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얼굴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희웅 Jan 15. 2024

벽간소음이 기다려진다.

 며칠 전, 층간소음으로 살인까지 한 뉴스가 있었다. 우리 집은 층간소음보다 벽간소음이 문제였다. 벽간소음이란 공동주택에서 벽을 맞대고 있는 가구 간의 소음 문제를 말한다. 우리 집, 구조는 한 라인에 두 가구씩 맞대고 있는 계단식 아파트였다. 문제는 거실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 집 거실 창문과 옆집 거실 창문은 2미터쯤 떨어져 있을까? 거실에서 하는 이야기가 벽을 넘어, 또는 창을 통해 들어왔다. 창문을 열어놓고 사는 여름에는 더욱 선명하게 목소리가 들렸다. 낮에는 진성의 안동역, 보릿고개, 태클을 걸지 마가 들려오고, 늦은 밤에는 드라마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한 날들이 많았다. 물론 내가 보고, 듣는 드라마나 음악 소리가 넘어가는 날도 있을 것이다. 내가 불편하니 그들도 불편하리라 생각하고, 나는 되도록 이어폰을 사용했다. 그래서 그런지 옆집은 우리 집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소리가 넘어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지, 거침없는 많은 소리가 넘어왔다. 그중에 압권은 부부싸움이었다. 넘어오는 부부싸움 소리를 종합해 본 결과, 부부싸움의 원인은 외도였다. 부인의 의부증 또는 남편의 바람기가 문제였을 것이다. 남편의 직업이 건설장비 운전이다 보니 외박이 잦았다. 그 외박이 항상 문제였다. 보통 남편이 외박한 다음날 저녁이면, 어김없이 창 너머로 싸움 소리가 넘어왔다.      


 나는 오늘도 거실에 앉아 사랑과 전쟁을 실시간으로 듣고 있었다. 순간 ‘짝’ 소리와 함께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들려오는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와 여자의 비명 소리가 교차했다. 그동안 말싸움만 있었는데, 몸싸움은 처음이었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옆집으로 가서 싸움을 말려야 하나?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아들이 방에서 나왔다.     

“지금 남자가 여자를 때린 것 같아.”

“그래서 어쩌려고?”

“너, 경찰이잖아. 어떻게 해봐?”

“나도 듣고 있어. 심해지면 내가 신고할 게. 아빠는 가만히 있어.”

“신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싸움을 말려야지. 그러다 큰일 나면 어떡해?”

“부부싸움 말리던 옆집 사람이 칼에 찔려 죽었어. 뉴스에 나왔잖아.”     

 그때였다. 이번에는 ‘짝’ 소리가 아니라 둔탁한 소리였다. 그리고 살려달라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윗집, 아랫집 아주머니가 안절부절못하며 계단에 서 있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문을 두들겼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때 아들이 경찰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그리고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경찰입니다. 문 여세요.”

경찰이라는 소리에 굳게 닫혔던 문이 열렸다. 아들은 집 안으로 들어가 흥분한 남자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갔다. 아주머니들은 부인이 있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는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몇 달 후, 현관문을 조용히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고 나갔다.

“옆집에 오늘 이사 왔습니다. 아이가 있어서 시끄럽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백일 떡과 함께 음료수를 건네는 아이 아빠에게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인사를 했다. 오늘부터 벽간소음으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겠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벽간소음이라면 얼마든지 환영한다. 옆집에서 들려올 벽간소음이 기다려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춘천 가는 버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