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1일은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희생자 49재였다. 참사가 일어난 시각인 11시에 49재는 시작되었다.
아리셀 공장 앞 아스팔트는 뜨거웠다. 34도가 넘는 온도와 아스팔트 열기에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그늘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할머니와 함께 있었다. 할머니의 보살핌에 아이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기특했는지 곁에 있던 할아버지가 아이에게 사탕을 입에 물려 줬다. 아이는 사탕을 입에 물고 인상을 썼다. 할아버지들이 좋아하는 계피 사탕 또는 박하 사탕이 아닐까? 안절부절 못하는 아이에게 할아버지는 손을 내밀었다. 할아버지 손에 사탕을 뱉은 아이는 이내 울상이 되었다. 곁에 있던 누나가 아이에게 물을 줬다. 아이는 물을 마시고 할아버지에게 주먹을 높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아얏' 소리를 내며, 거짓 눈물을 흘렸다. 아이는 당황해하며 할아버지를 안아줬다. 할아버지는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아이에게 또 건넸다. 아이는 사탕을 쳐다보지도 않고, 냉큼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참울한 49재 분위기에 짧게나마 웃음이 새어나온 장면이었다.
49재를 준비하는 가족들이 영정사진을 들고 단상으로 올라갔다. 아이는 할머니와 함께 엄마의 영정 사진을 들고 단상에 올라갔다. 영정사진을 단상에 올려놓은 할머니는 그 자리에 쓰러지며 오열을 했다. 곁에 있던 누나가 아이를 안고 먼저 단상에서 내려왔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딸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다. 그 모습에 모든이들이 눈물을 훔쳤다. 나 역시 손수건에 땀보다는 눈물을 더 많이 닦았다.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내려온 할머니를 아이는 안아줬다. 할머니는 아이를 안고 오랫동안 울었다. 할머니와 함께 아이도 울었다. 할머니의 울음이 아이에게 슬펐을 것이다. 아이는 이제 혼자 앉아 있다. 49재가 마칠때까지 아이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외국인 노동자가 죽은 참사가 아닙니다.
한국인 노동자가 죽은 참사가 아닙니다.
사람이 죽은 참사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죽은 참사입니다.
참사가 일어난지 50일이 넘었습니다.
사고원인, 재발방지대책, 책임자 처벌도 아직 아무것도 없습니다.
49재에 가족들을 포함해서 100여명도 안되는 사람이 모였습니다.
관심이 필요합니다.
더이상 일터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