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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심 May 21. 2024

002. 연과 실.

감사합니다.

      

“어릴 적 연날리기를 해본 적 있는가?”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연을 만들었던 기억이 났다. 반 아이들은 각양각색의 연을 만들었다. 어떤 건 용 모양이었고, 어떤 건 거북이 모양, 어떤 건 붕어? 잉어? 암튼 무슨 생선 모양이었다. 생물 모양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방패도 있었고, 성도 있었고, 학교도 있었다(학교를 저 멀리 날려버리고 싶었나). 아무튼 다양한 연을 만든 뒤에는 연을 실로 연결해야 했다.     


나는 처음에 실이 없으면 연이 하늘 높이 날아가 버리기에 실로 잡아두는 줄 알았다. 재밌는 건 오히려 그 반대였다는 사실이다!     


연은 얇고 넓다.

왜냐면 바람을 많이 받아야 그 몸을 하늘에 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근데, 바람이 한 방향에서만 불어올까? 아니다. 바람은 요리조리 전 방향에서 시시각각 다르게 불어온다. 그렇다면, 연은 어떻게 공중에 높이 더 멀리, 더 오래 뜰 수 있을까? 바로 연과 연결된 실이 그 역할을 한다. 실이 바람의 방향에 맞춰, 이리저리 연을 흔들면, 연은 곧 바람을 타고 높이 높이 날아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연을 붙잡는 줄로만 알았던 실은 결국 연을 더 높이 오래 띄울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었다. 만일 실이 연을 잡아주고 이끌어 주지 않았더라면, 연은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어디 나뭇가지에 걸리거나, 물가에 빠지거나, 땅에 곤두박질쳤을 것이다.     


내 삶에도 연과 실 같은 관계가 있다.

이를테면, 나의 단잠을 방해하는 아침 알람이라던가,

과식과 잘못된 식습관을 멈추라 소리치는 체중계라던가,

현재 내 상태가 어떤지 점검해 주는 거울이라던가,

그런 것들 말이다.     


모두 나를 불쾌하게 하고, 방해하는 것 같아도 저것들이 있기에 나는 더 멀리, 오래, 높이 날 수 있다.     

누군가에겐 회사가 그럴 수 있고,

누군가에겐 부모님이 그럴 수 있고,

누군가에겐 형제자매가 그럴 수 있다.

때로는 잔소리가 그럴 수 있고,

때로는 사회적 의무감이 그럴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내 마음대로, 내 하고 싶은 데로만 사는 게 꼭 좋은 건 아니다.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는 쓸모가 없고, 실이 끊어져 버린 연은 처참히 떨어지게 되어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내가 하고 싶지 않을 때, 할 수 있게 하는 것들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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