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염전이야기〉 관람기: 작가-연출의 실험, 그 성과와 한계
연극 〈염전이야기〉는 이미 여러 차례 무대에 올라 각기 다른 해석으로 관객들을 만나온 작품이다. 그런데 2025년 버전이 특별한 이유는 극작가가 직접 연출을 맡았다는 점이다. 작품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무대 위 해석까지 책임진다니,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 사라져가는 공간의 기억을 무대 위로
이야기의 중심에는 염전을 떠나지 못하는 아버지가 있다. 실질적 가장 역할을 하는 딸, 도시로 뻗어나가려는 아들, 세대 갈등을 지켜보는 어머니, 차분히 바라보는 손녀, 그리고 끝내 밀대를 놓지 못하는 동료 석호까지. 이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사라져가는 공간과 지켜야 할 가치의 의미를 묻는다.
김연민 연출은 "염전은 산업화 속에서 사라졌지만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자 기억의 장소였다"고 말한다. 무대 위에서 그는 잊힌 목소리들을 다시 불러내고자 했다. 그 의도는 충분히 전달되었고, 배우들의 진심 어린 연기는 관객의 마음을 흔들었다.
# 극작가-연출의 딜레마: 친절함의 부재
하지만 극작가가 직접 연출을 맡는다는 것은 양날의 검이었다. 대본의 숨은 결까지 알고 있기에 누구보다 세밀한 연출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나만큼 관객도 이해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질 위험도 따른다.
나는 간혹 연출자를 주방장에 비유해본다. 몇 년 전 스페인의 미슐랭 2스타 식당에서 식사할 때를 떠올려보면, 웨이터는 시음 와인으로 와인과 음식의 조화를 설명해주며 와인 선택을 도와준다. 요리가 나올 때마다 웨이터는 재료와 조리법, 심지어 어떻게 먹어야 가장 맛있을지까지 세세히 알려준다. 마지막에는 주방장이 직접 나와 전체적인 흐름과 겸손한 자세로 음식의 평가를 듣는다. 음식을 먹는 방법을 몰라서 웨이터나 주방장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노력으로 음식의 깊이가 더해지고 맛이 배가되는 것이다.
연극도 마찬가지다. 관객은 배우를 미리 검색하거나 희곡을 읽고 오는 경우가 드물다. 다만 연극을 볼 준비가 되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연출은 무대 위에서 때로는 친절하게 풀어내는 설명과 장치가 필요하다.
이번 〈염전이야기〉는 그 친절함이 아쉬웠다. 태지가 왜 언어 상실증에 걸렸는지, 선영이 왜 석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 정훈과 선영 사이의 갈등이 무엇인지, 아버지와 자식들 사이의 세대적 충돌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극은 여백을 남겼지만, 그 여백이 해석의 자유라기보다는 설명의 결핍으로 다가왔다.
특히 인물들의 관계와 갈등의 근원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감정의 절정 순간들이 충분한 몰입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작가는 모든 배경을 알고 있지만, 관객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간과한 듯했다.
# 가변 무대의 실험: 야심찬 시도, 아쉬운 결과
이번 공연의 또 다른 특징은 가변석 구조를 활용한 무대였다. 염전이라는 공간을 물리적으로 확장하며 관객이 둘러싸인 채 극에 참여하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실제로 밀대를 밀어 소금을 내는 장면에서는 넓은 무대가 강렬한 효과를 주었고, 공간 실험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몰입의 측면에서는 치명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객석 중앙에 앉았던 나에게는 공연보다 건너편 관객들의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왔다. 꾸벅꾸벅 졸다가 의자에서 넘어질 뻔한 관객을 보았을 때, 무대의 긴장감은 순식간에 흩어졌다.
무대는 배우와 관객이 만나는 신성한 공간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실험적 구조는 때로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었다. 형식의 새로움이 내용의 전달을 가로막는 아이러니였다.
# 비판적 성찰: 실험의 의미와 과제
〈염전이야기〉는 단순한 가족극이 아니다. 사라져가는 공간과 기억, 그것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잃어버리고 무엇을 간직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이번 공연은 작품의 무게와 배우들의 연기에서 충분한 울림을 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연출의 한계도 명확했다. 주방장이 음식을 내놓고도 먹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그 맛은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관객은 결코 모든 것을 알고 극장에 들어오지 않는다. 연출은 때로는 웨이터처럼, 때로는 주방장처럼 관객의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작가가 연출을 맡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해석은 분명한 강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해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번역되지 않는다면, 작품의 진정한 완성은 어려워진다.
# 마무리: 아쉬움 속에서 찾는 가능성
2025년의 〈염전이야기〉는 실험적 무대와 작가-연출자의 야심찬 시도가 돋보였으나, 관객과의 소통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설명과 안내가 조금 더 섬세했다면, 그리고 무대 구조가 내용을 더욱 효과적으로 뒷받침했다면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라진 염전을 무대 위로 소환해낸 열정과, 배우들의 담백하면서도 진심 어린 연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완벽하지 않은 실험이지만, 그 시도 자체가 한국 연극계에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결국 좋은 연극은 작가의 의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관객과의 만남, 그 순간의 소통이 작품을 진정으로 살아있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