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에서 한 발자국 나아간 Subtle 한 버전
검은색의 객실 내부에는 고요함이 감돌았다. 대리석과 유리로 빚어진 벽과 바닥은 우아했지만 차가웠으며, 거실 벽에 박힌 난로에서 타오르는 작은 불길만이 따뜻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계산적이며 정확하게 설계되고 맞추어진 이곳은 넓고 거대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은 거뜬히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지만, 지금 이 객실을 사용하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강박적으로 정돈되고 객실의 바닥에는 셔츠부터 치마와 양말 등 옷감들이 널브러져 있었으며, 그 옷가지들은 객실의 방들을 잇는 복도를 따라 늘어져 욕실로 이어져 있었다. 굳게 닫힌 욕실 문 아래로 희미한 불빛과 함께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작은 빛과 소리는 어둠과 고요에 잠긴 공간의 질서를 조금이나마 흐트러트렸다.
닫힌 문 뒤에서 졸졸 흘러나오던 물소리가 어느덧 뚝 끊겼다. 욕실 안에서는 물기가 바닥에 떨어지고 부드러운 살과 천이 맞닿는 사그락 사그락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옷을 대충 갖춰 입은 여성이 욕실에서 걸어 나왔다. 여성과 함께 욕실에 가득 차 있던 수증기가 퍼져 나왔다. 수증기는 여성의 몸을 감싸고 있었으며, 그것은 마치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와도 같았다. 여성은 바닥에 버려진 옷들을 무시하며 복도 사이를 걸어갔다. 복도를 지나 거실로 들어선 그녀는 거실 뒤쪽에 설치된 거울로 걸어가 그 안을 들어다 보았다. 거울에는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이 비쳐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다니엘라였다.
다니엘라의 검은 머릿결은 그녀의 귓가를 타고 내려와 어깨 위에 살포시 앉아 있었으며, 샤워를 금방 마친 탓인지 아직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머리카락에서 조금씩 떨어지는 물방울은 다니엘라의 하얀 셔츠 위로 떨어지며 작은 점을 찍었다. 그녀의 가슴은 헐렁하고 자유롭게 셔츠 위로 봉긋한 곡선을 그렸으며, 두 유두는 셔츠를 뚫고 실루엣을 드러냈다. 하반신에는 허리가 일부분 드러나는 회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던 다니엘라는 오른손으로 셔츠의 아랫부분을 쥐고 들어 올려 자신의 배와 허리를 드러냈다. 그녀의 허리는 가느다랗고 매끈했다. 군살 없이 날씬한 배에는 희미한 복근이 새겨져 있었으며, 독특하고 귀여운 모양의 배꼽이 파여 있었다. 그런 배 위에는 문신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검은 선과 문양으로 이루어진 문신은 불길의 모양과도 같았다. 문신의 검은 불길은 그녀의 아랫배에서 시작해 점점 위로, 그녀의 몸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다니엘라는 자신의 몸을 확인한 다음 왼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녀는 거울을 바라보고 휴대폰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들어 올린 셔츠를 꼭 쥐고 잡아당겨 몸을 깨끗하게 드러냈으며, 배와 함께 문신이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 다니엘라는 카메라 앱을 실행해 초점을 맞추었다. 카메라 화면 위로 두 눈으로 보는 것 같은 선명한 이미지가 나타났다. 다니엘라는 촬영 버튼을 눌렀고, '찰칵' 소리와 함께 사진 한 장이 찍혔다. 다니엘라는 오른손으로 셔츠를 다시 정리한 다음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녀의 모습은 사진 속에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 그녀의 허리부터 시작해 가려진 얼굴까지가 모두 찍혔으며, 그녀는 결과물에 만족했다. 하지만 이 사진은 다니엘라 자신이 소장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남에게 전송해야 하는 사진이었다. 다니엘라는 편집 기능을 활용해 사진을 작게 잘라냈다. 오직 휴대폰에 가려진 그녀의 얼굴과 뒷배경만을 남긴 것이었다. 그리고 다니엘라는 휴대폰의 연락처로 들어가 남자친구의 번호를 찾았다. 그 번호를 꾹 누른 다음, 자신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첨부하고 짧은 문자를 작성했다.
"보고 싶어. 그동안 이거라도 감상해 <3"
다니엘라는 문자와 함께 사진을 전송했고, 곧이어 전송이 완료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남자친구에게 유혹 한 방울을 담은 문자를 보낸 다니엘라는 다시 연락처로 돌아갔다. 이 사진을 보내야 할 또 다른 사람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유혹이나 사랑의 목적이 아니었다. 다니엘라는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찾지 않고, 키패드를 화면에 띄운 다음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번호를 누른 다니엘라는 이번에는 문자를 작성하지 않고 사진만을 첨부해 보냈다. 이번에는 편집이 되지 않은, 자신의 몸이 전부 담긴 원본 사진을 선택했다. 발송이 완료되자 다니엘라는 곧바로 연락 앱을 종료하고 사진 앱으로 돌아가 자신의 몸을 담은 사진을 삭제했다. 사진 앱의 휴지통까지 비운 다니엘라는 할 일을 끝마친 듯, 깊은 숨을 내쉬고 휴대폰을 꺼서 거울 앞에 내려놓았다.
다니엘라는 뒤를 돌아 객실 내부와 거실을 돌아보았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이후 차가움이 가시고 생기가 조금은 도는 것 같아 보였다. 샤워와 일을 마친 그녀는 자신이 목이 얼마나 마른지를 뒤늦게 눈치챘다. 다니엘라는 부엌으로 걸어가 냉장고에서 크랜베리 음료를 꺼냈다. 음료를 유리잔에 따르는 동안 그녀의 시선은 유리잔에 쏟아지는 작은 보라색 폭포에 고정되어 있었다. 사소하고 미묘한 것이었지만 그 음료 줄기는 이 객실의 다른 것과는 달랐다. 그것은 아름답고 싱그러웠다. 음료를 가득 채운 유리잔은 보라색과 분홍색 사이 어딘가의 오묘한 색깔로 반짝이고 있었다. 다니엘라는 음료를 한 모금 홀짝인 후, 잔을 들고 거실로 걸어 나갔다.
객실과 외부를 분리하는 창문은 거실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그것은 거대한 유리 벽과도 같았다. 다니엘라는 음료를 마시며 창문으로 걸어가 밖을 바라보았다. 도시를 꽉 채운 회색 건물들의 머리와 구름 없는 흰색 하늘이 맞닿은 지평선이 다니엘라의 시야를 채웠다. 시선을 아래로 돌려야만 발밑의 도시를 바라볼 수 있었다. 높은 건물의 꼭대기에서 바라본 도시는 마치 미니어처 모형처럼 작고 아기자기해 보였다. 객실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도시 위의 지평선과 하늘에는 분명 무엇인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베일처럼 도시를 덮고 있었다.
다니엘라는 자신의 고개와 시선을 계속해서 아래로 떨구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도시의 사거리와 회색 바닥에는 버려진 물건들이 있었다. 자세히 바라보니 그것들은 팻말들이었다. 자신의 주인들로부터 차가운 콘크리트 정글의 바닥에 버려지고, 하늘 높이 솟은 건물의 쓰나미 앞에 무너지고 삼켜진 그것들은 초라해 보였다. 곧 '정화'가 시작될 예정임을 보여주는 삭막한 풍경이었다.
다니엘라가 묵고 있는 호텔은 '벽'이 시작되고 끝이 나는 곳이었다. 호텔과 벽은 도시 내부의 그 어떤 건물들보다도 높은 곳이었다. 매주 주기적인 시간을 두고, 정화의 시간이 진행된다. 정화가 시작되면 벽에서 하얀 안개 같은 기체가 뿜어져 나온다. 기체는 천천히 도시를 집어삼킨다. 정화를 하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외출을 하고 도시를 누비고 거리를 산책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정화가 시작되면 집에 머문다. 안개는 모든 장소, 모든 길거리, 모든 건물을 샅샅이 누비며 도시를 천천히 삼킨다. 단순히 집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몇몇 심한 사람들은 땅 아래 지하로 숨거나, 정화가 시작되기 전날 혹은 전주에 도시를 떠나 벽 너머로 나간다.
바깥에서 안개를 맞이한 시민들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적어도 그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화 과정에는 실내에 머무르기에 바깥에 나간 사람들은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거리에서 안개를 맞이하고 다시 나타나지 않는 이들도 그중에서 더 일부지만 존재했다. 아무리 적은 숫자였지만 그 이유에서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에서인지 정화가 진행될 때는 사람들은 더 이상 바깥에 나오지 않는다.
그 누구도 안갯속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오직 안개를 풀고 담는 얼굴 없고 이름 없는 집행인들만이 알 것이다. 안개가 무슨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혹시 안개가 실제 '정화'를 이루는 작업 과정을 가리고 숨기기 위한 수단일 뿐인지, 등 수많은 이론들과 괴담들이 존재하지만 그것들 중 입증된 것은 하나도 없다.
다니엘라는 도시의 외곽에 존재하는 가장 높은 건물인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게 되었다. 그것은 사회에서 우수 시민들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보상이었다. 물론 그것은 다른 종류의 보상과는 조금 달랐다. 보상의 달콤함 안에는 다른 무언가가, 의도가 녹아 들어가 있었다. 달콤한 사탕과 같은 휴가를 맛보면서 흔하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 섞인 희미한 쓴맛을 맛보는 이는 거의 없었다. 다니엘라는 그 쓴맛을 맛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이였다. 그녀는 이곳에 단순한 휴가를 위해 온 것은 아니었다. 깨끗한 크랜베리 음료를 마실 수 있는 다니엘라의 머리 한구석에는 생각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작지만 뚜렷하고 강렬한 생각, 감정이자 느낌이었다. 다니엘라는 그 생각을 홀로 조금씩 키워 왔다. 하지만 그 생각을 남들과 교류하거나 토론하는 일은 없었다. 호텔로 오면서, 그리고 호텔에서도조차 뚜렷한 티를 내지 않았다. 그 생각과 감정들은 다니엘라가 자신의 마음에 설치된 작은 다락방에 숨겨 놓은 자신만의 비밀이었다.
다니엘라는 호텔로 여행을 떠나는 날, 집을 떠나 길거리를 걸어가면서 번호 하나를 외웠다. 길거리의 팻말에, 지금쯤이면 어디론가 사라지거나 차가운 콘크리트 거리 위를 나뒹굴고 있을 팻말에 적힌 번호였다. 그 번호는 다니엘라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어가 다락방 안의 비밀들 곁으로 이동했다. 이후 그녀는 남자친구와 함께 그 번호로 사진을 보냈다. 다니엘라의 굳은 결심, 그녀의 뚜렷한 생각에 의해 내린 결정이었다.
문신을 드러낸 여성의 사진. 하지만 그것은 결코 평범하거나 사소한 사진이 아니었다. 그것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보이지 않고, 거대하지도 않지만 그 사진에는 한 가능성의 씨앗이 심어져 있었다. 씨앗이 사진에서 피어난다면 그 줄기와 잎은 사회를 타고 나아가며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릴 수 있었다. 그것도 단순한 문신의 사진이 아닌, '벽'과 안개를 내보내고 품는 호텔에서 문신을 한 사람의 사진이었다. 대규모의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씨앗에서 피어난 꽃은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크랜베리 음료가 담긴 잔이 바닥을 보이는 순간까지, 다니엘라는 자신의 이러한 선택과 여정을 머릿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래쪽 도시의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만약 아직도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일 터였다. 다니엘라는 창밖에서 벽에 걸린 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정화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이 정도 규모의 도시에서 중요하고 커다란 프로세스가 시행될 때면, 그것을 알리는 방송이나 음향이 도시 전체에 울려 퍼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정화'는 달랐다.
곧, 아무런 암시나 메세지 없이, 벽에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벽의 꼭대기에서 시작된 안개는 서서히 벽을 타고 내려왔다. 눈사람과 솜사탕처럼 하얀 안개였지만 그 안에는 무슨 색깔을 품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안개를 도시로 향하기 시작했다. 안개는 손길을 뻗어 거대한 건물들을 감싸고 쥐었으며, 보도와 도로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호텔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한 뼘 한 뼘, 건물 하나하나가 하얀 솜사탕 안으로 사라져 갔다. 이렇게 도시는 하얗게 물들어 갔으며, 어느새 연기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곧 도시는 정화라는 이름의 하얀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안개의 세계 위로 다니엘라가 있는 호텔 객실의 윗부분만리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다니엘라는 자신의 발밑으로 정화 과정을 내려다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항상 도시 내부의 집 안에서 문을 단단히 닫은 채, 바깥 길거리와 창문이 김이 서리듯 뿌옇게 변하는 것은 수없이 보았지만 이렇게 도시가 안개에 삼켜지는 것은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다니엘라는 그 안개의 모습에 현혹되는 듯하면서도, 잔을 완전히 기울여 마지막으로 남은 크랜베리 몇 방울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이제 다니엘라는 거실의 소파에 앉아 책을 읽거나, 타들어가는 난로의 장작들을 감상하며 조용한 시간을 계속 보낼 것이다. 사진을 보내는 데 성공했으니까.
사진을 떠올린 순간 갑자기 다니엘라의 마음을 무언가가 언듯 스쳤다. 그것은 차가우면서도 알쏭달쏭했으며, 야릇하고 모호하기도 한 감정이었다. 상상력이 풍부한 다니엘라는 가끔씩 느끼는 듯한 감정이자, 그 상상력이 주입된 생각이었다. ‘만약 정화 연기가 이곳까지 올라오면 어쩌지?’ 순간 심지에 불을 붙이는 듯, 불안감이 피어오르고 다니엘라의 마음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안개가 얼마나 높이 피어오르는지, 이 호텔과 이 객실이 정말 안개로부터 자유로운지와 같은 것들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다니엘라는 휴대폰의 전원을 끈 다음, 벽 난로의 아래 위치한 작은 공간으로 밀어 넣었다. 그곳에 휴대폰을 오랫동안 놓아둔다면 휴대폰이 손상되거나 녹아내릴 수도 있었지만, 지금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도시 밖에서 가져온 음료를 마신 잔을 가지고 부엌으로 뛰어가 물로 재빨리 헹구었다. 아직 창밖으로 안개는 보이지 않았다. 저항의 불꽃을 배에 새긴 여자의 사진, 그 냄새를 맡고 안개가 여기까지 올라오는 생각을 하는 다니엘라의 마음은 아찔했다. 다니엘라는 복도를 통해 거실과 이어지는 침실로 들어갔다. 침실 안 벽장을 연 그녀는 그곳에 놓인 두꺼운 옷을 집어 들었다. 자신의 몸에 맞게 준비된 옷이였다. 다니엘라는 하얀 셔츠를 벗어젖힌 뒤 새로운 옷을 입기 시작했다. 다니엘라는 순식간에 재빨리 옷을 갈아입었다. 이 옷은 그 어떤 존재도 쉽게 꿰뚫어 보거나 투시하지 못하는 재질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안개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지는 아직 아무도 몰랐다. 이 과정을 통해 그것은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다니엘라는 옷을 준비해 두었지만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다시 셔츠를 입고서 다니엘라는 어두운 침실을 떠나려 했으나, 다시 거실로 나가 창밖을 바라볼 용기나 욕구가 도저히 생기지 않았다. 침실 안의 무언가가 자신의 발목을 잡은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다니엘라는 조용히 침실 문을 닫고 방 중앙에 놓인 침대로 다가가 이불 사이로 몸을 집어넣었다. 분홍색 프릴과 꽃무늬로 장식된 아름다운 침대는 편안하고 따뜻했지만, 다니엘라의 마음속 불안까지 완전히 잠재울 수는 없었다. 타오르는 불을 품은 다니엘라가 잠을 잘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게다가 평소에 입지 않던 특수한 옷에서는 불편함과 낯섦, 갑갑함이 느껴졌다. 가슴은 계속해서 두근거렸다. 설마 이곳까지 올라오지는 않을 거야. 설마 안개가 나를 노리지는 않을 거야. 이렇게 머릿속으로 혼잣말을 하며 다니엘라는 눈을 꼭 감았다.
이불을 가슴으로 끌어안은 채 다니엘라는 안개에 대한 생각을 떨치려 노력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상상력이 그려낸 안개는 눈이 생겨 창 안쪽을 노려보며, 손이 생겨 창문을 두드리고, 코가 생겨 무언의 냄새를 맡으려 하고 있었다. 그런 안개의 모습이 계속해서 떠올랐지만 그녀는 생각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잊으려 노력했다. 다니엘라는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했으며, 마음속에 난 불을 끄려고 노력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전송된 사진은 어떻게 되었을까, 안개 그리고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흔들리고 뒤섞이는 동안 다니엘라는 침대 위에서 눈을 감고 누워 있을 뿐이었다. 방문 밖에서 그리고 창밖에서 안개가 올라왔는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알 필요가 없다고 다니엘라는 계속 되뇌었다. 고요하고 어두운 방 안에서, 다니엘라는 이렇게 이불속에 품어진 채로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렇게 홀로 머릿속을 불태우던 다니엘라는 어느 순간에 결국 잠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짧은 꿈에서 새 한 마리를 마주했다. 다니엘라와 새 사이에는 쇠창살이 길을 가르고 있었지만, 새는 날개를 펼치고 작은 몸으로 쇠창살 사이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창살 사이는 충분히 넓어 그녀 또한 드나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꿈을 꾸는 다니엘라는 자신의 고민과 불안, 문밖의 상황 등을 모두 잊은 채 꿈속을 헤엄치고 날았다. 비록 잠시뿐이었지만 이 도시에서, 하얀 안개에서 도망쳐 그것들이 없는 해방된 세상을 살고 있었다.
창문 바깥에 펼쳐진 도시의 모습은 여전히 뿌옇고 흐릿했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심연으로 던져진 씨앗의 운명은 안개가 걷힌 후에야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