되길 원하는 부모님의 성화에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으나 실상 내 욕망에 따른 행보였다. 가난하고 불안할지라도 배우고 고민하며 살고 싶었다. 하지만 배우며 고민하는 삶에 수반되는 불안정은 늘 두려웠다. 더군다나 사두품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박사과정을 시작한들, 학위를 따고 졸업장을 손에 쥔다 한들 사두품은, 그래도 사두품일 터였다. 신분 없는 세계로 갈 테다, 새로운 세상에서 새롭게 살 테다, 노량진 학원가에서의 내 목표였다.


   많이 늦은 듯해서 조바심도 생겼으나 학부 동기 중에는 합격한 이보다 수험 생활을 이어가는 이들이 더 많았다. 나는 그걸 위안 삼으며 자신 있게 책을 펼쳤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손님과 어머니>에 흐르는 감정을 불륜으로 설명하는 수험서를 덮어야 했다. 수사 ‘하나’에 복수접미사 ‘들’을 붙일 수 없는 건 무의식적으로 획일화를 주입하는 거라 따져댔다. 그때 밤낮으로 꿨던 꿈속에서 나는 ‘하나들’이 자유롭게 통용되는 세상에서 사는 자였다. 당연하게도 임용고사 1차 시험에는 합격하지 못했다. 소식을 전하자 엄마는 수고했다며 푹 쉬라고 했는데 아빠는 달랐다. 약해 빠져서, 간절함이 없어서라는 말을 듣다가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의 무늬들을 헤아렸다. 꽤나 어지러운 일이었다. 눈을 감았다가 뜨기를 반복하다 보니 깜박이던 가로등이 떠올랐다.


   인쇄소에서 막 나온 논문을 건네며 나는 대한민국에서 스물일곱이면 늦은 거라고 말했다. 시오는 고개를 살살 저었다. 인생 이모작을 시작할 때라며 세 개나 보유한 중등교원 자격증을 써먹으라고 단호하게 말했는데 그렇게 말하던 얼굴이 아직도 선명했다. 휴대폰을 들고 새겨듣지 않았어야 했는데. 너 때문이야, 라고 썼다 지우고는 망해버린 게 분명한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라고 적었다. 책상 앞에 앉아 있었던 8개월이 너무나도 아까웠던 때, 스물여덟에게 한없이 미안하던 순간 나는 시오를 찾았다.


   두어 시간이 지난 후 답이 왔다. 그곳은 춥고 이곳은 따사롭지. …뜨거운가? 망한 자여, 실패한 인생이여. 이리 오렴, 내게로 오렴. 도서관을 불태우겠다는 계획은 당연하게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책 위로 먼지가 쌓이는 동안 아이히만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박사논문을 썼고 모교와 수도권 4년제 대학교에 시간강사로 출강했다. 아렌트는, 국문과의 아렌트는 사라졌다.


   육두품과 사두품의 말로는 다르지 않았다. 시오는 학교를 떠났을 뿐만 아니라 한국을 떠났다. 인근 나라를 잠시 방문하는 방식, 비자 런으로 90일짜리 관광 비자를 갱신하며 태국 방콕 여행자 거리 근처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몇 달째 지내는 중이었다. 이제 시오를 도망간 오리 새끼나 이상한 애, 육두품으로 부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어쩐지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도 같았다. 나는 시오의 이곳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곧장 예약했다.


   며칠 뒤 우리는 방콕 수완나폼 공항 입국장에서 만났다. 까무잡잡하게 탄 시오가 살짝 어색하기도 했고, 여행을 준비하느라 바닥난 통장이 떠오르면서 잠깐 후회도 됐지만 택시에 앉아 야자수와 읽을 수 없는 글자들로 채워진 간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시오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닥에 누워버렸다. “지금 몰려오는 긴장과 피로는 오래 묵은 거구나.” 그렇게 말하는 시오를 나는 빤히 바라봤다. 바닥에서 올려다보는 시오는, 그런 시오의 얼굴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생기가 느껴져서 기분이 이상해졌다. 나도 모르게 집에서 뭐라고 안 하냐고 물었다. 시오는 부모님 탓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시오는, 명은 긴데 역마살이 있대. 십 년 만에 얻은 자식이라 역마살은 ‘그깟’이었지 뭐. 어쨌거나 시오는 낯선데 또 이국적이어서 자신들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지 않나 하는 기대도 했으나 방향과 규모를 예상하지 못한 거지. 맥주 마실래?”


   몇 시간 후 스튜디오 바닥은 표범과 코끼리가 그려진 맥주 캔으로 가득 찼고, 우리는 그사이에 널브러져 있었다. 시오가 일어나 창문을 열었는데 구름이 잔뜩 낀 검은 밤하늘에 망고 같은 노란 달, 아까 몇 개나 깎아먹은 망고 색깔을 닮은 달은 보이지 않았다. 후텁지근한 바람이 싫었지만 내버려뒀다. 달도 별도 없는 창 너머를 응시하는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오래 바라보다가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시오야, 여기서 혼자 지내는 거 위험하지 않아?”


   “한국에 있는 우리 집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니? 저녁 준비하다 칼을 떨어트려. 발등에 꽂히진 않았는데 튕겨 나간 칼이 동맥을 찢어 과다출혈로 가. 강도가 들었는데 맞서다가 목을 졸릴 수도 있지. 넘어져서 부러진 뼈가 폐를 공격할 수도, 가스 밸브를 잠그지 않아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갈 수도 있고. 또 이중으로 책을 쌓아둔 책장이 무너지는 바람에 압사당하거나, 아니면 책이 떨어지면서 뇌에 손상을 입혀 그 자리에서 사망에 이르거나. 네 논문이면 정말 짜증나겠다.야, 한국이 제일 위험해. 주적 북한이 삼대 세습을 하면서 건재하잖아. 

어, 얼굴 굳어졌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근데.” 시오는 손바닥을 세워 내밀었다. “걱정은 경제적 지원과 함께요. 마음만은, 사양합니다.”


   그 말에 한참을 깔깔거리며 웃었다. 여기서나 거기서나 시오는 화용에 문제가 있고, 나는 내 멋대로 생각했다. 시오가 너무 멀리 있는 달을 욕망하는 것 같다는 착각, 이곳에서의 시간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오만, 건방진 마음들을 지워내야 했다. 크게 심호흡을 하는데 옆에서 시오가 부산을 떨기 시작했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스탠드를 켜자 꿉꿉한 어둠 속의 그가 순간 다른 세계의 존재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게 두려워서 눈을 감아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뜨자 카메라를 든 시오가 내게 물었다.

 

   “혜령 씨, 당신의 단어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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