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화나'개' 하지 마라
키아누 리브스를 세계적인 대스타의 위치에 오르게 해 준 시리즈는 단연코 <매트릭스> 시리즈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처음으로 <존 윅> 시리즈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2014년 1편을 선보일 당시 ‘또다른 B급 영화 같다’ ‘키아누도 한물 갔구나’ 라는 우려도 많았으나, 그 1편이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2017년 2편, 2019년 3편까지 모두 호평을 받으며 성공한 가운데, 4편과 5편 그리고 아나 데 아르마스의 스핀오프가 확정되면서, <존 윅> 시리즈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액션 시리즈 중 하나가 되었으며, 키아누 리브스는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키아누의 화려한 액션 하이라이트를 담은 클립들을 유튜브에서 찾아보면서 감탄하곤 했던 나는, 계속해서 시리즈를 언젠가 감상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개봉 후 8여 년이 지난 지금, 드디어 1편인 <존 윅>을 감상했다.
본작의 줄거리는 간단하면서도 약간 무식하다. 아내가 죽은 후 남긴 강아지와 살아가던 전직 킬러 ‘존 윅’은, 괴한들에 의해 강아지가 살해당하자 복수를 위해서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 기본 전제가 우스꽝스럽고 어이없다는 비판이 일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B급(을 가장한 A급이지만 어쨌든) 액션 복수극에 굉장히 알맞는, 좋은 전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 강아지가 죽은 아내가 남긴, 어떻게 보면 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큰 스포는 아니지만, 작중에서 강아지가 죽는 장면과 아내가 쓰러지는 장면을 교차 편집해서 보여주는 연출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존 윅으로서의 키아누 리브스는 훌륭하다. 키아누는 <매트릭스> 같은 작품들에도 출연하고 실제 인성이 착하다는 등 많은 이유로 사랑받는 배우이지만, '발연기' 라는 비판을 의외로 많이 들었던 배우이기도 하다. 하지만 <존 윅>에서는 그런 모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본작에서 키아누는 복잡하고 섬세한 연기나 감정선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냉혹한 킬러 존 윅의 모습, 멋과 카리스마를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 역할을 멋지게 소화해냈다고 할 수 있겠다. 마치 발연기로 욕을 먹던 아놀드가 터미네이터라는 인생 배역을 맡은 것처럼.
영화의 1막은 생각만큼 액션이 많지 않다. 초반 30여 분은 하나의 액션 씬만이 존재한다. *(그 장면도 생각만큼 쾌감이 크지는 않다.) 영화 시작부터 액션을 휘몰아치는 다른 영화들을 기대하면 안 된다. 1막은 이 존 윅이라는 남자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이 가 있다. 지루하다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러한 1막 덕에 이후 존 윅의 행보에 몰입하고, 그의 분노에 공감할 수 있었다는 게 개인적인 감상이다.
2막, 존 윅이 본격적인 복수의 길에 들어서면서 흥미와 관심을 끄는 요소들이 등장한다. 존 윅에게는 오랜만의 재방문이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첫 방문인, 호텔 ‘컨티넨털’을 통해 킬러들의 숨겨진 세계에 입장하게 된다. 악당들과 호텔 친구(?)들의 대사와 반응에서 보여주듯이, 존 윅은 이 바닥에서 유명한 이름이다. (존 윅이 왜 이렇게 유명한 인물인지 이후 제대로 보여준다) 호텔 내부의 규칙 뿐 아니라 킬러들을 위한 의사, 청소부 그리고 매니저까지, <존 윅>만의 흥미롭고 독특한 세계관을 조각한다. 수많은 속편과 스핀오프가 기획 가능한, 관객 뿐 아니라 제작사 입장에서도 귀가 솔깃해지는 세계이다.
등장 이후에도 조력자인지 악당인지 감을 잡기 힘든, 윌렘 더포가 연기한 ‘마커스’ 와 같은 인상적인 조연도 있다. 비중이 많은 캐릭터는 아니지만 명배우 더포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장면이 있다. ‘컨티넨털’의 지배인, 존 윅의 목숨을 노리고 달려드는 다른 킬러, 잠깐 만나는 안면식이 있는 킬러 등 인물들이 다양하다.
이제 영화의 핵심, 액션 씬을 이야기해 보자. 훌륭하다. 정장을 빼입은 키아누가 화려한 총기술(?)로 악당에게 총알을 한 발씩 박아주며 무쌍을 펼치는 모습은 매우 만족스럽다. 총 액션 뿐 아니라, 무술 액션 역시 훌륭하다. 이 분야에 능통한 액션 배우/ 스턴트맨 등이 땀 흘려 찍은 장면이라는 게 화면 밖까지 느껴진다. 영상미 또한 대단하다. 특히 한밤중 화려한 불빛으로 물든 호텔에서의 총격전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겠다. 눈이 아프지 않도록 액션 장면을 찍는 감독의 연출력 뿐 아니라, 네온빛과 화려한 색깔들이 공존하는 장소의 선정 역시 칭찬할 만하다.
‘액션’ ‘복수’라는 키워드에 온 집중을 기울인 작품이기에 그 이상을 기대하지는 말아라. 깊은 임팩트를 주는 작품이 아니라는 점도 몇몇 이들에게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겠지만, 오락성 좋은 액션 영화 한 편이 나왔으니, 뭐 어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