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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정 Sep 08. 2024

14. 선행이란

              --- 아인슈페너

  요즘엔 ‘선행’이 대세가 되었다. 영어는 물론이고, 수학에 국어, 이젠 사회, 과학까지 합세해서 전과목 선행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 같다. 천재는 타고 나지만, 영재는 만들어진다는 신념 아래, 내 아이를 영재로 만들기 위해서 남보다 먼저 가르쳐서 뛰어나 보이게 하는 것이다. 모두가 내 아이가 아인슈타인이길 꿈꾸고 있다. 크림 가득한 아인슈페너. 독일어로 ‘말 한 마리가 끄는 마차’라는 뜻인데, 엄마가 아이를 아인슈타인처럼 만들고 싶어서 아이를 이끌고 가는 느낌과 잘 어울린다.



  ‘선행이 꼭 필요한 건가? 나 어릴 때는 선행 안하고도 다들 잘 했는데......’ 

  나는 왜들 그렇게 선행에 목숨을 거는지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나 때는 영어도 수학도 중학교 올라가기 전에 한 학기만 먼저 배우는 정도였다. 그야말로 예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영어는 6년 선행, 수학은 3년 선행이 관례라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5살부터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추세이다. 그러다 보니 배운지 6년이 되는 초등 3학년 때 영어를 마스터하고, 그 다음 부터는 수학을 달린단다. 영어와 수학이 무슨 달리기 선수도 아닌 데, 정말 어릴 때부터 엄청나게들 달린다. 누가 빠른지는 남보다 얼마나 먼저 시작했느냐에 달려 있지만, 누가 잘하는지는 빠른 것에 비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옆집애가 시작하면 우리 애도 시작하게 되어있다. 우리 애만 안하고 놀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불안하니까.      


  아이가 영어 유치원을 다니면, 본전 생각에 낮에 공부하고 온 아이를 저녁에 복습시킨다고 문제집을 펴고 앉아서 같이 단어를 공부하고 영어책을 보게 된다. 그런데, 처음에는 파닉스로 시작해서 재미있던 수업이, 문장이 들어가고, 문법에 라이팅까지 들어가면 이제 아이는 힘들다고 하기 싫어한다. 놀아야 할 나이에 앉아서 영어 문법과 라이팅과 씨름하고 있다니. 엄마가 어렸을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나는 중학교가기 직전에 ABC부터 배웠기 때문에 나름 늦게 배웠는데도 수능영어까지 다 했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중학교 영어를 만4세,5세에 다 마스터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 휴유증으로 어쩌다 놀이터에서 들리는 다른 엄마들의 수다 속에선, 숙제가 너무 많은 어떤 원의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심리치료까지 받으러 다닌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다. 그렇게 되면 정말 큰일이지만, 막상 보내고 있을 때는 모른다. 

  ‘내 아이는 잘 하겠지?’ 하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 가 보니 1년이라도 영어 유치원을 나온 아이들이 반에서 80%정도였다. 그리고 영어학원을 다니는 아이들 거의가 수학학원도 다니고 있었다. 나도 대세를 따라 큰 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후, 영어와 수학 학원을 보내보다 보니까 요즘 교육에서 선행은 꼭 필요하겠다는 결론이 났다. 문제는 과연 선행을 얼마나 해야 하냐는 것이다. 내 아이가 머리가 좋은 것 같다고 해도 무턱대고 시키면 안 된다. 내가 첫째 때 못 시킨 선행을, 둘째는 한 번 시켜보겠다고 1학년 입학할 때부터 영어와 수학을 대치동 학원에 보내며 일명, ‘대치동 라인’을 따라가고 있었다. 이대로 쭉 가면 내 아이도 잘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앞서 아이의 괴로움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라이딩을 하고 숙제를 같이 하면서 나도 힘들었고, 아이도 괴로워하는 게 보였지만 애써 외면했다. 다들 이렇게 하니까 선행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라고 믿으며.

  그런데 곪으면 터지게 되어있는지, 슬슬 아이는 공부를 싫어하게 되었다. 영어 유치원에 다닐 때에도 매일 숙제를 내줘서 꾸역꾸역 어르고 달래가며 했었는데, 1학년이 되어서 영어 학원 라이팅 숙제가 많아지니 어느 순간, 아주 안 쓰겠다고 난리다. 둘째는 점점 학원 다니는 게 재미없다고 급기야 학원을 안 간다고 선언을 했다. 아이는 학원 문 앞에까지 가서 도망을 치기도 했다. 그런 아이를 잡으러 뛰어가면서 생각했다.

  ‘아, 그래도 학원은 다녀야 하잖아. 이게 얼마짜리 수업인데 이걸 자꾸 빠지면 어떡하니?’

하지만, 가기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밀어 넣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안 그래도 고집 센 아이인데 한번 싫다고 하면 절대, 네버 하지 않는다. 

  “어머니, 일단 보내주세요~ 교실에 들어오면 잘 해요!”

  선생님께서는 학원에 들어오면 막상 잘 한다고 보내달라고 하셨다. 나도 보내고 싶다. 정말이지 학원만 잘 가면 숙제를 안 해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들어가지 않으려고 마음먹은 날에는 뭘 해도 듣지 않았고, 결국 아이도 나도 맘이 상한 채 집으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2학기가 되어 학교 선생님과의 상담이 잡혀있었다. 코로나 여파로 전화상담이라서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둘째가 학교에서 의젓하게 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했다. 친구들과 싸우지도 않고, 다만 그리 활발하지는 않으며 두 명 정도와 친한 것 같다고 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잘 얘기 하냐고 하시길래. 거의 모든 남자아이들이 그렇듯, 물어보면 단답형으로만 대답하고 묻지말라고 한다고 이야기 했다.  그런데, 연이어 하시는 말씀이 학교에서 간단히 자존감 검사지에 체크를 하게 했는데,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1~5 에 1점/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 1~5 에 1점을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즉, 아이는 ‘나는 행복하지 않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도 없다.’ 라고 느끼고 있다는 말이다. 충격이었다.

 ‘어? 조금 전에도 나랑 깔깔 거리며 웃고 떠들었는데 이게 무슨 말? 내가 뭔가 한참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1월부터 다니던 학원이 너무 빡쎄서 그런가...... 내가 봐도 숙제가 너무 많긴 한데......’

 결국 안간다던 그 학원은 그만 두고, 숙제가 좀 적어 보이는 동네 학원으로 옮겼다. 애가 학원 앞까지 가서도 안 들어가니 그 어려운 시험을 봐가면서 들어간 대치동 영어학원이지만, 더 이상 다닐 도리가 없었다. 

  ‘동네 학원은 좀 쉬우니 잘 다니겠지? 숙제도 적절하고.....’

  하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아이는 그 영어학원만 싫은 게 아니었다. 숙제에 치여 영어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직 1학년인데! 내가 몹쓸 짓을 한 건가? 그렇지만, 다른 아이들은 다 학원도 잘 다니고, 숙제도 꼬박꼬박 해오고 계속 잘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왜 유독 내 애만 힘들다고 하는 것인가? 아이는 또 한 두 번 가다가, 아예 학원을 가고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유투브에서 교육채널도 찾아보고, 곰곰이 지금까지의 행보를 되돌아보았다. 내가 아이를 숙제 좀 안 한다고 ‘왜 다른 애들은 다 해 가는데 너만 못하니?’하면서 비난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어려운 학원에 시험을 봐서 자꾸 학원에 떨어지는 경험이 쌓이다 보니 아이가 자신에 대해 실망을 하고 시험에 대해 두려움이 생기면서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공부가 하기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책상 앞에 앉힐 수가 없었다.  

 ‘그래, 잠시 휴식시간을 가져야겠어. 이대로 밀어 붙이면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완전 잃을지도 몰라. 아직 1학년이니 1년 정도 쉬면서 신나게 놀게 해주자. 어렸을 땐, 잘 노는 것도 중요하잖아.’

  조금 마음을 비우고, 다른 애들은 학교 끝나고 학원에 갈 때 내 아이는 놀이터로 직행했다. 매일 1시간씩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좋아하는 축구만 다녔다. 그러니까 아이는 차차 짜증이 줄고 웃음을 되찾았다.   

  

  엄마가 되면 아이의 공부를 내가 책임져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 아이가 공부를 잘 하고 못하고가 마치 엄마의 성적표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란다.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머리가 보통이라도 열심히 공부하면 토끼를 따라 잡은 거북이처럼 좋은 결과를 이룰 수 있다. 그런데 공부할 마음이 생기게끔 해 주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는 앞으로도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아이가 나한테 뭐라고 해도 화를 내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너 지금 힘들구나.’ 하면서 한 발 물러나 바라봐 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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