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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유 Jul 12. 2024

26년 째 학교를 다닙니다

깨지고 아물고 성장하는 이야기

"쌤, 저 왔어요!"

교무실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는 졸업생의 목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미어캣처럼 고개를 든다. 또 반가운 얼굴이다. 작년, 재작년에 졸업한 아이들이 하나둘 내내 찾아오는 이번 주. 대학교는 방학이면서 고등학교는 방학이 아닌 7월에 자주 있는 일이다. 대학 생활은 어떤지, 고등학교가 그립지는 않은지, 재미있는 썰은 없는지, 적응은 잘 하고 있는지 듣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있곤 한다.



어제는 우리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두 대학에 진학한 아이들이 왔다. 같이 입시를 준비하면서 함께 괴로워하고 함께 기뻐했던 날들이 떠올라 괜히 마음이 뭉클했다. 반가운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 지금 가르치고 있는 1학년들 역시 지대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두 학교라 '선배와의 대화'라는 명목으로 자리를 마련했다. 몇 개월 전만 해도 교무실에서 상담하며 불안감에 찔찔 울던 녀석들이, 후배들 앞에서 '즐기며 했으면 좋겠다'며 제법 어른인 체하며 얘기하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새어나왔다.


사실 고등학생 때의 나는 그다지 모범생은 아니었다. 친구들 말에 따르면 반에서 제법 웃기는 아이 정도였던 듯하다. 공부보다는 친구들이랑 노는 걸 좋아했고, 수업 시간에 떠들어서 자주 혼나기도 했다. 선생님 몰래 야자를 빼먹고 노래방 가기는 부지기수였다. 이때 공부를 많이 안했던 탓에 대학 시절을 고통 속에서 공부만 하고 지내긴 했지만(!) 그 시절 덕분에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나같은 학생을 교사가 된 지금의 눈으로 보면...... 엄청 예쁜 학생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역시나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다.ㅋ



졸업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늘 지난 교직 생활이 스쳐 지나간다. 국어 교사로, 고3 담임으로, 때로는 언니로, 엄마로..... 살며 제법 오랜 시간들이 지나갔다. 사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돌만큼 안쓰러운 아이들도 있었는데, 어느새 자라서 자신의 몫을 해내며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다.


학교는 참 묘한 공간이다. 아이들과 함께 지지고 볶으며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곳. 그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주는 동시에 나 역시 끊임없이 배우는 곳. 방학이라는 달콤한 휴식과 함께 계속해서 공부해야 하는 부담이 공존하는 곳.


누구보다도 예민한 기질인 나는, 가끔은 아이들을 대할 때마다 신경이 바짝 곤두서기도 한다. 아침 조례 시간에 마주하는 수 많은 표정들이 모두 나에게 어떤 정보가 되어 다가오기도 한다. 또 내가 건네는 말 한 마디, 표정 하나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라 끝없이 두려워지기도 한다. 아이를 달래기 위해 던진 농담 하나가 아이의 가슴에 평생 상처로 남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더 신중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학교는 내게 가장 소중한 공간이다. 아이들이 멀리서 "쌤~!!"하고 불러줄 때의 그 설렘.


처음 교사가 되어서 담임 반 아이들을 받고, 아이들의 학교생활기록부에 찍힌 내 이름을 보았을 때의 그 두려움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에게는 매해 달라지는 수십 명이지만, 돌아오지 않는 이 한 해에 아이들에게는 나뿐이구나 하는 중압감 때문에. 덕분에 나는 해마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자 한다.



최근에 이런저런 일들과 생각들로 꽤나 힘든 날들을 보냈다. 학교에 오는 게 더이상 즐거워지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내가 키워 낸 아이들이, 아니 나와 함께 성장한 아이들이 나를 예쁜 추억으로 간직해 주는 걸 보니 다시 또 힘이 난다.


앞으로도 난 이 길을 걸어갈 것이다. 때론 웃고, 때론 울고, 때론 화내고, 때론 토닥이며.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 나갈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나를 더 많이 성장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와 오늘 오기로 한 아이들과의 만남을 준비해야겠다.

오늘의 만남도 내일의 나를 만드는 소중한 시간이 되겠지.



"야! 너무 얼굴이 좋아졌다! 학교 생활은 어때? 재미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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