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이가 무서운 건 어른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작년에 이미 180cm이 넘은 큰 아이를 내가 무섭게 혼내봤자 무섭지 않을 것이고, 대화가 가능한 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큰소리로 혼내는 건 예전에 그만뒀었다. 그런데 의자가 발랑 뒤집어져 있는 걸 보니 내 눈도 헤깍 뒤집혔다. 이노무자식이..!
"야, 이 의자 니가 그런거야? 뭐하는 짓이야!"
어릴 때는 '야' 소리 한 번 안 하고 키웠었다. 내가 듣기 싫은 소리여서 하지 않으려고 했다. 지금보다 호되게 혼내고 회초리도 들었었지만 존중하지 않는 단어는 쓰지 않으려고 했었다. 이제는 아무때고 야 부터 시작해서 얌마, 임마, 이자식이 줄줄이 나온다. 하지 말아야지라는 반성의 노력은 아이가 학교 가 있는 동안만 지켜질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폭력성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감히 성질을 피우고, 숨기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괘씸죄가 추가 돼 유교걸의 심기를 건드렸다. 내가 지금부터 너에게 하는 말들은 정당방위인 것이다.
"일주일 전에 내 준 숙제를 아침에 못 일어나서 안 한게 잘한거야? 뭘 잘했다고 이러고 있어?"
와다다 뱉었더니 생각도 안 난다. 옥타브가 높았던 건 맞다. 하지만 욕은 하지 않았다. 나는 지성인이므로.. 하 씨... 우리는 앞으로도 공생해야 하기 때문에 바닥까지는 가지 말아야 한다. 조용히 의자를 일으켜 제자리에 돌려놓는 사춘기 1호의 태도로 다행히 맞대결까지 가지는 않았다. 대들지 않는 것에 다행스러움을 느껴야 한다니 자존심이 욱소리를 뱉을 뻔 했지만 입꾿닫에 성공했다. 또 한 번 지성인이므로.. 아놔...욕은 속으로 한다.
이제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주말 일정을 시작한다. 입은 다물고.
쌓여있는 빨래를 수거하고 어젯밤 미뤄놨던 설거지를 시작한다. 귀는 열어놓고.
집에서나는 백만가지 소리를 나는 구분할 수 있다. 이 녀석이 화장실에서 물만 틀어놓고 변기 위에 앉아 폰을 하는구나, 이 녀석이 내 눈치보러 슬쩍 왔다가 내가 아는 체 안 하니까 머쓱해서 돌아가는구나, 나는 안다.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기 때문에.
어제는 몸이 안 좋다고 영어학원을 빼먹어서 오후엔 보강이 있었다. 오전의 수학학원은 그렇게 숙제 안해서 못 가고, 오후 영어학원까지 안 가겠다는 NO양심은 아니였던지 어슬렁어슬렁 하더니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내가 가진 최대 권력 세 가지, 식사제공, 의복제공, 차량제공. 세 번째 권력으로 의자를 뒤집은 벌을 내렸다.
다행이다, 불이익을 줄 수 있어서.
나보다 머리통이 하나 더 있는 녀석에게 내 힘은 녀석이 당해줄 때만 효력이 있다. 어릴 때처럼 맴매할 수도 없고, 오늘 간식은 없어라는 협박도 통하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무기력 할 때가 있다. 이런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은 적도 있다. 니가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으면 내가 무얼 할 수 있겠느냐고.. 엄마아빠가 너를 믿는만큼 니가 해주는 수 밖에 없다고.. 평소 대화도 많이 하고 사이가 좋은 편인데도 가끔 사춘기가 발현되면 아이만큼 나도 감정적이 된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라는데, 머리가 뜨겁다 못해 어질한 지경이 되면 진이 빠진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행복의 상한가와 무기력의 하한가를 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