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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웅 Dec 17. 2023

객기를 부리다.

 객기의 사전적 용어는 행동이나 생각이 차분하지 못하여 쓸데없이 부리는 기운이나 용기라는 뜻이다. 그럼 나는 언제 객기를 부려봤을까? 내가 기억하는 첫 객기는 중학교 일 학년 때였다. 키 순서로 번호를 매기는 학교에서 나는 5번, 짝꿍은 6번이었다. 이 말은 둘의 키가 고만고만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우리 둘은 심하게 다퉜다. 물론 이유는 생각나지 않는다. 오직 생각나는 것은 내가 6번에게 수업 마치고 한 판 붙자는 말을 호기롭게 했다는 것만 기억에 남아있다. 아마 나는 고만고만했던 6번을 보며 그래도 태권도 빨간 띠까지 매어 본 자신감이 차올랐을지도 모른다. 그 자신감의 발로가 결투 신청까지 이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수업을 마친 후 우리는 학교 뒷산 누구의 묘인지 모를 봉분 앞 상석에 교복 상의와 가방을 올렸다. 서부영화의 총잡이처럼 우리는 마주 보며 섰다. 나는 호기롭게 먼저 쳐보라며 객기를 부렸다.  

    

 6번의 주먹이 얼굴로 날아왔다. 내 기억은 딱 거기까지였다. 한 대도 아니 주먹도 뻗어 보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맞았다. 나는 싸움 못 하는 아이였다. 그동안 동생하고 김일 흉내를 내며 이불 위에서 레슬링이나 해봤지 진짜 싸움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나는 잊고 있었다. 나를 물씬 팬 친구는 미안하다며 라면을 사줬다. 내가 기억하는 첫 객기였다. 보통 남자들의 객기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나온다. 자존심 문제나 허세인 경우가 많다. 대체로 남자의 사망원인 1위가 객기라는 말도 있다. 나 역시 지금까지 살면서 수많은 객기를 부린 것 같았다. 주로 친구나 가족, 동료 등 친한 사람들 앞에서 객기였으니 지금까지 내가 살았있지 않았을까 스스로 자문해 본다.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객기를 부리지는 않았다. 태권도 빨간 띠 같은 나름 미약하지만, 객기의 근거는 있었다.      


 나는 오늘 내 인생에 마지막이 되었으면, 아니 마지막이 되어야 할 객기를 부렸다. 송년회를 마치고 택시를 잡으려 했다.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이 족히 열 아니, 스무 명은 되어 보였다. 줄 뒤에 서 있던 나는 이내 발길을 돌렸다. 내일 출근하는 것도 아닌데 슬슬 걸어가자. 아무리 늦어도 집까지 한 시간이면 도착할 듯했다. 이왕 걷는 것 안산천 변 산책로를 따라 여유롭게 걷자는 생각까지 미쳤다. 안산천 변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도로와 경계를 나누는 허리 높이의 경계석이 있었다. 경계석을 따라 백 미터쯤 내려가면 안산천 변 산책로를 만나게 되는 구조였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무심코 바라본 백 미터는 꽤 멀어 보였다. 경계석을 폴짝 뛰어넘으면 바로 산책로인데 나는 고민을 했다. 찰나의 고민 끝에 허리 높이의 경계석 위로 나는 비틀 거리며 올랐다. 일 미터도 안 되는 높이였으니 올라서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문제는 경계석 밑이 나무와 바위로 덮여있는 낭떠러지였다. 추락에 위험이 있기에 만든 경계석을 나는 도로 쪽에서 바라보니 경계석 뒤의 상황을 몰랐다. 괜히 경계석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다 이유가 있었다. 경계석 위에서 다시 내려가야 하나, 뛰어야 하나 또다시 고민했다. 이놈의 인생은 무슨 고민과 선택이 이리 많은지 피곤할 뿐이다. 주위를 살피니 경계석 밑이 다 낭떠러지는 아니었다. 옆에 평평한 곳으로 뛰면 나무를 헤치고 내려가는 길이 보였다. 역시 모든 고민과 선택에는 길이 있는 법이다. 나는 평평한 곳으로 몸을 날렸다. 

     

 새벽 한 시에 안산천 변을 산책하는 사람은 다행히 없었다. 그것이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안산천 변 산책로에 피범벅이 되어 나는 누워 있었다. 아마 낭떠러지에서 구르며 내려오다 손가락이 나무나 돌에 찐 모양이었다. 왼손 4번째 손가락 껍질이 엄지손톱만큼 벗겨져 있었다. 아프다는 생각보다 창피한 생각이 더 컸다. 주섬주섬 일어나 지혈할 무엇인가를 찾아봤다. 내가 만약 영국 신사였다면 손수건이라도 있었을 텐데, 주머니에는 휴지 한 장 없었다. 피는 계속 샘솟고 있었다. 나는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힌 생각을 그 짧은 순간에 했다. 양말을 벗어 손가락을 감았다. 비록 손가락에서 발 냄새가 날지언정 지혈은 훌륭하게 했다. 양말을 손가락에 감고 비틀거리며 한 시간을 걸어 집에 갔다. 흉측한 내 모습을 본 아들은 혀를 차며 병원으로 나를 후송했다. 겁이 많은 나는 벌벌 떨며 의사와 간호사, 아들의 핀잔까지 들으며 손가락을 다섯 바늘을 꿰맸다. 실밥을 풀 2주 동안 술도, 담배도, 샤워도 하지 못한다. 병원비로 택시를 탔다면 열 번도 아니 스무 번도 탈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의 간절한 심정은 오늘이 내 인생에 마지막 객기이길 바랄 뿐이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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