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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와 위엄의 4번 황제카드

by 윤희웅

퇴직한 선배를 병원에서 우연히 만났다.

“어? 선배님! 여기서 뵙네요?”

“어이, 자네! 어떻게 병원에서 만나냐? 어디가 아픈 거야?”

“저는 혈압약 타러 왔어요. 선배님은요?”

“나도 혈압약. 거기다 고지혈증까지.”

선배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 나이를 먹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나?”

“뭔데요?”

“아침마다 먹는 약의 종류가 늘어나는 게 나이 먹는다는 뜻이지.”

“그러게요. 운동도 좀 해야 하는데… 귀찮아서.”

그렇게 둘은 약봉지를 손에 들고, 병원 앞에 섰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왠지 병원 앞에서 헤어지긴 섭섭했다.

“선배님, 시간 되시면 식사라도 하시죠?”

“시간이….”

“그럼, 간단하게 커피 한잔하시죠?”

“그래! 살아 있으려면 카페인도 필요하지.”

선배님은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더니 깊은 한숨을 쉬었다.

“자네 퇴직했다는 이야기 들었어. 어때? 힘들지?”

“처음 한두 달은 좀 힘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다행이네. 나는 정말 힘들었거든.”

선배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생각보다 내가 할 줄 아는 게 없더라고. 머리라도 식히려고 여행을 갔어. 근데, 막상 여행을 하고 싶지가 않은 거야. 밖에 나가기가 싫어서 호텔방에 틀어박혀 있으니까, 카운터에서 전화가 오더라고.”

“왜요?”

“살아 있는지 확인하는 거 같아. 너무 안 나가니까 혹시 죽었나 싶었던 거지.”

“그래서요?”

“눈치 보여서 다른 호텔로 옮겼어. 근데 거기서도 똑같이 방에만 있으니까 또 전화 오더라고. 그렇게 호텔만 옮겨 다니며 3개월을 보냈지. 그렇게 생각을 많이 했음에도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선배님은 커피를 휘젓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살도 생각했어.”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 선배님.”

“근데 죽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더라고. 나는 그 용기조차 없었어.”

웃으며 말했지만, 선배님의 눈빛은 씁쓸했다.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저도 퇴직하고 멘붕 왔어요. 근데 저는 할 줄 아는 것보다, 하고 싶은 걸 찾기로 했죠. 커피도 배우고, 영상도 배우고, 요즘은 요리도 배우고 있어요.”

“다행이네. 아침마다 출근하듯이 집을 나서야 사람처럼 보이지.”

선배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선배님은 뭐 하세요?”

“공인중개사 공부하다가 접었어.”

“왜요?”

“공인중개사가 너무 많아. 자격증 따도 일할 데가 없겠더라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공인중개사랑 사회복지사가 한국 중년들의 필수 고시라잖아요.”

“그러게. 나도 사회복지사 2급은 땄어. 필수는 다 채웠네.”

“그럼, 요즘은 뭐 하세요?”

“사촌 동생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창고 관리해.”

“창고관리면 선배님 전공이잖아요!”

“전공이고 뭐고, 그냥 창고 지키는 수위야. 그래도 출근할 곳이 있어서 다행이지. 자네도 일을 찾아야지?”

“아직은 좀 쉬고 싶어요. 천천히 찾으려고요.”

“그래, 30년 넘게 일했는데 몇 년은 쉬어도 되지.”

그때 선배님이 시계를 힐끗 보더니 벌떡 일어섰다.

“미안한데, 병원에 약 타러 점심시간에 나온 거라 바로 들어가야 해. 원래 이런 자리에서는 술 한잔해야 하는데, 커피밖에 못 마셔서 미안하네.”

“다음이 있잖아요. 다음에 해요.”


나는 바쁘게 돌아서는 선배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한때 선배님은 회사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회사 일도 잘했지만, 그보다 자식 교육으로 더 유명했다. 첫째는 민족사관고를 졸업하고 아이비리그로 갔고, 둘째도 국제고를 나와 누나를 따라갔다. 학원도 보내지 않고, 장학금 준다는 학원도 거절했다. 오직 선배의 손으로 아이들을 키워냈다. 그때 선배는 직원들 사이에서 “황제”라 불렸다. 마치 타로 카드의 4번 황제처럼 강력한 리더십과 통제로 회사와 가정의 모든 목표를 이뤄냈다. 아이들의 수면시간과 식단까지 철저하게 관리하며 공부시켰던 모습과 자동화 창고 시스템 구축을 책임진 정말 위엄 넘치는 황제 그 자체였다. 그랬던 분이 이제는 초라한 행색으로 점심시간을 쪼개 병원을 찾고, 약봉지를 손에 든 채 바쁘게 돌아갔다. 황제가 앉았던 웅장한 왕좌에서 내려와, 이제는 창고를 지키는 노쇠한 수문장이 된 걸까. 하지만 내 기억 속 선배님은 여전히 권위 넘치는 영원한 황제로 남을 것이다.


… 단지, 이제는 호텔에 너무 오래 머물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타로카드에서 4번 카드는 "황제(Emperor)"입니다. 이 카드는 권위, 안정성, 질서, 그리고 구조를 상징합니다. 황제는 지혜롭고 경험이 풍부한 리더로, 책임감과 통제력을 강조합니다. 이 카드는 일반적으로 강력한 결단력과 자기 확신을 나타내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데 필요한 계획과 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권위와 리더십: 황제는 권위 있는 인물로, 강력한 리더십과 결단력을 상징합니다. 이 카드는 당신이 리더십 역할을 맡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상황에 있음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안정성과 질서: 이 카드는 안정성과 구조를 강조합니다. 삶의 여러 측면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계획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함을 시사합니다.

책임감: 황제는 가족이나 직장에서의 책임감을 상징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자기 통제: 개인적으로는 자기 통제와 규율을 요구하는 카드입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접근이 필요함을 나타냅니다.

전통과 규범: 사회적 규범이나 전통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기존의 질서를 따르는 것이 중요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황제 카드는 권위, 안정성, 책임을 강조하며, 이러한 특성을 통해 당신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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