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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웅 Jun 20. 2024

길 가다 돈 주운 기분.

 “모처럼 늦잠을 주무시고, 어떻게 회복은 되셨는지요?”

“여행이란 이런 것이구나,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어제였습니다. 항상 체력 안배에 염두를 두고 여행하겠습니다.”

“여행은 경험으로 배워 가는 겁니다. 오전에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무료입장 시간은 오전 12시입니다. 그리고 프라도 미술관 예약은 3시입니다. 가이드 생각에는 오전은 포기하시고, 어제 길 걷다 우연히 본 100년 된 이발소에서 이발하시는 것은 어떠실는지요?”

“티센 보르네미사, 프라도, 소피아 미술관은 무조건 가야 하는데, 아쉽지만 가이드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러면 조금 더 쉬시고, 마드리드의 마지막 날을 알차게 보내시길 당부드립니다.”    

 

 느긋하게 일어나 간단한 아침을 먹었다. 여기 음식은 배는 부르지 않고, 그렇다고 쉽게 꺼지지도 않았다. 배가 꺼지기 전에 계속 먹어서 그런가? 아무튼 하루 종일 속이 더부룩하고, 답답했다. 그래도 사발면을 먹으니, 속이 조금은 풀린 것 같다. 짐을 챙겨 아토차 기차역 근처 라커룸에 맡기고, 어제 본 1908년 영업을 시작한 116년 된 이발소로 향했다. 이발소를 향해 걷는 중 라디오 부스를 발견했다. 안산 공동체 라디오 단원 FM, 그중에서도 청취자들에게 제일 뜨거운 반응(나의 판단)을 받는 드라마 천국 진행자로서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곳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했다. 문을 열고 ‘마드리드 라디오’에 들어갔다. 문 가까이에 앉아있던 아가씨가 일어나 나를 바라본다. 아, 나는 스페인어를 못하지, 뒤늦게 깨달았다. 

“울라, 사우스 코리아, 안산 시티, 단원 FM 디제이엔 피디, 마이네임 미스터 윤.”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뒤를 돌아보니 딸은 보이지 않았다. 딸은 문밖에서 어서 나오라는 손짓을 다급하게 하고 있었다. 나는 방긋 웃으며 딸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딸은 엉거주춤 ‘울라’를 외치며 입장했다.

“통역 좀 해봐.”

“아빠, 나 스페인어 몰라.”

“영어로 하면 되잖아.”
 “내 영어는 짧아, 그 정도는 아니야.”

“너 불어 했잖아. 그러면 불어로 해봐.”

딸은 영어나 불어가 가능한지 물었다. 다행히도 그녀는 영어가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안산 단원 FM 진행자이며, 지나가다 라디오 부스를 발견하고 궁금해서 들어와 봤다. 단원 FM은 공동체 라디오로 안산지역에서만 송출된다. 유튜브를 통해 우리 방송을 들을 수도 있다. 뭐래?”

“대단한 관심을 갖는데, 유튜브 좀 보여 달래.”

“알았어. 내가 찾아볼게. 그리고 안산 단원 FM 공동체 라디오는 시민들이 만드는 방송이라고 설명해. 그리고 안산시는 한국에서 외국인들이 제일 많이 사는 곳이어서, 우리 방송 프로그램 중에는 중국, 네팔, 라오스등 여러 나라 방송도 있다고 말해 줘.”

“대단하다고 하는데.”

“그럼, 대단하지. 외국인들과 시민들이 한 푼씩 모아서 만든 방송국인데. 여기는 무슨 방송을 하는지 물어봐.”

 나는 그녀에게 유튜브에서 내가 하는 방송, 나의 목소리를 들려줬다. 엄지 척을 하는 그녀에게 방송국을 구경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방송국 송출 시스템과 녹음실, 라디오 부스를 구경시켜 줬다. 진행 중인 라디오 부스에 들어가 사진도 찍었다. 

“코리아 사인, 핸드 하트. 오케이?”

“오브 코스, 오케이.”

우리는 손하트를 날리며 사진을 찍었다. 역시, 내 눈은 정확했다. 주로 음악 방송을 한다는 ‘마드리드 라디오’ 역시 공동체 라디오였다.


 “아빠, 이분이 K드라마를 좋아하고, 요즘은 사랑의 불시착을 보고 있다네.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주인공들이 서로 사랑하는 데까지, 너무 오래 걸린다고 답답하다는데.”

“드라마 천국 진행자에게 걸맞은 적절한 질문을 하는군, 한국 사람들은 한눈에 반하는 사랑보다, 뚝배기같이 은근하게 오래가는 사랑을 좋아한다고 해. 그리고 한국에서 사랑 전 단계인 '썸'이 있지. 로맨스 드라마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코스지. 썸 단계에서 시청자들은 주인공이 되어 같이 웃고, 울지. 시청자와 주인공이 혼연일체가 되는 것이 한국 드라마의 특징이라고 말해.”

“아빠 말대로 이야기하긴 했는데 이분이 썸을 이해할까?”

나는 썸을 몸으로 이야기했다.

“스페인 로맨스 드라마, 투 피플, 아이 컨택, 키스, 베드룸, 엔드. 코리아 로맨스 드라마, 투피플, 아이 컨택, 핸드 터치, 아이 컨택, 핸드 크로스, 아이 컨택...”

“아빠, 이분 자지러진다. 그만해.”

“안산에 오시면 단원 FM 구경시켜주겠다고 이야기하고, 고맙다고 인사해.”

우리는 두 손을 격하게 흔들며 ‘울라’를 외치며 방송국을 나섰다.    

 

“아빠, 대단해. 어떻게 그곳에 들어갈 생각을 했어?”

“단원 FM처럼 공동체 라디오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 그래서 궁금했지.”

“말도 한마디 못 하면서, 겁도 없이 막 들어가?”

“구글님도 있고, 너도 있고, 또 나에게는 친화력이 있잖아.”

“친화력은 무슨 뻔뻔함이지.”

“아, 너무 기분 좋다. 길 가다 돈 주운 기분이야.”



 거리를 걷다 우연히 발견한 이발소. 일요일이라 문을 닫아 월요일에 가기로 했다. 
마드리드 라디오 식구들.
라디오 프로그램 
단촐한 방송장비. 단원 FM은 여기보다 믹스기가 더 많고, 좋다.^^ 
손하트 설명 중
여성분은 처음이라 했다. 손하트를 날리며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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