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무기력

[산책 1일 차]

by 이정

두 뺨을 빠르게 스치는 차가운 바람.

딱딱하기만 한 땅을 씩씩하게 지르밟는 두 다리.

숨이 거칠어질수록 조금씩 사라지는 잡생각.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산책이고, 더 나아가서는 달리기이다. 누구에게는 어렵고, 또 다른 누구에게는 쉬울 것이다. 물론 나는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일지를 적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난 누구보다 당차고 완벽한 계획을 세웠었다. 사실 말만 직장이지,

나에게 있어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나머지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냐, 없냐가 나누어지는 꽤나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였다. 학교 성적, 학점, 인간관계, 하루 계획 등등... 이 세상에서 세울 수 있는 계획이란 계획은 다 세우며 살아왔다.

물론 '정말 완벽하게.'

그런데 아주 치명적인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세워놓은 계획을 모두 실천하기가 너무 벅찼다는 것이었다. 초반 며칠 동안은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만큼 정말 잘 지켰었다. 하지만 그 며칠이 지나고 나면 한 가지, 두 가지씩 지키지 못하는 날이 어김없이 찾아왔고 그때마다 나는 자책감에 깊이 빠져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찝찝하게 마무리했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원래 다 그러고 사는 거야.'

라며 오랜 시간 동안 머릿속만 완벽주의인 사람으로 지내온 나는 '마음 다잡기-자책하기-다시 마음 다잡기-다시 자책하기' 루틴을 끊임없이 반복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심각한 무기력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완벽해지고 싶어 완벽한 계획을 세웠지만 오히려 그 전의 나보다 더욱 망가져버린 현재의 나로 변해있던 것이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보며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정말 안 되겠다.' 하는 생각까지 들었을 시기였던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나에게 무엇보다 항상 중요한 고민이었던 진로, 취업, 미래라는 키워드들은 잠시 넣어두기로 결심했다. 일단 이 지긋지긋한 무기력에서 빠져나와야 무엇이든 할 의지가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나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하는 것'

스스로를 보살피고 챙기는 방법을 알게 된다면 내가 원했던 것, 그리고 원하는 것들은 자연스레 따라오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기상 시간을 당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기로 했다. 하루를 무기력하게 시작하냐, 아니냐는 무엇보다 기상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막연하게 알람만 여러 개 맞춰놔서는 절대 안 된다.

오랫동안 무기력하게 지내왔던 내가 내일부터는 다시 시작해보자고 억지로 기상해본 경력이 이미 여러 번 있다. 그때의 내 모습은 그저 일찍 일어난 무기력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내가 결정한 것은 바로 '산책'이다. 일어나자마자 일단은 집 밖으로 탈출하는 것. 컨디션이 좋을 땐 예전의 내가 좋아했던 달리기도 해 보고, 반대로 컨디션이 안 좋을 땐 5분이라도 걷다가 들어오는 것이다. 이것 외에는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을 예정이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주 쉬워 보인다 할지라도 나에게는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기준을 다른 곳에 두지 않고 오로지 나 자신에게 둘 것이다.


내가 항상 멈췄던 그 시기를 넘어서게 되는 날이 온다면 스스로에게 큰 박수를 쳐준 후,

다른 새로운 목표를 위해 다시 움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