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얼굴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희웅 Jan 05. 2024

어린 여자만 좋아해요.

 10살, 5살, 그리고 1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후배네 가족이다. 셋째가 아들이었으면… 하는 후배의 아쉬움이 살짝 묻어났지만 딸 셋은 너무나 행복했다. 퇴근하면 현관문 앞에 아이 셋과 부인이 서서 후배를 반겼다. 당연히 후배는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는 막내부터 번쩍 안아, 입을 맞췄다. 뒤이어 둘째 딸, 첫째 딸, 마지막으로 부인까지 입을 맞추는 모습을 바라보니 괜히 부아가 치밀었다.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동안 아이들은 아빠 곁에 앉으려고 서로 밀쳐가며, 싸우는 모습에서 나는 수저를 내려놓고, 엉엉 울었다. 부러웠다. 너무 부러웠다. 5살, 둘째 아이는 가르친 적도 없는 한글을 스스로 깨쳤다고 했다. 말도 일찍 시작했고, 생각도 많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유심히 지켜본 둘째 아이는 단어 선택도 남 달라 보였다. 언니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도, 어린 동생을 잘 챙기면서도 질투하는 모습까지 너무 귀여웠다.


“둘째가 나중에 물건 되겠다. 아주 똘똘하네.”

“이번 크리스마스에 제가 아이들에게 산타할아버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편지로 쓰라고 했어요. 그때 둘째가 ‘산타 할아버지 저는 선물 필요 없어요. 대신 소원 하나만 들어주세요. 하루만 엄마와 저를 바꿔 주세요. 이렇게 썼어요. 그래서 제가 물었죠. 엄마가 되고 싶어, 왜? 엄마는 내가 언니랑 싸우면, 언니 편들고, 동생이랑 싸우면 동생 편들고, 내 편을 든 적이 없어. 내가 엄마가 되면 엄마는 내가 되잖아. 그럼 내가 얼마나 속상한지 엄마도 알 수 있잖아.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그런 생각을 다섯 살이 하기 힘들지 않나?”

“겨울 들어오면서 날씨가 쌀쌀해졌잖아요. 제가 아이들에게 밖에 쌀쌀하니까 옷 잘 입고 나가라고 했죠. 그러니까 둘째가 묻는 거예요. 아빠, 쌀쌀이 무슨 뜻이야? 옛날에 겨울이 시작되면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게 없어 하늘만 쳐다봤거든.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보니 너무 가슴이 아픈 거야. 그래서 쌀을 쌀쌀 뿌려줬지. 그래서 이런 추위를 쌀쌀하다고 말하는 거야. 둘째 아이는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아빠가 이야기하니 그냥 응 하고 돌아섰죠. 그러다 다음 날 유치원 다녀온 둘째가 뛰어 들어와서 아빠 정말 하늘에서 쌀 떨어졌어. 아파트 현관 앞에 쌀이 잔뜩 떨어져 있어. 나는 아빠가 쌀이 떨어져서 쌀쌀하다는 말,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아빠, 미안해. 엄마, 우리 집에 쌀 있어? 쌀 없으면 주우러 가자. 그러더군요.”     


 둘째 아이 덕분에 집안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는 후배는 언니가 질투하며 방으로 들어갈 때까지 둘째 아이 이야기만 했다. 후배는 둘째의 재기 발랄한 모습이 귀엽지만 그래도 이제 걷기 시작한 막내가 제일 예쁘다고 말하며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며칠 후 후배는 난처한 표정이 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이사 가야 할 것 같아요.”

“왜? 무슨 일이야.”

“오늘 출근할 때였어요. 막내가 요즘 말문이 터져서 아빠, 아빠 하니까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거예요. 제가 현관문 앞에서 막내를 안고 좋아하니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둘째 아이가 끝내 울음을 터트렸어요. 울고 있는 아이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를 탔죠. 엘리베이터에서도 계속 울고 있으니까 같이 탄 동네 아주머니들이 둘째 아이에게 물었죠. ‘왜 그렇게 우니? 무슨 일이야?’ 그러니까 둘째 아이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질투가 나서 울었어요.”

“아니요. 둘째 아이가 아주머니들에게 ‘우리 아빠는 엄마도 안 좋아하고, 언니도 안 좋아하고, 저도 안 좋아하고, 어린 여자만 좋아해요.’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아주머니들이 일제히 나를 째려보는데 제가 미치는 줄 알았어요. 변명하려고 하니까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사람들이 내렸죠. 둘째 아이 손을 잡고 걷는데, 동네 아주머니들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저희 집사람이 불쌍하다 등, 별의별 이야기가 들리는데 낯부끄러워서 고개만 푹 숙이고 출근했어요.”

“내가 그랬지. 둘째는 남달라. 역시 남달라. 큰 인물 되겠어.”     

매거진의 이전글 사주를 아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