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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웅 Dec 26. 2023

크리스마스와 즉석 떡볶이

 볼이 깊지 않은 넓적한 냄비에 물을 찰방거리게 붓고, 고추장 크게 두 스푼, 그리고 나만의 비법 소스인 굴소스를 한 스푼 넣는다. 마늘을 좋아하는 나는 다진 마늘을 ‘ 이렇게나 많이’ 할 정도로 냄비에 넣었다. 양파를 송송 썰어 넣고, 양배추를 큼지막하게 썰어 넣었다. 양배추는 즉석 떡볶이의 얼굴마담이다. 양배추가 빠진 즉석 떡볶이는 떡볶이가 아니다. 양배추의 단맛은 양파와 비길 수 없다. 다만 양배추에서 물이 많이 나오기에 물 조절은 필수다. 물에 담가둔 밀가루떡을 조심스럽게 냄비에 담는다. 떡볶이에 어울리는 어묵, 당면이 가득 든 야끼만두, 쫄면과 라면 사리까지 넣으면 된다. 떡볶이를 끓이는 동안 옆 냄비에서 달걀을 삶는다. 그러면 준비는 다 된 것이다. 보통 아이들은 엄마 요리와 아빠 요리 중에 선택을 강요받는 순간이 종종 있다. 아이들의 선택은 십중팔구 아빠였다. 아빠의 요리는 MSG 천국인 라면수프와 아끼지 않는 재료와 매일 먹을 수 없다는 시기적 희귀성까지 존재했기 때문이다. 냄비에 떡볶이가 기 시작하면 집중해야 한다. 떡볶이는 졸임 정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박자박 소리가 날 정도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썰어놓은 파와 삶은 달걀을 넣고, 참기름을 한 바퀴 정도 둘러주면 내가 어릴 때 먹었던 즉석 떡볶이 맛이 났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누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우리는 서울 동쪽에서, 서울 서쪽까지 두 시간이 넘는 통학을 같이했다. 누나가 나에게 즉석 떡볶이의 맛을 알려준 때 역시, 그때였다. 나는 누나의 하교를 떡볶이 가게에서 기다렸다. 누나는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 떡볶이 가게로 왔다. 검정 교복에 하얀색 카라가 눈부셨다. 아마 18살이라는 나이가 더 눈부시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 본다. 누나와 친구들은 즉석 떡볶이를 먹었다. 수다를 떠는 누나들 눈치 보며, 나는 말없이 허겁지겁 즉석 떡볶이를 먹었다. 그 맛은 천상의 맛이었다. 그때 먹었던 즉석 떡볶이의 맛이 지금까지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두 시간 동안 누나는 나에게 도란도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내일도 떡볶이를 얻어먹으려면 나는 관심 있는 척, 재미있는 척, 귀를 쫑긋 세우며, 졸린 눈을 비벼가며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요즘은 즉석 떡볶이를 파는 가게가 많지만, 한동안 즉석 떡볶이를 찾기 힘든 시기도 있었다. 그때 나는 직접 즉석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즉석 떡볶이로 최고의 아빠가 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이브 때면 아이들은 나에게 즉석 떡볶이를 요구했다. 작은 케이크와 즉석 떡볶이를 준비한 앉은뱅이 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넘어가는 침을 참으며 작은 선물들을 교환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의 밤은  간간이 들리는 새벽 송 소리와 함께 저물어 갔다.      


 오늘은 눈이 펑펑 내린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임시완, 이선빈이 나오는 소년 시대를 정주행 한 탓이었을까? 나는 중학교 1학년으로 돌아가 누나와 함께 먹었던 즉석 떡볶이가 그리웠다. 집 앞 슈퍼로 달려가 즉석 떡볶이의 재료를 한 아름 안고 집에 들어왔다. 나는 소주 한 잔을 마시며, 즉석 떡볶이가 적당히 졸아들기를 기다렸다. 즉석 떡볶이가 정당히 졸았을 때, 나는 젓가락을 들었다 다시 내려놨다. 잊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12월 25일은 돌아가신 누나의 생일이었다. 머리는 기억 못 했는데,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즉석 떡볶이에 한 방울의 눈물을 떨구며, 소주를 마셨다.      


 누나, 잘 지내고 있지. 나도 잘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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