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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웅 Oct 24. 2023

류유

 바리스타 수업 중, 제일 어려운 과정은 라테아트였다. 커피에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고도의 섬세함을 요구했다. 나는 류의 도움이 없었다면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류는 나의 손을 잡아주며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방법, 우유 거품을 쉽게 만드는 법 등을 알려줬다. 시험을 통과한 후 나는 류에게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며칠 전 친구에게 받은 스타벅스 텀블러를 수업 전에 류의 책상에 올려놓았다. 덕분에 시험에 통과했다는 감사함과 사람들이 보기 전에 차에 갖다 놓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문자를 보냈다. 수업 전에 화장실을 다녀온 나는 뜻밖의 상황에 직면했다. 스타벅스 텀블러를 사이에 두고 류와 나영이가 대립하고 있었다. 

“중국 아줌마가 선생님의 스타벅스 텀블러를 훔치려고 했어요.”

“무슨 소리야. 스타벅스 텀블러는 내가 선물한 거야.”

“왜요?”

“라테아트 수업 시간에 도움을 많이 받아서….”

“정말이에요? 괜히 편들어 주는 거 아니죠?”

“나영아, 물론 오해할 수는 있어. 그렇다면 나에게 조용히 이야기해야지. 그리고 중국 아줌마가 뭐니? 거기에 중국이 왜 들어가?”

“미안해요.”     


 나영이는 입으로는 ‘미안해요’ 를 하면서, 동시에 류를 바라보며 눈을 흘겼다. 나는 류에게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 류는 괜찮다며 교실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씁쓸한 뒷모습을 보며 나는 조용히 뒤를 따라나섰다. 

“중국에서 20년을 살았어요. 한국에서는 아이 둘을 낳고, 30년을 살았어요. 그런데도 나는 언제나 중국사람이에요. 중국사람이 싫다는 것은 아니에요. 중국 사람이라는 단어에는 경멸과 분노와 혐오가 숨어 있어요. 나영이가 제 딸보다 어려서 딸처럼 챙겨줬는데 나는 끝내 중국 아줌마예요. 사실 저는 중국어보다 한국어가 더 편해요. 중국에 가면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 오히려 한국말로 할 때도 있어요. 사람들은 저를 처음 볼 때 중국사람인지 몰라요. 그러다 제가 중국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때부터 말투가 달라져요. 일단 나이를 떠나서 반말부터 시작하죠. 가난한 나라에서 돈에 팔려 온 여자로 봐요. 오늘처럼 말하기도 부끄러운 일들이 많이 있었죠. 중국사람, 한국사람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어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곳이 고향이죠. 나는 안산 사람이에요.”

“저도 이름 보고 알았어요.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꿔보죠?”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나는 내 이름이 좋아요.”

“이름이 예쁘기는 해요. 중국 영화에 나오는 가냘픈 여자 주인공 같아요. 미안해요. 한국 사람들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나쁜 마음이 있어요. 아마 강자에게 많이 당해서 그런 것 같아요. 이해하세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강자에게 약해요.”

“그럼 저는 강자예요? 약자예요?”

“아직 몰랐어요? 선생님은 약자예요. 제가 강자고요. 까불지 말아요.”

 나는 류에게 허리를 숙이며 강자에게 예의를 갖췄다. 류는 엄지를 들어 보이며 웃었다. 사뭇 밝아진 류는 수업에 늦었다며 빠르게 교실로 돌아갔다.


 웃음에는 가짓수가 엄청나게 많다. 소리 없이 빙긋이 웃는 미소부터 호쾌한 너털웃음, 웃어서는 안 되는 때에 참다못해 나오는 실소, 가벼운 손해나 피해를 보았을 때 짓는 쓴웃음, 경멸의 뜻을 담은 냉소, 냉소보다 더 경멸적인 조소 등…. 지금, 류가 짓고 있는 웃음을 누가 감히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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