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혼자 읽는 거라고 생각했다. 꼭 모여서 읽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독서 모임은 지식인들의 허영이라 믿었고, 대개 읽는 책이 자기 계발서나 삶의 지침서라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제 와서 자기 계발서를 읽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삶의 지침? 알 만큼 안다. 문제는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작가만 읽는 편식 독서가 답답해질 때가 있었다. 내가 모르는 작가들, 다른 사람들은 책을 어떻게 읽는지 궁금했다. 결국 독서 모임에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안산에서 가장 오래된 독서 모임, 노동·정치·여성 등 특정 주제만 다루는 모임, 그리고 자기 계발서를 읽는 모임까지 두루 경험했지만, 마음에 드는 곳은 없었다. 나는 소설만 읽는 모임을 원했다. 안산에서 겨우 한 곳 찾았지만, 독서보다는 사적인 대화가 주를 이루었다. 책은 그저 만남의 핑계일 뿐이었다.
“소설 읽는 독서 모임 찾았어?”
“없어. 너는?”
“난 찾았지. 지난달에 한 번 가 봤는데 꽤 괜찮더라. 이번 달에 같이 갈래?”
“어디?”
“수원에 있는 ‘책 먹는 돼지.”
수원 도서관에서 일하는 친구가 우연히 취재차 들렀던 작은 동네 서점. 소설만 읽는 곳, 사적인 이야기는 없고 오직 책 이야기로 두 시간을 채운다고 했다. 관심이 생겼지만, 거리 때문에 망설였다. 그래도 한 번쯤 가 볼 만하지 않을까. 그리고, 첫 방문 후 나는 한 달만 다녀보겠다던 다짐을 번복했다. 어느새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책 먹는 돼지는 작은 서점이다. 여덟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공간. 하지만 주인장은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분이었다. 멀리 청주에서 오는 사람도 있었고, 참석자의 절반은 수원 외 지역에서 왔다. 이 모임의 백미는 주인장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음식을 준비해 준다는 점이었다. 외국 소설을 읽으면 뜻밖의 브런치를 즐길 수도 있었다. 참석자들은 노트에 빼곡히 적어 온 감상을 나누었고, 토론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다음 달의 책도 책 속에서 거론된 작품이거나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책은 혼자 읽는 것이 맞다. 하지만 함께 읽을 때 보이지 않던 문장들이 보이고, 듣지 못했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여전히 혼자 읽는다. 하지만, 매달 한 번, 책 먹는 돼지에서 누군가와도 함께 읽는다. 그 시간 즐겁고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