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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웅 Dec 12. 2023

밥 짓는 냄새

 술을 마신 지 하루가 지났음에도 숙취는 아직도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간이 안 좋은 나는 언제나 숙취로 고생했다. 숙취 때문에 술자리도, 술의 양도 숙취가 오지 않을 만큼만 조절해서 마셨다. 그런데 어제는 조금 달랐다. 술을 나 이외에 아무도 마시지 않았다. 술을 안 마시는 사람들과의 술자리는 술을 잘 마시는 사람들과의 술자리보다 더 곤욕이었다. 그들은 맑은 정신으로 점점 취해가는 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보란 듯이 나의 주량을 초과해서 술을 마셨다. 나는 두서없는 말을 하고 싶었다. 우리는 자라면서 단 한 번도 서로 묻지 않았다. 왜 힘이든지, 나만 힘들었는지, 궁금하였지만 절대 묻지 않았다. 어쩌면 예상된 답변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것은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원천 봉쇄하려는 의도가 숨어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 지켜볼 뿐, 말이 없었다. 그게 우리가 대화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술을 마셨다. 그들의 당황한 얼굴이 슬쩍 보였다. 당황한 그들의 얼굴에서 나의 당황함은 더욱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술을 더 많이 마셨다. 하면 안 되는 말, 나의 바닥을 남김없이 보여주는 천박한 말들을 아낌없이 꺼내서 보여줬다.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오르텅스 블루[사막])     


 얼마나 뒷걸음쳐야 할까? 다음 생이 있다면 사람이 아닌 돌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어떤 크기의 돌이라도 상관없다. 사람만 아니면 된다. 어머니 무덤 앞에서 나는 말했다. 내가 죽으면 화장한 뼈를 화장실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렸으면 좋겠다. 아버지인 나에게 조금 더 성의를 보인다면 바다에 뿌려 줬으면 좋겠다. 많은 시간을 뒷걸음치며 나의 앞에 찍힌 발자국을 바라보며 괴로워했다. 이제는 내가 걸어온 발자국을 지우며 뒷걸음치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산소에서 내려오며 사과했다. ‘취중 진담이라고 하잖아.’ 나의 사과는 예상대로 묻히고 말았다. 차 안에는 이제는 쓸모없는 사원증이 있었다. 사원증 사진 속 얼굴은 30대의 모습이었다. 나는 아들에게 사원증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사람은 누굴까? 이 사람 기억나니?” 

아들은 나와 사원증을 번갈아 보며 대답했다. 

“아니 기억나지 않아.”     


 숙취로 뒤척이며 새벽에 일어났다. 차라리 종교가 있다면 좋겠다. 무엇이든지 다 용서해 줄 테니까. 밥 짓는 냄새가 그리웠다. 아랫목에 아버지 밥공기를 넣고 싶었다. 시골 냄새 물씬 풍기는 된장찌개와 노릇하게 구운 두부구이를 먹고 싶었다. 나는 새벽에 밥을 지었다. 전기밥솥 앞에 앉아 추가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밥 짓는 열기를 얼굴로 받았다. 그리고 연신 코를 훌쩍이며 밥 짓는 냄새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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