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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웅 Oct 14. 2024

가우디의 건축물

 코메야의  유리전시장으로 유명해진 가우디는 잇따라 귀족의 집을 짓게 된다. 그의 첫 작품은‘카사 비센스(Casa Vicens, 비센스의 집’이라는 뜻)였다. 가우디의 초기작품으로 상대적으로 무미건조하다는 느낌이 컸다. 그럼에도 돌출된 돔 형태의 지붕과 입체적인 외벽, 철로 만든 장식(종려나무 잎사귀를 본뜬) 등에서 가우디의 향기가 났다. 1925년부터는 후안 밥티스타에 의해 재설계되었다. 다음으로 지어진 건물이 구엘저택이었다. 취향에서만큼은 밀리고 싶지 않던 졸부 구엘은 자신의 가문을 명문가로 만들기 원했다. 구엘은 ‘네 마음대로 지어봐라’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가우디에게는 축복이었다. 하지만 구엘 저택은 지대가 좁았다. 120평이 좀 안 되는 넓이다. 기둥을 제외하면 전용면적은 80평이 안 될 수도 있다. 여기서 가우디의 빛을 발한다. 가우디는 집 어느 곳이라도 빛이 흐르도록 천장에 ‘빛의 우물’을 뚫었고, 통행에 방해되는 칸막이나 기둥을 없애버렸다. 결과적으로 구엘 궁전은 실평수가 매우 큰 집이 됐다. 동시에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두 개의 출입구(마차, 사람)가 있는 현관을 세웠다. 아마, 다 지어진 저택을 본 구엘은 어깨에 뽕 좀 들어갔을 것이다. 구엘주택 건너편 옥탑방에는 피카소가 살았다. 피카소는 구엘 주택의 옥상을 바라보며 많은 영감을 받았으리라.


 가우디의 건축 능력은 구엘 공원과 ‘카사 밀라(Casa Mila)’에서 절정으로 치닫게 된다. 구엘 공원은 신흥 재벌에게 분양할 목적으로 지은 공원과 주택이다. 가우디는 어느 유명한 건축가의 말처럼 집을 위해 자연을 깎아지르기보다 자연에 얹는 걸 좋아했다. 그러나 구엘 공원의 택지는 경사가 심한 그냥 산이었다. 따라서 부지를 60개 구역으로 나눠 최대한 지형을 살리는 형태로 공원의 스토리를 써 내려갔다. 벤치 하나를 조각할 때도 가우디는 여러 사람을 앉혀 보고 가장 아름다우며 편한 모양을 고안했다. 산등성이에 있는 구엘 공원에서 물을 마시기 어렵다는 것에 착안해, 중력을 이용한 친환경 정수 시설을 만들기도 했다. 뾰족하고 둥근 계단 손잡이가 방문자를 불안하게 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착시를 이용해 끝을 안쪽으로 말아놓을 정도로 계단, 옥상 등 거의 모든 지점에서의 시선 또한 철저하게 고객에게 맞췄다.  

    

 카사 밀라는 밀라의 단독 주택이 아닌 주상복합 건물이다. 아파트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가우디는 카사 밀라에 이르러서는 거의 꿈을 세우는 수준의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카사 밀라의 특징은 직선이 적다는 것이다. 직사각형의 건축 형태는 합리성을 상징하며, 현재까지 가장 보편적인 건축물의 형태지만 가우디는 카사 밀라를 물이 흐르는 듯한 곡선으로 지었다. 이 건물은 그저 아름다운 것에서만 멈추지 않고, 건물 중앙에 수직으로 큰 구멍을 두 개나 뚫었다. 이유는 환기와 채광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환기와 채광만을 위해서라면 건물을 두 동으로 지으면 그만이다. 가우디는 ‘채광’뿐만 아니라 각 가정에 닿는 빛의 흐름을 계산했다. 따라서 그림자가 지기 쉬운 아래층에도 해가 넉넉하게 들도록 빛을 뿌렸다. 이 빛의 흐름은 카사 밀라 이전의 건물이었던 ‘카사 바트요(Casa Batlo)’에도 적용했는데, 비교적 규모가 작은 구멍을 뚫었던 카사 바트요에서는 아래쪽까지 빛이 들기 어렵다고 판단해 위는 코발트블루, 그 아래는 하늘색으로 시작해 회색을 거쳐 백색으로 마무리한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명도를 높여 빛이 잘 반사되도록 한 것이다. 동시에, 도심에 사는 사람들에게 공원이 얼마나 필요한지 잘 알고 있었던 가우디는 옥상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처럼 조각했다. 카사 밀라의 옥상 환기탑은 트렌카디스(trencadis), 다이아몬드 형태의 조각으로 마무리했는데, 이 두 방식의 공통점은 보는 면에 따라 빛이 다른 모양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가우디는 생전 빈곤층에게 가장 강도 높은 비판을 받는 건축가인 동시에 존경받는 인물이기도 했다. 스페인 내란에도 가우디의 건축물은 안전했다. 가우디와 함께 작업했던, 가우디의 장인정신을 존경하는 노동자들이 보호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몇 있다. 첫째, 카사 밀라가 도로를 침범해 시가 공사 중단을 명령하자 가우디는 무시했고 4년이나 불법으로 공사를 진행했다. 완성된 카사밀라에 감탄한 시는 결국 허가해주고 말았다. 둘째, 구엘이 죽자마자 구엘의 자녀들은 구엘 공원 공사를 중단해 버렸다. 구엘의 유산을 다 써버릴 정도로 돈을 퍼부으며 작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엘은 이름을 남겼고, 자식들은 재산을 잃고, 오명만 얻은 셈이다.  


 가우디는 화려한 업적과 달리 노년에는 성당의 지하실에서 작업만을 하며 지냈다. 성당 건축의 의미는 개인 주택과는 다르다. 성당은 유럽인들에게 또 하나의 집이며, 소개하고 싶은 마을 입구이자, 길거리의 사랑방이다. 이렇게 중요한 건물을 가우디에게 맡기는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아주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뛰어난 신앙심과 예술적 감각으로 신화를 현실에 등장시킨 가우디는 평범하면서 비범하게 사라졌다. (슬로 뉴스, 이종철)


 가우디의 건축물에 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자. 더 이상의 설명이나 사진은 의미가 없다. 직접 눈으로 보고, 감동받아야 한다.

“아빠, 가이드와 함께하니까 너무 좋지?”

“가이드 신청 잘했다. 가이드 덕분에 재미도 있고, 힘도 안 들고 너무 좋다.”

“야경 투어도 신청할까? 바르셀로나의 밤거리를 걸으면서 가이드해준데.”

“그것도 재미있겠다. 하자, 하자.”



카사 비센스(1888년 완공, 바르셀로나)
구엘 저택의 내부 (촬영자: 타카히로 하야시, CC BY 2.0)
구엘저택 두개의 입구 Seth Lemmons - Flickr: Seth Lemmons Photography :: Barcelona, Spain
가우디의 굴뚝 디자인 (출처: CulturaPrimavera2010)
벌집, 채석장 등으로 불리는 카사 밀라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카사 밀라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옥상’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CC BY-SA 3.0)
아래층까지 빛이 닿도록 설계한 카사 바트요의 타일 색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2.0)
깎아지른 절벽을 연상시키는 카사 밀라의 구멍은 기능성 때문이기도 했다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CC BY-SA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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