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방커피
커피 중에서 뭐니 뭐니 해도 대중적이고 제일 맛있는 커피는 그 옛날 ‘커피1, 설탕3, 프림2’을 넣었던 일명 ‘다방커피’가 아닐까? 가장 좋은 학원을 찾으려면 커리큘럼, 교재, 선생님 등이 다 좋아야 하는데, 이를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결국엔 꼼꼼히 따져가면서 다~방문해봐야 한다. 다방커피의 맛을 구현한 믹스커피를 텀블러에 타서 손에 들고 이 학원 저 학원 발품을 판다.
학원에 관한 이야기라면, 초등학교에 가기(만6세 기준) 전에는 단연 영어유치원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대도시에 사는 대한민국 엄마라면 최근 트렌드를 따라 만4세부터 영어 유치원에 보낼지 말지를 고민하게 된다. 만5세 때 영어를 시작하면 파닉스 떼는 데 6개월 정도 걸리고 그 다음에는 실력을 늘려 가면 되는데, 막상 1학년 되어서 학원에 가 보면, 4세 때 시작한 아이들이 상급반을 다 차지하고 있어서 이제 막 시작하는 내 애만 뒤처지는 기분이 든다. 4세때 영어유치원에 보내면 파닉스 떼는 데는 시간이 좀 더 걸리지만, 5세 때 유창하게 이어 갈 수 있기 때문에 가성비가 제일 좋다. 만4세는 좀 이른 감이 있지만, 이때부터 영어를 시작한 다면 5세가 되었을 때 거의 원어민 수준의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것이 가능하다. 와우! 당신이라면 과연 몇 살 때 우리 애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겠는가?
첫째가 유치원 때는 만5세부터 영어 유치원을 보낼 것인가를 고민했었는데, 3년이 지나 둘째가 유치원에 갈 때는 만4세부터 영유를 보낼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첫째를 5세 때 보낸 엄마들은 조금 일찍 보냈으면 좀 더 영어가 빨리 늘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들기 때문이다. 둘째가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 놀이터에서 만난 엄마들은 3세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영어 유치원을 언제, 또 어디에 보낼 것인가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혹시 영유 생각하고 계세요?”
“몇 살부터 보내면 좋을까요?”
“이 동네는 영어 유치원이 어디가 좋아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으나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이야기 해 봤자 쉽사리 결론은 나지 않는다. 어쩌다가 주변의 선배맘에게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 조언이 곧 믿음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거기는 너무 놀이식이라 아웃풋이 안 좋고, 여기는 학습식이라 아웃풋이 좋대요.”
“아, 그럼 우리 입학설명회 할 때 같이 가볼까요?”
“좋아요, 저도 가 볼 생각 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엄마들의 영어 유치원 써치 모임이 결성된다.
10월달이 되면 영어 유치원들이 내년도 입학 설명회를 연다. 우리는 동네에서 5군데 정도의 영유를 후보에 놓고 입학 설명회 날짜와 시간을 확인했다. 입학 설명회는 친절하게도 겹치는 날짜가 없었다. 우리는 5군데를 다 가 보기로 했다.
영어 유치원은 커리큘럼이 비슷비슷하지만, 하얀 피부의 원어민이 있느냐, 교포 선생님이냐에 따른 차이도 있고, 그 선생님들의 전공이 무엇이고 얼마나 잘 가르치느냐의 차이도 있다. 그리고 점심식사도 잘 나오는지, 체육이나 미술활동 같은 것은 하는지 등등 천차만별이라 잘 골라야 한다. 또 아웃풋이 좋다는 이야기는 그 영유를 나오면 영어를 잘 하게 되더라는 이야기인데, 처음엔 ‘아, 그래서 그 영유가 좋은 건가보다.’ 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런 영유가 공부를 많이 시킨다는 이야기였다. 촘촘하게 매일매일 숙제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그렇게 여러 군데 설명회를 다녀보고, 시설도 점검해보고 내가 마음에 드는 영유에 등록하면 된다? 안 된다! 슬프게도 등록은 하늘의 뜻이다. 왜냐하면, 우리 애가 내가 마음에 드는 영유에 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바로 내가 얼마나 마우스 클릭을 잘 하고, 타자를 빨리 치고, 결제를 빨리 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영유에서는 결제 하는 거 연습하라고 일주일전부터 예비 결제 창까지 열어준다. 그러면 또 엄마들은 일주일에 몇 번씩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초를 잰다. 10초컷 안에 들어와야 안정권이다. 나도 계속 연습했는데 자꾸 12초가 나왔다. 이런!
그런데 나도 열심히 연습을 한 끝에, 내가 원하던 영유에 결제성공을 했던 날!
“와! 성공이야, 성공!”
드디어 해냈다! 어이없게 눈물이 났다. 이게 뭐라고. 대학시험에 합격한 것도 아닌데, 여기 보낸다고 내 애가 영어를 미친 듯이 잘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하지만 그간 클릭을 열심히 연습한 노력에 보상을 받아서인지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제 됐어. 우리 애는 여기 가는 거야.”
남편과 부둥켜안고 좋아했었는데...... 안타깝게도, 나의 노력은 그놈의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그 영유는 제대로 다녀보지도 못하고 끝이 났었다.
2020년 창궐했던 코로나는 우리 아이들을 밖에도 못 나가고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며, 학교나 학원에 가더라도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집에서 아이들을 케어하는 엄마들은 24시간 힘들어졌으며, 그래서 기관에 가서 공부할 수 있는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2년정도 지나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 시작되었을 때 둘째가 학교에 입학을 했다. 영유를 2년 보내고 영어가 유창해지는 것을 보면서 고민도 많았다. 매일 숙제가 많아서 그걸 해서 보내느라고 저녁시간마다 5살짜리를 앉혀두고 꾸역꾸역 숙제를 같이 했다. 아직 스스로 공부하는 단계가 아니었고, 학원에서 요구하는 숙제들이 보통은 어렵기 때문에 혼자서 하지 못한다. 그건 결국엔 다 엄마숙제가 되는 것이다. 진도는 또 왜 그렇게 빨리 나가는지 따라 가기 너무 힘들었다. 그런대도 1학년 때 대치동 영어학원에 들어가려면 이 정도 해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이다. 영유만 나오면 되는 줄 알았는데 또 그게 아니었다.
‘정말? 대치동이 그렇게 대단해?’
대치동 영어 학원은 가르치는 수준이 높아서 학원에 들어가려면 테스트를 보아서 합격을 해야 다닐 수 있다. 그래서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하고 있지 않으면 레벨 테스트조차 통과할 수 없다. 좋다고 입소문이 난 영어학원은 ‘그 학원에 들어가기만 하면 영어는 이제 걱정 없이 잘 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들이 아이를 그 학원에 집어넣으려고 몰려들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어 학원들은 레벨 테스트 보는 날짜를 정해 놓고 선착순으로 접수를 받는데, 이것이 바로 ‘예비초등1학년 대치동 영어 레테’이다. 첫째는 5세만 영유를 보내서 대치동이 멀기만 했는데 둘째는 2년을 가르치니 곧잘 했다. 나도 다른 엄마들처럼 대치동 학원을 보내보고 싶은 욕심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두근두근! 수요일 저녁 7시. 드디어 영어학원 레벨테스트를 위한 설명회예약일이다. 인터넷으로 신청을 해야 하는데 한번 클릭을 잘못하거나 느리면 끝이기 때문에 마흔이 넘은 엄마가 20년만에 PC방에 방문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나도 일단 시작은 했으니 끝을 봐야겠다 싶어서 성공하리란 일념으로 PC방에 갔다. 동네에서 가까운 PC방에 들어가니, 광활한 지하에 번쩍번쩍한 컴퓨터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음료나 음식도 주문할 수 있고, 매케한 담배냄새로 가득했던 옛날 PC방과는 달리 금연인지 쾌적하다.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마흔 넘고 애 때문에 별걸 다 해보네.’
자리를 잡고 앉아 비회원 번호를 클릭했다. 남편이 너무 오랜만에 가면 어떻게 하는지 모를거라고 했는데 의외로 간단했다. 괜히 쫄았네. 내가 쫄 것은 신청에서 떨어지는 것.
선착순 900명 한정.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치동 레테대란에 뛰어든다고 한다. 대치동이 멀어서 다니지는 않을 거지만, 자기 아이의 수준을 테스트해보기 위해 지방에서까지 응시를 한다고 하니 우리나라 엄마들의 뜨거운 교육열을 짐작이나 하겠는가?
하지만, 이것을 성공하면 레벨테스트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레벨테스트를 신청할 자격이 주어지는 설명회일 뿐이다. 설명회를 듣고 나면, 다시 선착순 600명을 온라인으로 신청을 받는데 바로 이것이 진짜배기다. 이렇게 두 번의 과정을 거쳐야 테스트를 볼 수 있고, 이 테스트를 통해 최종 70명 정도가 학원을 다닐 수 있다.
초 단위로 흘러가는 컴퓨터 시계를 켜놓고, 어디를 클릭할지 미리 연습까지 해가면서 초조하게 7시를 기다린다. 58, 59, 땡! 클릭!! 신청날짜를 고르고, 이름 쓰고 전화번호 쓰고, 신청 버튼 클릭!!!!!!
‘지금 신청하신 날짜는 마감되었습니다.’
아, 머리가 띵하다. 그렇게 연습했는데, 그렇게 고대했는데, 마감이라니!
남편한테도 집에서 하라고 부탁을 해놓고 온 터라 바로 남편한테 전화를 했다.
“신청했어?”
“응! 난 했어. 자기는?”
“아, 정말? 됐어? 휴, 다행이다. 난 못했어. 하.하.하.”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비장하게 PC방까지 간 나는 실패하고, 그냥 집에서 한 남편은 성공했다니! 그렇지만 남편이 아주 기특했다.
그 후로도, 다른 학원들 레테 신청도 열심히 했지만 정말 다들 가관이었다. 처음에 신청했는데 뭔가 주최측에서 잘못 됐다고 취소당하고 두 번씩 하게 만들지 않나, 밤12시에 신청을 하라고 하질 않나, 오프라인으로 줄을 서라고 하지 않나, 설명회를 2시간씩 하질 않나. 설명회를 들으면 들을수록 나의 다크써클은 내려오고 붙으면 그 학원에 가야겠지만, 어느 학원에 가야 하는지 비교하다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휴, 학원 하나 골라 보내기가 이렇게 힘들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