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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얼굴들

손목의 자국은 남아있었다.

by 윤희웅

소설을 함께 쓰던 친구가 어느 날 작두를 탔다.

"선배님, 나 무당 됐어요."

카톡으로 날아온 영상 속 후배는 날카로운 작두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펑퍼짐한 츄리닝만 입고 다니던, 그 후배가 무당이 되었다.

"진짜 안 믿기죠? 저도 그래요."

후배는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웃음 뒤에 얼마나 많은 밤을 울었을지.

후배는 긴 이야기 끝에 갑자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선배님도 보이죠?"

"뭐가?"

"귀신."

나는 웃어버렸다. "무슨 소리야."

"귀신이 사람처럼 생긴 건 아니에요. 그냥... 느껴지는 거예요."

느낌.

그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


몇 년 전, 친구들과 등산을 갔다가 동굴을 발견했다. 안에는 꺼진 촛불과 제단 같은 넓적한 돌이 있었다.

"여기서 밥 먹고 가자!"

친구들이 돗자리를 깔았다. 나는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언가 나를 밀어내는 것 같았다.

"너 왜 그래? 겁나니?"

결국 나만 밖에서 홀로 김밥을 먹었다. 점심 먹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주고, 사진을 확인했다. 심장이 철렁했다. 제단 위에 누군가 누워 있었다. 분명 아무도 없는데. 친구들은 사진을 보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우리는 그대로 혼비백산 산을 내려왔다. 학교 앞을 지날 때면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으로도. 반대로 병원에 들어서면 한여름에도 소름이 돋는다. 몸이 먼저 알아챈다. 설명할 순 없지만.

***


"선배, 꿈 많이 꾸죠?"

후배가 물었다.

"거의 매일, 꿈돌이지 뭐."

"죽은 사람도 나오고요?"

돌아가신 부모님, 형제. 가끔은 세상을 떠난 친구까지.

"선배님한테는... 귀신 보는 기운이 있어요. 조심하세요. 따라가면 안 돼요."

"야, 겁주지 마. 나 혼자 산다고."

웃어넘겼지만, 등골이 서늘했다.


***


이사 온 첫날밤이었다. 새벽에 일어나니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분명 한 시까지 텔레비전을 보다 방으로 들어가 잤는데. 누가 문을 열어 났을까? 화장실 수건걸이에는 내가 절대 걸지 않는 수건이 걸려 있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은 베란다 불이 켜져 있었다. 잠결에 느껴지는 기운도 잦아졌다. 조심스럽게 눈을 뜨면 방 구석에 누군가 있었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이불 속에서 떨었다. 기억도 가물한 주기도문을 중얼거렸다.


어젯밤이었다. 또 그 느낌이 왔다. 눈을 뜨니 침대 끝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서 있었다. 꼭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저승사자 같았다. 나는 황급히 눈을 감고 주기도문을 외웠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저승사자는 침대에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으아악!"


소리를 질렀는데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 손목을 잡아당겼다. 나는 손을 빼며 발버둥을 쳤다. 그래도 저승사자는 끝까지 내 손목을 놓치 않았다. 힘이 딸린 나는 저승사자의 손목을 물었다. 놓을 때까지, 제발 놓을 때까지. 저승사자가 나의 손목을 놓고 휙 돌아섰다. 나는 그제야 깨어났다. 꿈이었다.


물을 마시고 TV를 켰다. 세상은 아무 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다시 잠들 용기가 나지 않아 소파에서 아침을 기다렸다. 눈을 뜨니 아홉 시. 열 시 강의가 있었다. 망했다. 자전거를 끌고 나와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았다. 신호는 이상하게도 다 초록불이었다. 마지막 사거리. 달려가는 중에 막 초록불로 바뀌었다. 자전거 도로에서 차도로 내려오는 순간, 우회전하던 택시가 눈앞에 있었다.


"쾅."


나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택시 기사가 화난 얼굴로 다가왔다. 나는 아직 남아 있는 보행자 신호를 가리켰다.

"...죄송합니다." 그는 진심으로 사과했고, 우리는 헤어졌다.


강의실에 앉아 숨을 고르다 문득 손목을 내려다봤다. 거기, 선명한 멍 자국이 있었다. 분명 꿈이었는데. 손이 떨렸다. 천천히 소매를 걷어 올렸다. 손목뿐만이 아니었다. 팔뚝에도, 어깨까지 이어지는 멍이 시퍼렇게 번져 있었다. 방금 넘어져서 다친 흔적인지 아니면 어제 끌려간 흔적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후배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따라가면 안 돼요.'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아침 햇살이 눈부셨다. 학생들이 웃으며 걸어가고, 세상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손목의 멍 자국을 엄지로 꾹 눌렀다. 아팠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죽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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