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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정 Sep 08. 2024

15. 최선

            --- 핸드드립

  육아가 힘들어질 때 마다 서점에서 새로 나오는 육아서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읽을 땐 ‘맞아. 그래, 이렇게 해야지.’ 다짐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게 행동으로 옮겨지진 않는다. 모두 맥락은 비슷하다. ‘아이를 믿고 내버려 두라. 내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뭐 이런 말들. 

  나는 아이를 학원에만 맡기지 않고, 내 손으로 직접 내려 마시는 핸드드립 커피처럼 아이들을 돌보기로 했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중에서

 아이들을 키울 생각을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키우면서 아이들이 커 가는 모습을 그저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이도 행복하고 부모도 행복하게 되더라는 이야기이다. 그런 점에서 육아처럼 즐거운 일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아이들과 함께 뒹굴고 놀 수 있는 기간은 대단히 짧다. 막내까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면 사실 아이들과의 놀이는 끝나고 만다.

  아이가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아낼 때까지 무엇보다 부모의 참을성이 필요하다. 아이의 작은 몸짓,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나는 결혼 전에 그림책 작가였다. 30대가 되기 전에 내가 쓰고 그린 그림책이 4개나 되었으니,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어도 어찌 보면 나름 앞날이 창창한 작가였다. 그 시절 내가 그림에 몰두한 것을 보면 나 스스로도 감탄이 나왔다. 얼마 전에 친정에 가서 내 스케치북과 캔버스들을 정리하다 다시금 느꼈다.

  ‘와, 나 정말 열심히 했었구나! 이 많은 걸 다 그렸다니. 오, 이건 정말 지금 내가 봐도 잘 그렸는데? 지금 다시 그리라면 나 이렇게 못 그릴 것 같아......’

  어린 시절 그린 그림을 보고 감탄하고 있다니. 슬펐다. 지금 난 내 일에 관련해서 무엇을 하고 있나? 작가와 주부, 그 중간 어디쯤에서 방황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지금 작가라고하기엔 작업을 너무 손 놓고 있고 머릿속만 복잡하고, 그렇다고 해서 또 전업주부는 아니라고 큰 소리 치고 싶다. 아직도 인세가 들어오고 있으니까. 가끔씩, 차라리 전업주부로써 아이들과 식사와 집 꾸미기에만 열중하면서 애들 학원만 챙기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내 머릿속은 항상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 소재로 그림책을 만들면 어떨까? 시간을 내야 하는데......’ 이런 생각들로 꽉 차 있어서 어디 하나 집중하기 힘들다.   

   

   나는 초, 중, 고를 모두 대치동학원들을 다니면서 자란 지금으로 따지자면 ‘대치동 키즈’다. 하지만 내가 어릴 때는 학원을 정말 필요한 것만 다녔고, 초등학교 때에는 다녀봤자 피아노, 미술, 태권도, 주산 정도였다. 영어, 수학 학원은 중학교때부터 다녔으며, 국어학원은 고등학교 때 논술을 배우기 위해서 잠깐 다녔다. 그리고 사탐, 과탐은 방학특강 정도로 끝. 이 정도로도 수능을 보고 인 서울 대학을 가는 데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도 엄마들의 마인드가 그때와 너무 다르다.

  예전에 우리의 엄마들은 공부의 목표가 대학이었다. 대학만 잘 가면 취업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에 갈 수 있는 정도로만 하면 되었다. 족집게 과외 선생은 비싸다고 소문나 있었기 때문에 정말 좋은 대학이 목표인 소수의 몇몇 여유가 넘치는 분들만 이용하는 추세였다. 그때는 한국학원 같은 한 반에 100명이 넘는 대형 학원들이 인기였던 시대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런 강의를 들으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메꾸고 학교에서 야자를 하면서 공부해서 대학에 갔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해서 대학을 나온 엄마들이 자기보다 더 잘난 아들 딸 들을 기르고 있다. 이들은 엄마와 아빠를 닮아서 머리도 좋고, 1세부터 20세까지 필요한 모든 학원이 있는 시대에 배움의 모든 것을 학원에서 해결한다. 학교는 진도를 빨리 나갈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보다 더 빨리 더 깊게 배우면 1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거의 초등학교 1학년, 아니 빠른 아이들은 유치원때부터 상위권에 들어가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린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내가 가보지 못한 곳도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많은 정보를 빠른 시간 안에 습득할 수 있다. 교육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누군가가 어느 학원에 갔더니 좋더라, 이때는 이 문제집을 꼭 해야 한다더라 등등 수많은 공부법들이 돌아다니고, 엄마들은 그러한 정보들을 모으면서 최상위가 된 방법들을 동경하게 되고 자기 아이에게도 적용해보고 싶어진다. 누구나 내 아이가 공부를 잘 해서 상위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니까. 나라고 예외일 수 없다. 좋다는 학원을 다 알아보고 리스트를 정한 다음, 직접 방문해서 이것 저것 알아본다. 학원의 위치와 시간, 내 아이의 스케쥴에 맞춰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학원에 등록을 한다. 보통 학원들은 멀리 있기 때문에 데려다 줘야 하는 일이 많고, 그러려면 둘의 스케쥴이 겹치지 않게 조율을 해야 한다. 그런데 학원을 다니다가 한번 이라도 빠지면 보충을 잡아야 하고 그 시간표를 짜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고, 학원을 하나라도 바꿔야 되는 일이 생기면 또 모든게 틀어질까봐 전전긍긍한다. 거의 매일 달력을 들여다보고 사니까 스트레스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이가 힘들다고 숙제를 하지 않고 놀기만 하거나, 시간이 돼서 나가야 하는데 어물쩡 거리면 점점 내 목소리가 커지다가 빨리 해야 한다는 마음에 버럭 화를 내고 만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지를 수 있는지 매일 갱신을 하고 있는 것 같고, 자꾸만 인상을 쓰면서 짜증을 내는 나를 발견한다면 이건 위험신호다. 다 같이 잘 살자고, 행복하자고 하는 일인데, 막상 그 과정은 행복하지가 않아 보인다. 그야말로 매일이 전쟁이다. 

  점점 내 맘대로 응해주지 않는 아이들에게 조바심내고, 자꾸 화내는 나를 자책하면서 우울해지고 있던 어느 날, 이대로는 정말 안 되겠다 싶었다.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 챙겨주면 아이들이 스스로 할 줄을 모르고, 또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나를 위해 시간을 써야 하는데 모든 게 아이들 위주로 돌아가는 일상에 나는 스스로 지쳐가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누구나 좋은 엄마이고 싶다. 그러기에 오늘도 생애 최고의 선물 같은 내 아이에게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내가 있고 나서 아이들도 있는 것이다. 내가 행복해야, 좋은 에너지를 아이들에게 줄 수 있고, 행복한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도 안정감을 느낄 것이다. 항상 화만 내는 엄마를 좋아할 리 없다. 아이들도 다 각자의 생각이 있으니 스스로 생각해서 자기 인생을 꾸려 나가야 한다. 인생이란 자동차의 운전대는 아이들이 잡고 있는 거니까. 나는 가끔씩 조언만 해야지 그걸 내가 조정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건 아이의 인생도 아니고 내 인생도 아니다. 

  ‘말을 물가로 데려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이 말처럼, 아이를 학원에 데려갈 수는 있지만, 공부를 하게 할 수는 없다. 공부할 환경만 조성해주고, 공부는 아이 스스로 할 수 있게 빠져줘야 한다. 꼭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 아이마다 특별한 재능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면 그뿐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 그것이 무한한 믿음과 사랑을 주는 일이라는 걸 요즘 깨닫고 있다.     


  집에서 혼자 디저트를 준비하고 마치 카페에 온 것처럼 커피를 내릴 때, 그날따라 황금비율로 물이 잘 맞춰지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나만의 홈 카페 완성. 어쩌다 내가 좋아하는 달달한 커피와 함께 스콘이나 조각케이크를 곁들이는 시간은, 지친 마음에 위로가 되고 스트레스가 스르르 눈 녹듯 사라지는 아주 기분 좋은 시간이다. 매일 열심히 살고 있지만, 순간순간 힘들어질 때면 잠시라도 나 자신에게 커피한잔을 선물하자.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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