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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얼굴들

2025 인천광역시 교육청 희나리오 입상작 발표

by 윤희웅


한 여름,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서려던 순간이었다. 윤서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엽서 한 장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노란 막대사탕이 정성스럽게 붙어 있고, 그 옆으로 서툴지만 진심 어린 손길로 그려진 책 한 권. '꽝수반점'이라는 제목 아래, 작은 글씨들이 빽빽하게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이 해주시는 희곡수업, 엄청 재미있었어요! 처음에는 힘들더니, 계속 들으니까 빠져드는 느낌이에요. 저의 버킷리스트에 '희곡 작가'가 생겼어요. 나중에 유명해지면 '희곡을 가르쳐주신 윤희웅 선생님 덕분이에요' 이렇게 말할지도 몰라요. 어쩌면 TV에 나와서 선생님이 저를 보실 수도 있어요! 그땐 '그 아이가 윤서였구나' 하고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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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마음 한구석이 따뜻하게 물들어갔다. 삐뚤빼뚤한 글씨 하나하나에는 '나, 지금 꿈을 꾸고 있어요'라는 작은 외침이 담겨 있었다. 그림 속 책은 세밀하게, 문장 속 마음은 투명하게.

그날 이후 나는 그 엽서를 책상 앞 벽에 붙여두었다. 긴 하루를 마치고 지쳐 돌아올 때마다, 그 글씨들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래, 바로 이거였어.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



그리고 며칠 전, '2025 인천광역시 교육청 희나리오 청소년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화면을 스크롤하다가 나는 멈춰 섰다. 그곳에 윤서의 이름이 있었다. 금상 권영찬, 동상 하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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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윤서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희나리오 청소년 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났어요. 제가 동상을 받았어요!! 피드백을 더 받았더라면 더 좋은 상도 받을 수 있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지금 너무 행복해요. 동상이라도 받을 수 있었던 건 선생님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다음번엔 피드백 한 줄이라도 꼭 받고 도전해볼게요!"


나는 그 짧은 메시지를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다. 설렘과 아쉬움, 그리고 새로운 다짐이 한 문장 속에 겹겹이 쌓여 있었다. 아마 그 글자 사이사이에는 밤늦도록 원고를 다듬던 순간들과, "선생님,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요?" 하며 망설이던 윤서의 표정이 함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천천히 답장을 보냈다.


"윤서야, 정말 잘했어. 하지만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야. 이제 대상, 신춘문예, 노벨상까지 가보자~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이미 절반은 이룬 거야."



농담처럼 가볍게 던진 말이지만, 그 안에는 진심이 온전히 담겨 있었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어른이 미처 닿지 못한 곳까지 뻗어나간다. 그 가능성을 놓치지 않고 붙잡아 주는 일. 그게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다.


윤서가 붙여준 노란 막대사탕은 여전히 내 책상 한쪽에 놓여 있다. 포장지는 조금 바랬지만, 그 안의 의미는 여전히 선명하다. 그건 단순한 사탕이 아니다. "선생님, 저 이제 제 꿈을 꿔요."라는 인사를, 윤서만의 방식으로 건넨 작은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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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친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의 꿈에 불씨 하나를 조용히 얹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불씨가 꺼지지 않기를, 언젠가 환하게 타오르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떠올린다.

언젠가 정말 TV 속에서, 혹은 서점 한편에서 윤서의 이름을 만나게 된다면, 나는 조용히 미소 지을 것이다.

"그래,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길을 걷든, 그 길 끝에는 자신이 꾼 꿈의 조각들이 반짝이길 바란다.

그리고 나도 여전히 그 곁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해줄 수 있기를.

"괜찮아. 네가 가는 길이 바로 답이야." �


영찬이도 금상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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