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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웅 Jan 03. 2024

사주를 아세요?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중 개성이 남다른 사람도 있다. 지금 이야기하려는 친구가 그렇다. 나뿐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 친구의 개성은 독특했다. 아니 괴상했다. 그의 몰골은 꽁지 빠진 수탉처럼 볼품이 없었다. 긴 머리를 상투로 말아 나무젓가락을 꼽았으며, 겨울에도 맨발에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복장이 그렇다 보니 변변한 직장도 없었다.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지기 일쑤였고, 간혹 면접을 통과해서 일을 하더라도 보통 일주일을 다니지 못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웅덩이를 흐린다는 말처럼 그는 열심히 일하는 현장에 맞지 않았다. 쉬는 시간마다 동료들의 사주를 봐주며 조언했다. 회사는 졸지에 점집이 되곤 했다. 그를 못 본 지 오래됐지만 그는 새해 첫날이면 어김없이 나에게 토정비결을 보내왔다. 나는 올해도 그가 보내준 토정비결을 읽었다.    

  

산에 들어가니 산수의 낙이 있고벼슬길에 나가니 권리가 장하다세상일에 거침이 없고공명을 이루고 복록이 진지하다.     


 “박 도사, 자네가 보내준 토정비결을 잘 읽었네. 물론 새해 첫날부터 근심 걱정 가득한 토정비결을 보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2024년 토정비결은 말이 안 돼. 작년에 내가 퇴직했잖아. 하루하루가 우울의 연속인데 세상일에 거침이 없고, 공명을 이루고, 복록이 진지하고, 벼슬길에 나간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너의 사주가 그렇다는 거지. 나는 모르는 일이야. 자네가 믿지 않지만 사주는 과학이야. 천년이 넘는 학문이라고.”

“사주는 과학이 아니라, 한 달이야. 그리고 나는 과학 시간에 사주를 배운 적이 결단코 한 번도 없었어. 어디서 개수작이야.”

“자네 아들 30살에 경찰 된다고 내가 말한 거 기억 안 나?”     


 사실 그랬다. 26살 아들이 배우가 되겠다고 연극무대를 전전할 때, 나는 박 도사에게 아들의 사주를 봐 달라고 했다. 그때 박 도사는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아들의 사주에는 배우가 없고, 30살에 경찰이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했었다.     


“그리고 너의 딸도 30살에 병원에 입원한다고 내가 했잖아. 병원에 입원하지만 괜찮아질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던 말 기억나?”     


 그 말 역시 사실이었다. 아들 사주 물어보며, 딸의 사주까지 같이 물어봤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반신반의도 아닌 일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의 말대로 흘러갔다.    

  

“사주가 그렇게 정확하면 쌍둥이들 사주는 어떻게 해석할래? 같은 부모 밑에서, 같은 환경에서, 일란성 쌍둥이면 관상도 비슷한데, 쌍둥이들은 다 똑같이 살고, 똑같이 죽겠네.”

“쌍둥이들은 같은 사주를 타고났지만 살면서 선택하는 길이 다르고, 그의 걸맞은 노력도 다르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주는 일 분, 일 초의 차이로 변할 수 있고, 개인의 노력 여부에 따라 사주가 결정된다고 말할 수 있지.”

“개인의 노력 여부에 따라 사주가 결정된다는 말은 나도 하겠다.”

“나는 무당도 아니고, 점쟁이도 아니야. 역학 명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지. 역학이라는 학문은 단지 사람들의 재미나 호기심이 아닌, 음양의 조화로움과 건곤의 균형이지.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주를 풀이한다고 말하지.” 

“말은 잘해요. 그럼 마지막으로 내가 작년 5월에 목돈이 들어온다고 했던 말은 뭐야? 나는 내심 반토막 난 주식이 다시 오르려나? 아니면 로또라도 되나? 하면서 잘 사지도 않는 로또를 매주 샀어. 어떻게 된 거야?”

“작년 5월에 퇴직금 들어왔잖아. 그게 목돈이지 뭐가 목돈이야.”     


 퇴직계획이 없던 나에게 퇴직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급작스럽게 다가왔으며, 5월에 목돈의 퇴직금을 받았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전화를 끊었다. 생각해 보니 우울했던 나에게 2024년 토정비결은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2024년에 벼슬길에 오르면 장, 차관이 되려나? 그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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