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y의 단편소설 <암살> 제1부
시간은 정각을 넘긴 한밤중이었고, 어느덧 새벽을 향해 가고 있었다. 세상이 잠든 이후 외롭고 고통받은 몇몇 불빛만이 밤길과 도시를 밝혀야 하는 시기이지만, 이날은 달랐다. 형형색색의 알록달록한 폭죽이 검은색 하늘을 밝고 화려하게 가로질렀고, 거리에서는 사람들의 환호성과 수다, 노래가 끊이질 않았다. 정장을 입은 신사들, 드레스를 빼입은 여인들, 그 사이사이를 달려가면서 신나 하는 아이들까지, 모두가 흥에 겨워 있었다. 도시 전체가 파티를 즐기는 특별한 날이었다.
이런 즐거운 소란이 벌어지는 도시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의 외곽, 이곳에도 흥에 겨운 사람들이 꽤 있었으나 건물들의 유리창에는 불이 꺼진 방들도 많았다. 불이 켜지고 꺼진 방들이 모자이크처럼 오목조목 붙어 있는 모습이었다. 이중 낡고 작은 한 호텔의 어두운 방에서 한 여인이 묵고 있었다. 객실 전체에는 단 하나의 전구도 켜져 있지 않았다. 마치 정전이라도 된 듯, 거실의 탁자 위에 양초 하나만이 외롭게 약한 불빛을 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양초마저도 많이 녹아내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여인은 어둠에 잠긴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다. 창문 밖 길거리, 그리고 잠에 들지 않은 옆 방에서 사람들의 목소리와 음악이 흘러나왔지만 그녀의 머리 위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에 막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오늘 밤 중요한 일을 해야 했다. 이 일에 숙련된 듯 불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얼굴에 차분함을 유지한 채 물에 젖은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그녀는 암살자였다.
낡은 호텔의 한 객실, 작은 객실의 거실은 낡은 전구 하나의 빛에 의지해서 밝혀져 있었다. 거실에는 이제 막 목욕을 마친 듯 하얀 가운을 입은 여성이 이리저리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데이지였다. 그녀는 오늘 밤 중요한 임무를 가지고 있었다. 거실 뒤쪽에 놓인 침대 위에는 그녀의 옷가지와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레이스가 달린 검은색 브래지어와 속옷 등 의류 옆에, 각종 총기와 단검 등 무기류가 놓여 있었다. 그녀는 암살자였다.
그녀가 암살해야 할 인물은 도시 중심부, 가장 높고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건물에 있었다. 이 도시를 지배하는 군주, 사실상 말이 지배지 독재자나 다름없는 인물이었다. 일 년에 한 번씩 화려하게 축제 겸 파티를 열어 도시민들을 다스리고 달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더럽고 어두운 실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축제로 분위기가 풀어진 도시를 누비면서 위장한 경찰과 요원들은 체제에 부정적이거나 반하는 자들을 잡아들여 투옥하거나 목숨을 앗아간다. 그 외에 축제를 방패, 가림막 삼아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을 멋대로 바꾸고 잡아튼다. 또한, 도시 전체에서 젊은 여성들을 데려와 군주의 욕구를 위해 사용한다.
데이지는 군주의 거주지로 향하는, 사실상 끌려가는 다른 이들에 섞여 들어가서 군주의 눈앞에 다다를 예정이었다. 그리고는 그를 암살할 계획이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와 같은 것은 중요치 않았다. 지금까지 외롭게 해온 이 싸움, 그런 외로움 와중에도 힘이 되어준 친구들의 죽음을 생각하면 데이지를 잡아끄는 감정은 없었다. 데이지는 조용히 눈을 감고 숨을 내쉬었다. 곧 나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데이지는 하얀 가운을 벗어던졌다. 하의 속옷만을 입은 그녀의 알몸이 드러났다. 몸 곳곳에 싸움으로 인한 멍과 상처가 있었으나 오늘밤의 임무를 위해 그들을 화장으로 가렸다. 출발하기 직전 장비와 옷을 입는 데이지의 마음에 두려움 비슷한 것이 피어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결코 그럴 수는 없었다. 두려움이 피어나서는 안 됐다. 데이지는 별것 아닌 것이라고 자신에게 되새기며 이 희미한 감정을 다시 가슴 아래로 삼켰다. 그리고 검은 브래지어를 집어 들어 입고서 후크를 채웠다. 겉옷을 입기 전 무기를 옷 아래 숨긴 데이지는 전등을 끄고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해가 뜨기 전 다시 이 방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는 오직 신만이 알 뿐이었다. 그것은 지금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무너지기 직전의 호텔을 떠나 거리를 걸으면서도, 사람들의 즐겁고 시끌벅적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면서도, 데이지의 머릿속에는 동요가 없었다. 그것들은 특별한 감정들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오직 하나의 목표만이 그녀의 머리 중심에 작게 자리 잡고 있을 뿐이었다. 군주 휘하의 경찰 몇이 사람들 사이에 섞여 마치 축제를 즐기는 듯 걷거나 카페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데이지는 자신의 얼굴이 아직 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음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은 몇 되지 않는 저항인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불안감이나 두려움 비스무리한 것은 그녀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마치 음식을 먹고 나서도 혀끝에 남아 있는 쓴맛처럼.
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으로 다가오고,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말이다. 이런 마음을 완전히 떨쳐 내지 못한 채 데이지는 계속 걸어 나갔다. 어느덧 정해진 장소에 도착해서 다른 여성들과 차량에 탑승해 군주의 건물로 향하는 자신을 알아차릴 때까지 말이다. 큰 동요는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옅은 쓴맛 같은 불안감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차량 안에서는 다른 여성들과 말을 섞을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들을 훑어보니 화려하거나 노출이 심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데이지는 말없이 창밖으로 거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군주의 건물에 가까워지니 일반 도시민들의 모습은 보기 힘들어지고, 무언가 인공적이고 차가운 느낌, 죽음과 두려움의 인상을 풍기는 도로와 구조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중요한 임무를 가진 그녀였기에, 그 누구보다 군주의 악행을 알기에 데이지의 눈에만 더 심하게 보이는 것이었을까? 다른 여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웬만하면 내일 아침을 볼 수 있겠지. 데이지는 생각을 계속했다.
차량이 정문에 도착하고 데이지는 약간의 안정, 혹은 들뜸 비스무리한 것을 느꼈다. 이제 목표이자 자신의 운명의 종착지에 가까워졌다. 이상하게 암살에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차량에서 다른 여성들과 함께 내린 그런 데이지의 마음에 불을 지피듯, 예상 못한 난관이 펼쳐졌다. 자신에게 주어진 정보와는 다르게, 군주에게 보내지는 여성들의 수색을 하는 것이었다. 생각하면 군주와 접촉하기 전에는 이런 절차를 거치는 것이 당연했다. 품속에 숨긴 무기를 가져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데이지는 곧 당황하지 않고, 자신이 숨겨놓은 다른 무기 하나를 떠올리며 총과 검을 보는 이 없이 떨어트렸다.
검문을 무사히 통과한 데이지는 빌딩 꼭대기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엘리베이터 내부는 형광빛을 연두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자신의 심정과 맞지 않는 색깔에 오묘한 분위기를 느꼈다.
이후 데이지는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며 작은 옷장을 떠올리는 칸에 앉아 있었다. 칸에는 화장이나 옷을 고칠 만한 물건가지와 거울이 있었다. 데이지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지금까지의 일을 생각했다. 이 싸움, 힘없는 전쟁에 너무 집중하느라 자신의 정신과 기억이 흐려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화장으로 꾸며진 얼굴이었지만 그 사이로 좌절과 고통, 지침 등의 감정들이 새어 나오는 듯했다. 어쩌면 자기가 기억하는 것보다 이 싸움이 더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것이라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때 자신의 차례임을 알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때가 왔다. 군주를 암살해야만 한다. 데이지는 자신의 속옷에 달린 레이스 무늬 하나를 떼어냈다. 그리고는 남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손에 꼭 쥐었다. 그것은 작은 검은색 표창이었다. 이 표창을 소리 없이 던져 군주의 목에 꽂아 넣는다면,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데이지는 이 생각을 계속하는 동시에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며, 칸을 열고 나아갔다.
회색 양복을 입은 수행원을 따라가면서 데이지는 이 자 역시 암살하고 나아갈까 하는 생각을 가졌으나, 자신의 목표물 한 명에만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쓸데없는 소란이나 과정을 만들어서는 안 됐다. 그리고는 마침내, 검은색 문 앞에 다다랐다. 이 문 뒤에 군주가 있다. 수행원은 곧 문이 열릴 것이라는 말을 하며 뒤로 물러갔다. 데이지의 가슴은 어느새 뛰고 있었다. 임무 수행 직전이 되자 지난 며칠의 그 어느 순간보다 강하게 뛰고 있었다. 검은색 유리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데이지는 걸음을 내디뎌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으로 잠긴 방안은 텔레비전만이 켜진 채 고요에 잠겨 있었다. 물론 안정과 부드러움의 고요가 아닌, 죽음과 악의가 느껴지는 고요였다. 텔레비전 앞에는 누군가 앉아 있었다. 그의 거대한 머리가 텔레비전의 일부를 가리며 빛을 막아냈다. 그 뒤로 그림자가 펼쳐져서 데이지의 몸 일부를 가렸다. 군주가 확실했다. 데이지는 그를 향해 조심스레 걸어갔다. 말을 걸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심장이 목 밖으로 튀어나올 듯 뛰어서 말을 할 수 없었다. 데이지는 손으로 신경을 옮겨 표창이 아직 들려 있음을 확인했다. 너무나 꽉 쥔 탓인지 피가 흐르는 것 같기도 했다. 텔레비전 앞에 앉은 형체에 다가가자 데이지는 표창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형체의 목에 표창을 던졌다.
표창은 형체의 목에 정확히 박혔다.
하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형체의 목에 표창이 박히는 순간, 데이지는 그가 군주가 아님을 직감했다. 이것이 함정, 자신과 같은 이 혹은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진 덫임을 직감했다. 머리에서 달아나야 한다는 위기를 인식하고 몸 전체로 행동이 퍼지려는 찰나, 데이지는 불 같은 고통을 느꼈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자신의 등을 찌르고 몸을 꿰뚫었다. 데이지는 자신의 가슴 사이로 튀어나온 은색 칼날을 보았다. 그 끝부분에는 피가 흥건하게 묻어 흐르고 있었다.
칼날이 뽑힘과 동시에 데이지는 맥없이 쓰러지고, 자신이 누구에게 찔렸는지, 군주는 어디에 있는지 등을 알기도 전에 눈이 감기고 정신을 잃었다.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됐다. 허무하게 끝나서는 안 됐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었다. 오랫동안 쌓아온 탑은 이렇게 무너졌다. 데이지는 이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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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째 이어진 검은 도시의 축제날 밤, 파티가 벌어지는 도시를 수놓은 높은 건물들을 누군가 누비면서 달려가고 있었다. 기계와 네온빛에 잠긴 도시를 위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어마어마한 장관이었으나, 그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달려갔다. 그의 목표는 도시 중심부에 있는 높은 건물이었다. 그는 건물에 가까워지자 달리는 속도를 높였고, 지치는 기색 없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는 목표 건물의 외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렸다.
안정하게 매달린 그는 검은색 마스크를 벗어제끼고 얼굴을 드러냈다. 그는 데이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늘 밤 암살 임무를 지니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영상: www.immaculatemomen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