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무식자는 백화점에 전화해 물었다.

알가자미를 아세요?

by 고든밍지

나는 생선을 먹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비위가 약해 입에서는 항상 생선을 거부했다.

“생선이 몸에 얼마나 좋은데. 네가 생선 한번 먹는 게 엄마 소원이야. 한 번만 먹어봐.”


애처롭게 권하는 엄마의 눈빛에 못 이겨 두부조림처럼 빨갛게 양념된 고등어조림을 베어 물었지만 비린 맛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토해버렸다. 그때의 내 나이가 다섯 살인지 여섯 살이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린 마음에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 못 먹는 생선을 먹었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 나는 생선이 더 싫었다. 생선의 맛과 냄새 그 모든 게 싫었지만, 특히 초점 없는 생선 눈깔을 보는 게 몸서리치게 싫었다.


직장 생활을 하고나서부터 생선을 못 먹는다는 것은 더 치명적이었다. 점심 메뉴, 회식 메뉴에 생선을 먹게 되는 건 싫었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초밥집에 가면 우동을 먹었고, 추어탕 집에 가면 돈가스를 먹었다. 그러다 상사가 매운탕이나 생선구이 집에 가자고 하면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


유별난 사람으로 보일까 ‘저는 생선을 못 먹어요.’ 말하고 설명하는 것도 피곤해 먹는 척만 한 적도 많았다. 숟가락으로 새빨간 매운탕 국물 속을 여러 차례 휘저었으나 젓기만 할 뿐 입으로 넣진 못했다. 젓가락은 생선을 집는 척했지만, 실상은 허공을 허우적댔으며, 애꿎은 주변 반찬들만 이따금 건드려 먹고 있다는 인상만을 주려고 했다.


내가 생선을 못 먹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지 않다면 적어도 그 식사 자리를 같이 한 사람들은 몰랐다. 역시 사람들은 남의 입보다 자기 입으로 들어가는 게 더 중요했다. 그 무관심이 다행이면서도 내심 서운했다.


분명히 점심시간인데도 나는 식사를 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밥을 먹고 왔지만, 허공의 젓가락질로 배가 고픈 날이 더 많았다. 점점 더 나의 생선에 대한 거부감은 더 심해졌고, 굶다시피한 점심을 보상이라도 하듯 집에서는 허겁지겁 여러 음식을 입속에 넣곤 했다.


이런 나와는 반대로 내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생선구이, 회, 초밥 등의 일식이다. 하지만, 먹지 못하는 나 때문에 11년의 긴 연애 동안에 생선구이는 먹은 적이 없고, 초밥집에 간 건 다섯 손가락에 꼽는다. 결혼 후에도 남편이 집에서 구경하는 생선은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냉동 고등어와 이런 남편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친정엄마가 직접 구워 내 손에 들려주는 생선구이가 다였다.


그런 남편이 얼마 전 눈 수술을 했다. 전신 마취를 하고, 3주 동안 눈에 물이 닿으면 안 되어 세수도 할 수 없는 큰 수술이었다. 그런 남편이 안쓰러워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었다. 남편은 한참을 머뭇거린 후 말했다.

“진짜 말해도 돼? 진짜? 그럼 말한다. 나 알가자미가 먹고 싶어.”


생선 무식자인 나에게는 알가자미는 생소했다.

“알가자미가 뭐야? 알든 가자미야? 난 그런 걸 본 적이 없는데.”하며 쏘아붙이듯 되물었다.

남편은 “응. 알이 든 가자미야. 나는 어릴 때 많이 먹었는데 정말 맛있어.” 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나는 당황한 표정을 애써 숨기며 생선 손질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며 서둘러 대화를 끝냈다. 그리고 그 대화를 잊고 지냈다.


남편과 우연히 여행지에서 들른 시장에 갔다가 생선가게를 지나쳤다. 나는 초점 없는 생선 눈깔을 마주칠세라 걸음을 재촉했다. “알가자미가 여기 있어. 바로 이거야. 맛있겠다.” 며 남편은 군침을 다셨다. 나는 그때 알가자미를 처음 보았다. 붉은빛이 도는 알이 머리가 없이 휑한 생선 몸통 안에 박혀있었다.


“먹고 싶으면 살까?”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남편은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눈으로는 알가자미를 쫓고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내 그 알가자미가 마음에 걸렸다. 역시나 남편이 너무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핸드폰으로 열심히 알가자미 파는 곳을 검색했다. ‘생선구이 집에 전화해서 알이 든 가자미를 구워주냐고 물어봐야 하나?’ 애초에 가자미구이를 파는 곳도 많이 없고, 노르웨이산 냉동 가자미를 구워주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알가자미 구이, 냉동 알가자미, 가자미 파는 곳 등의 폭풍 검색을 하다가 집 근처 유기농 전문 마트에서 냉동 알가자미를 판매한다는 것을 되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드디어 알가자미를 먹게 해 주겠다며 남편에게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런데 돌아온 남편의 대답은 “그 가자미는 언제 잡아서 얼린 거래?”하고 뚱하게 물었다.


나는 너무 황당해서 말문이 막혔다. 냉동 생선의 어획 일자를 명시해 두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다. 질문 자체가 영 이상했다. '남편은 대체 왜 이런 말을 하는 거지?' 황당한 표정의 나를 두고 남편은 오늘의 저녁 메뉴로 어느 치킨을 먹을 것인지로 화제를 돌렸고, 나는 금세 어느 치킨을 시킬지에 집중했다.


그날 밤, 나는 기분이 영 찝찝했지만, 내일은 꼭 알가자미를 어떻게든 구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친정 엄마에게 도움을 청해볼까?, 사러 갔는데 생물이 없다고 하면 어쩌지?’ 등등 밤새 고민하다 잠을 설쳤다. 백화점 생선 매장에서는 바로 구울 수 있게 손질을 해줄 것 같았기 때문에 꾸역꾸역 근처 백화점 여러 곳에 서둘러 전화를 했다.

“거기 알이 든 가자미가 있나요?”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끼며 물었다. 다행히 그중 한 매장에 물건이 있어 기쁜 마음으로 알가자미를 사 왔다. 심호흡을 하며, 백화점 식품 코너 직원의 말을 상기했다. 기름을 붓고, 전분을 묻혀 튀기듯 구워야 맛있다는 친절한 설명이었다.


가자미의 비늘을 직접 마주하자 소름이 돋았다. 비닐장갑을 끼고 비늘이 보일새라 전분을 구석구석 묻혔다. 기름을 부은 후라이팬에 알가자미를 넣고, 사투를 벌이듯 구웠다. 남편은 맛있게 잘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싶어 힘들게 구해왔는데 막상 보니 저 깊은 단전에서부터 화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어제 남편의 말이 마음에 걸렸던 게 분명하다.


어제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속사포 랩으로 쏟아냈다.

“냉동 가자미가 언제 잡은 건지 아는 사람이 어딨어! 상식적으로 질문이 너무 이상하지 않아? 냉동이 싫으면 싫다고 하지, 왜 그렇게 말을 해?”하며 쏘아붙였다.


남편은 황당해하며 “냉동이 먹기 싫으니까 그렇지. 잘 사 와서 구워주고 왜 그래? 그깟 생선 한 마리로 이렇게 유세 부릴 거면 이제 먹고 싶은 거 말 안 해.” 그리고 우리의 대화는 끝났다.


나는 여전히 씩씩대며 소파에 앉아 생각했다. 남편은 냉동 알가자미가 먹기 싫었던 거다. 알이 듬뿍 들어있고 싱싱한 제철 알가자미를 먹고 싶었고, 차마 대놓고 말할 수 없어 냉동 가자미를 언제 잡았는지를 물었던 것이다. 그게 싫다는 표현이었던 것 같다. 남편은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라고 해서 솔직하게 말했을 뿐인데 내가 화를 내니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생선이 싫은데 생선을 해달라고 하는 남편이 미웠다. 별일 아닌데 해주지 못하는 내가 더 미웠다. 평생 생선 무식자로 살아온 나는 냉동 가자미와 생물 가자미의 차이를 잘 알지 못했다. 알가자미를 어디서 살 수 있을지 고민하며 지새운 지난 밤과 생선을 먹는 척 하기 위해 허공에 젓가락질 하던 점심시간의 내 모습이 겹쳐졌다.


나에게는 생소하고 남편에게는 익숙한 알가자미를 통해 우리의 갈등은 폭발했다. 거기에 어떻게든 해주고 싶은 나의 간절한 마음과 배려한답시고 솔직함을 잃어버려 생겨난 남편의 신박한 질문까지.


좋은 점만 생각해 보면, 나는 남편 덕분에 알가자미의 실체를 알게 되었고, 남편은 냉동 생선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생물, 반건조, 냉동 가자미의 차이를 알고, 생선을 (비닐장갑을 끼고) 만질 수 있게 되었다. 집 근처 백화점 생선코너에 대해 누구보다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최면을 걸듯이 주문을 외워봐도 아직도 마음에 뭔가 걸린 듯 답답하다.


냉동 가자미를 언제 잡았는지 물어본 그 신박한 질문의 행간을 난 왜 읽지 못하는 건가. 아니다.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것 같다. 알고 싶지 않았다. 난 모르고 싶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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