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어느 한 칵테일 바에서
(*이전과 이어집니다)
“삐비 빅-삐비 빅-삐비 빅”
민아는 알람을 듣고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젯밤에도 생각의 바다에서 오랜 시간 헤엄치느라 깊게 잠을 자지 못하였다. 그래도 가게 특성상 오픈 시간이 늦어서 그런가, 예전의 그 힘겨움보다는 덜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나도 평범한 남들처럼 아침형 인간이 되고 싶은걸...”
어느덧 오후 6시, 가게 문을 열음과 동시에 민아에게는 정말 오랜만에 설렘이란 감정이 느껴졌다. 위치도 위치인지라 많은 손님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찾아오는 한 명, 한 명에게 더욱 소중하고 고맙게 대할 수 있다는 점이 민아의 마음에 쏙 드는 가게의 장점이었다. 그렇게 남은 가게 정리도 하고 좋아하는 소설책도 읽으니 벌써 오후 8시. 그때였다.
“저기... 영업하나요?” 문이 열리며 종소리와 함께 차분해 보이는 인상착의를 한 젊은 여자가 들어왔다.
“네. 오늘 오픈 첫날이고 첫 손님이세요.” 민아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젊은 여자 또한 미소를 지어보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표정 속 슬픔을 감추고 있는 것 같았다. 테이블 중 가장 첫 번째 자리에 앉으며 칵테일을 주문하였고 민아는 친근하게 손님과 대화를 나누어보기로 결심했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 탓에 남에게 말 걸기란 상상도 못 했던 민아였지만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내 가게를 찾아준 손님’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쉬웠다.
“밖에 날씨가 쌀쌀하던데, 춥지는 않으세요” 민아가 술을 건네며 말을 걸었다.
“꽤 추웠는데 여기 들어오니까 몸이 따뜻해져서 날씨를 바로 까먹을 지경이에요” 여자는 웃으며 말하였다. 아니,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입만 웃으며. 하지만 민아는 묻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자신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인지 더더욱 묻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의 이야기를 친한 친구한테조차도 거의 하지 않던 민아가 이상하게 처음 보는 손님에게는 당장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는 것들을 말하고 싶은 감정 또한 느꼈다.
“전 불면증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어요. 그래도 가게 덕에 첫 날인 오늘은 좀 덜 피곤하네요.”
여자는 아까 보였던 슬픈 눈빛에서 궁금해 보이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말했다. “보통 눕고 나면 얼마 동안 깨어 있으세요?”
이때까지 불면증이라 하면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말하였다. ‘몇 시에 자?’, ‘안 자고 무슨 생각하는 거야?’, ‘아침에 늦게 일어나?’ 하지만 여자의 물음은 달랐고 민아는 처음으로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까지의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질문이네요. 혹시 불면증을 겪고 계세요?”
여자는 말했다. “아니요. 하지만 저도 근 몇 년간 심하게 앓았었다가 지금은 그래도 들쑥날쑥해요. 꽤 잘 자다가 어제 또 불면증이 불쑥 찾아와 잠을 잘 못 잤네요. 그런데 무슨 일 있으신 건 아니죠? 눈이 뭐랄까... 슬퍼 보여요.”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온 방망이로 머리를 한 대 맞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랬었다. 민아가 여자를 본 것처럼 그 여자도 민아를 본 것이었다. 서로 자신을 먼저 보지 않고 남을 먼저 봤던 거였다. 민아는 자신, 그리고 내 앞에 앉아있는 젊은 여자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실... 저도 손님께서 지어 보이는 웃음 안에 무언가 슬픔이 자리 잡고 있다고 느꼈었어요. 우리 둘 다 어쩌면 자기 자신을 먼저 돌볼 필요가 있나 봐요. 근데 참, 생각처럼 쉽지가 않죠?” 그러자 여자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고이며 이내 연한 핑크색의 뺨을 타고 뜨겁게 흘러내렸다.
“억지로 힘내기 위해서 무엇이든 해보고 어떤 말이라도 들으려 했었어요. 그런데 오늘, 너무 지쳐버려서 집에 가던 중 우연히 이곳을 봤고 저도 모르게 들어오게 되었는데... 덕분에 크게 깨달았어요. 제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지금 저 여자의 눈물에는 그동안의 답답함과 우울함이 조금은 담겨있을 거라고, 씻겨나가는 중이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평생 민아의 가슴속에 남아있을 첫 손님과의 기억과 함께 밤은 깊어만 갔다. 집에 돌아와 오늘도 어김없이 밤하늘을 보며 민아는 생각했다.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서로에게 오히려 악이 될 거라 생각하며 살아왔었는데, 역시 정답이란 건 없는 거야.’ 그렇다. 시험문제를 제외한 모든 것에는 정답이란 게 없다. 그 누구도 옳다, 틀리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 밤도 민아는 많은 생각들에 잠겨 잠에 바로 들지 못한다. 그러나 어젯밤과는 주제가 사뭇 다르다. ‘어떻게 하면 나를 먼저 돌볼 수 있을까?’
슬퍼 보이는 눈을 가진 사람, 당신은 꽤 괜찮은 사람이다.
(*다음 글과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