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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hill Jun 30. 2023

우주의 심장

단편소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일어나고 지나간 이후의 시대, 우주의 중심부는 심장이 내뿜는 은은한 붉은빛에 젖어 빛났다. 한때 이 우주에서 가장 발전된 기술들과 뛰어난 지성들의 문화가 모여 있던 곳이었지만, 쇠퇴의 바람을 맞은 지금은 그 누구도 거닐지 않았다.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기도 어려웠던 심장은 어두운 방을 빛내는 조명 수준으로 약해졌고, 그 심장이 놓인 정거장의 방은 이제는 쥐들의 놀이터가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을 무너뜨린 마지막 전쟁 이후 수십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이곳은 버려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십년만의 침묵을 깨고 방문자 한 명이 찾아오게 되었다. 이 세상의 인물이 아닌, 수많은 차원들 중 하나인 가까운 차원에서 목적을 가진 누군가가 문을 열고 찾아온 것이다.


우주와 차원을 넘나드는 야심을 가진 이 방문자의 이름은 카슨이었다. 그는 버려진 정거장에 남겨진 이 우주의 심장을 찾고 있었다. 여러 차원을 여행하는 그는 우주의 심장이 가진 힘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한손으로 들 수 있는 구슬의 크기였지만, 한때 심장은 하나의 별처럼 거대하고 웅장했다. 심장은 마법같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심장이 한 장소에 오랫동안 놓여 있다면, 점차 자라나서 다시 태양처럼 거대해지며 그와 동시에 그것이 놓인 위치를 우주의 중심으로 서서히 뒤바꾼다. 전 우주의 구조와 방향성에 천천히 하지만 거대한 변화를 가하는 힘이었다. 다시 태양처럼 커진 다음에는 그 크기를 유지하며 영향력을 발휘하다가, 나중에 다시 작아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하며, 이미 이전에도 수많은 우주들을 넘나들던 물체이다. 카슨은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며 정거장을 거닐었다. 고개를 들면 우주의 빛나는 별들이 하늘을 빼곡 채웠다. 한때 빛나는 태양을 중심으로 감싸는 방식으로 건설된 정거장은, 이제는 그 중심이 텅 빈, 보기만 해도 마음 한곳이 허전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이 우주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카슨은 벌써부터 이곳에 대해 복합적인 감정들을 느꼈다.


한때 우주에서 가장 중요하고 거대했던 이곳을 걸어가면서, 중요한 역사 유적을 누비는 듯한 신성함과 웅장함이 느껴졌다. 그의 마음과 생각의 한계를 뛰어넘는 압도적인 어떤 것 말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곳에 있었던 고통과 슬픔의 비린내도 느껴졌다. 그러자 마치 무덤가에 발을 들어놓은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 감정들을 뒤로 하고, 카슨은 마침내 우주의 심장 앞에 멈춰 섰다. 크기는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도 작았지만, 그에 비해 빛의 밝기는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은은하게 빛나는 이곳에서 독특하고 새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마음 한편이 저려 왔는데 그 이유는 카슨 자신도 알지 못했다. 카슨은 이 심장을 자신이 온 우주, 자신의 행성 근처로 가져가려는 야심을 가졌다. 자신의 행성을 우주의 중심으로 만들고, 역사를 뒤바꾼 업적의 위인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것이다. 카슨은 가슴이 뛰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숨을 고르고,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빨간 구슬로 손을 가져갔다. 자신의 의지와 야심으로 그는 스스로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었으며, 이 순간은 그의 인생과 역사에서 핵심적인 순간, 이야기의 심장이 될 것이었다. 그의 인생이 곳 역사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손끝이 구슬에 닿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 짧은 순간 전류가 흐르듯 카슨의 머릿속으로 역사, 기록, 그리고 기억이 스쳤다.


수백만년 동안 셀수없는 차원들 그리고 한 우주에서도 여러 장소들을 거친 심장은 마법으로 큰 번영을 이끌었지만, 번영에는 그만큼 거대하고 강렬한, 그리고 필연적인 대가가 존재했다. 심장을 인위적으로 위치시켜 번영한 우주와 문명은 항상 쇠퇴하고 멸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 수많은 목숨들이 사라지고 문명과 역사가 지워졌다. 심장이 가진 힘은 놀랍고 화려한 만큼이나 무시무시하고 위험했다. 카슨은 갑작스럽게, 그리고 뜻하지 않게 맛본 파괴와 죽음의 기억에 충격받았다. 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심장은 여전히 같은 붉은색으로 빛났지만 예전에는 없던 공포와 사악이 드러났다. 카슨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커다란 업적을 이루고 이름을 남기고자는 욕망과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일에 대한 결과에 대한 정신을 집어삼키는 공포가 충돌했다. 하지만 결국 후자가 카슨의 마음을 잡았다. 그는 이와 동시에 서서히 자신의 이성을 사용해 이 상황을 돌이켜보았다. 카슨은 천천히 뒤로 물러갔다.


예전에 심장을 가져간 이들은 이 기억을 보고도 그 선택을 한 것일까. 아니면 이 기억들에 접속하지 못했던 것일까. 후자가 사실인 듯했다. 왜 카슨만이 피의 역사를 볼 수 있었는지 이유는 불확실했지만, 그것이 전하는 메시지는 확실했다. 작아진 심장이 이제는 자신을 내버려 두라고, 자신도 이제는 휴식을 취하며 우주 한곳에서 사라지고 싶다며 부탁하는 듯했다.


카슨은 이런 도구나 쉬운 길에 의존하는 대신, 오직 자신의 힘으로 위대한 일을 이루어야겠다는 새로운 야심을 세웠다. 그 규모는 예전만큼 거대하고 오래가지는 못할지언정, 자신의 힘만으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단순한 명예나 관심 대신, 남을 돕고 성취하는 것 자체가 주는 기쁨에 집중했다. 애초에 우주를 번영시키려는 것도 그 이유가 아니었던가? 카슨은 큰 깨달음을 얻은 채 조용히 자신이 들어온 차원의 문으로 들어가서, 고향 우주로 돌아갔다. 비록 그는 여정을 시작할 때 원하던 것을 얻지는 못하였지만 더 소중한 것을 얻었다. 뜻밖의 여정이었지만 가치 있었다. 그는 이 차원으로 가는 문을 영원히 닫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우주와 차원을 따라서 이어져온 피의 역사에 끝을 맺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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