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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얼굴들

마지막 수업, 그리고 약속.

by 윤희웅

8강의 마지막 날, 교실 문을 여는 순간 공기가 달랐다. 처음 만났을 때 시선조차 마주치기 어려워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내 얼굴을 보며 먼저 환하게 웃어준다. 가슴 한편이 따스하게 벅차오른다.

책상 위에 정성스럽게 놓인 작품들을 보며 깜짝 놀랐다. 하루 이틀 만에 끄적인 글이 아니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다가 속으로 감탄했다. '정말 아이들이 쓴 거 맞나?' 그만큼 완성도가 높았고, 진심이 담겨 있었다.

"이건 스페인에서 가져온 돈키호테 책갈피야." 소중히 간직해 온 책갈피를 아이들 앞에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꿈을 포기하지 말자는 약속이야. 마지막 순간까지 꿈을 품고 도전하는 삶이 진정한 성공이거든."

그 말을 듣는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진부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서로의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나자 한 아이가 내 책을 들고 다가왔다.

"사인해 주세요." 볼이 붉어진 그 아이가 수줍게 말했다.

"선생님이 제 이상형이에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취향이 독특하네."

둘 다 웃었다. 생전 처음 받는 고백이라 어색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하얀 편지지에 또박또박, 하지만 줄은 삐뚤빼뚤하게 쓰인 편지. "다음에 꼭 또 만나고 싶어요." 그 '꼭'이라는 글자에서 아이의 반짝이던 눈빛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책상 모서리에는 초록색 사탕 하나. 작은 선물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의 무게는 생각보다 묵직했다. 포장을 벗길 때 나는 부스럭 소리가 아이들의 웃음처럼 귀에 맴돌았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전화번호를 건넸다. "언제든 작품을 쓰면 보내줘. 함께 읽어보고 이야기하자." 이 아이들 중 누군가는 정말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세상 어디선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첫 문학 선생님은 윤희웅이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속도로 공부하고, 아이들만의 방식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 품었던 '요즘 아이들, 정말 모르겠다'는 마음이 얼마나 성급하고 오만했던가. 어른의 잣대로 재단하려 했던 순간들이 부끄러워졌다.


혀를 차며 "요즘 애들은..."이라고 말하는 어른들에게 전하고 싶다. 아이들은 변한 게 아니라 우리 때와 다를 뿐이다. 지금도 아이들은 어른이 잃어버린 순수함으로 꿈을 키우고, 어른이 포기한 용기로 도전하며, 어른이 잊은 진심으로 사랑한다.


두려움이 환희가 되었고, 편견이 이해가 되었으며, 단순한 수업이 평생 간직할 소중한 깨달음이 되었다. 가르치러 온 내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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