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명퇴했다

명예로운 퇴직이라는 건 어떤 것일까

by 고든밍지

우리 집엔 공무원이 세 명이다. 엄마를 제외한 아빠와 언니, 나, 그래서인지 세 부녀는 동일한 성씨 외에도 알 수 없는 끈끈한 유대감이 있었다. 아빠는 정년을 약 1년 남짓 남기고 명퇴했다. 뉴스와 신문에서 줄곧 떠들어대는 그 이름도 익숙한 명예퇴직, 사기업에서는 정년을 한참 남기고, 정년 이전에 퇴직을 유도하는 제도라고 알고 있어 사실 인식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공무원의 명예퇴직도 왠지 비슷한 제도이겠거니 생각했었다. 나와는 아주 먼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빠는 36년을 공직에서 근무했다. 심지어 나와는 같은 OO시 공무원 소속으로 나의 선배이자 동료였다. 그런 아빠가 퇴임을 한다고 하니 뭔가 마음 한편이 이상하게 착잡했다.


명예로운 퇴임식은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과 직원들과 식당에서 마지막 식사 겸 조촐한 퇴임식이 있다는 것을 하루 전날 우연히 알게 되었다. 아빠가 말해준 것도 아니었지만, 직원들의 배려로 우리 가족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그 퇴임식에 갑작스럽게 참석하게 되었다. 나는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급히 꽃다발을 예약하고, 편지낭독을 준비했다.


휴직 1년 차, 집에서 칩거하는 날이 많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고, 그런 자리에서 편지를 읽는 것도 부담이 되었지만 아빠의 마지막 자리라고 하니 알 수 없는 용기가 샘솟았다. 하루 전날 알게 되었기에 바로 전날 새벽에 글을 썼다. 쓰면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어릴 때는 공무원이 힘든 직업인지 잘 몰랐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언론에서 보도되고,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철밥통'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공직의 길로 들어서고, 치열한 현장을 경험하다 보니 아빠가 얼마나 버티며 살아왔을지 느껴져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드디어 당일이 되었고, 차에 숨어있다 시간에 맞추어 식당에 들어갔다. 편지를 읽기 시작함과 동시에 눈물샘이 터질 것 같은 위기가 찾아왔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이 목소리가 떨렸지만, 이내 꾹 참았다. 하고 싶은 말을 전할 공식적인 자리는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승진 스트레스와 생각보다 고된 업무, 민원인 얘기에 공감한 직원들은 같이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고,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기도 했다. 진심은 역시 통하는 것일까.


아빠의 36년간의 여정은 제철을 맞은 방어회와 떡 등 각종 먹거리가 차려진 변두리 작은 식당에서 끝이 났다. 퇴임식도 없이 퇴직을 하는 사람에 비해서는 분명 호사일 수 있었으나, 가족의 입장에서는 시원한 마음보다는 섭섭한 마음이 더 컸다. 매일 같이 출근하던 직장이 없어진다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오히려 개운하려나.


퇴직이 결정되고도 끝까지 일적으로 마음고생을 했던 아빠의 흰머리칼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고된 업무강도와 승진,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 등 이런저런 이유로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박봉일지라도 가장의 무게를 버티느라 묵묵히 아침마다 회사로 향했을 것이다.


흔히들 '인생 2막, 꽃길 시작!' 등의 퇴직 축하 문구를 많이 쓴다. 나는 그런 문구가 왜인지 와닿지 않았다. 과연 꽃길일까. 퇴직자의 그 복잡한 심경을 아직 경험해보지 않아 깊이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다. 다만, 앞으로 펼쳐질 인생 2막이 아름다운 꽃길이면 좋겠지만 그게 아닐지라도 그 모든 여정에 함께할 것을 약속하며, 응원하겠다는 마음만이 들뿐.


과연 어떤 퇴직이 명예로운 것일까. 조직을 위해 나가 주는 것이 명예로운 것인가. 본인이 나가고 싶은 시기에 떠나는 것이 명예로운 것인가. 그도 아니면 정년을 다 채우고 나가는 정년퇴직이 명예로운 것인가. 어떤 퇴직이, 과연 어떤 끝맺음이 명예로운 것일까.


아빠는 명예퇴직과 동시에 특별승진을 했다.

지방공무원법 제39조의 3 제1항 제4호 재직 중 공적이 특히 뚜렷한 사람이 제66조의 2에 따라 명예퇴직할 때

특별승진임용을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1년만 더 다니면 되는 걸?' 정년퇴직이 정말 멋있는 끝맺음이 아닐까 하고 은연중에 생각했었다. 명예퇴직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있어서였을지도 모른다. 특별승진과 명예퇴직이 동시에 적힌 글자를 멍하니 바라보며, 왠지 그 선택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동기와 후배들이 먼저 올랐던 그 자리, 정년을 꽉 채우고 퇴직했더라도 끝내 현실에서 얻기는 어려웠을 그 자리를 모순적이게도 퇴직과 동시에 얻었다고 속 없는 생각을 해버리는 수밖에. 정말 그 이유로 아빠가 그 선택을 했는지는 난 여전히 알 수 없다.


어떤 것이 진정 명예롭다고 감히 말할 순 없지만 한 분야에서 매일같이 묵묵히 일해왔던 사람의 퇴직을 바라보며, 내가 더 섭섭하고, 뭉클한 마음이 든다. 끝이 나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상기하며, 본인에게는 시원함이 더 큰 부디 명예로운 마지막이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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