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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얼굴들

열받아 계엄령을 선포한 대통령

by 윤희웅

"뭐 하냐? 국회로 가야지."
"밤 11시에 전화라니, 무슨 일 있어?"
"윤석열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어."
"계엄령? 서울의 봄이야? 가짜뉴스도 그럴듯해야 속지. 다음엔 탱크가 광화문에 들어왔다고도 하지 그래."
"거짓말 아니야. 뉴스 좀 봐봐."

텔레비전을 켜자마자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화면 속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있었다. 전쟁인가? 자세히 들어보니 그건 아니었다. 이유는 더 황당했다. 종북세력과 반국가 세력 때문이란다. 대통령과 뜻이 다르면 종북세력, 조금이라도 반대하면 반국가 세력, 결국 척결 대상이라나.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한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집회에 나섰던 기억이 떠올랐다. 세월호 참사로 가만있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거리로 나갔던 날들.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고자 외쳤던 민주주의. 하지만 촛불 정권이 들어선 뒤 깨달았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과반 의석을 가진 정권도, 아이돌 뺨치는 지지율의 대통령도 재벌과 기득권의 벽을 넘지 못했고, 서민과 소수자는 여전히 외면받았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에도 마음이 가지 않았다. 탄핵을 외치고 또 다른 무능을 맞이할 생각에 기운이 빠졌으니까. 그런데, 계엄령? 이건 좀 다르다. 밤새 텔레비전을 지켜보며 계엄군이 국회로 들이닥치고, 그걸 무효화했다가 다시 해제되는 한바탕 소동을 지켜봤다. 환율이 급등하고, 주식은 폭락하고, 코인은 추락했다. 이게 도대체 뭔가?


포고령은 더 어처구니없었다. 첫 번째는 정치활동 금지. 두 번째는 대통령 비판 금지. 세 번째는 가짜뉴스와 여론조작 금지라며 방송국 대신 김어준의 자택에 군을 보냈다. 네 번째는 사회혼란 조장 금지. 그러니까 철도 파업 겨냥이다. 마지막으로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인들에게 48시간 내 복귀 명령. 위반 시 계엄법으로 처단한다더라. 전공의가 반국가 종북세력이 되는 놀라운 마법. 외신은 “남편이 부인을 지키려다 나라를 흔든다”며 조롱했다. 낮에는 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밤에는 계엄령이라니. 키르기스 대통령의 표정을 상상해 보라. 공항으로 도망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 대통령이 직접 계엄령의 이유를 밝혔다. 이유는 단순했다. 열받아서.
열받아서 나라를 멈추게 한 대통령. 국민도 열받았다. 혹시 또 열받아 북한에 미사일을 쏘고 계엄령을 한 번 더 선포하면 어쩌나? 더는 지켜볼 수 없었다.

결국 나도 열받아서 광화문으로 나갔다.

"계엄령도, 열받은 대통령도 이젠 그만!"

"탄핵도 아깝다. 체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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