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얼굴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희웅 Jan 23. 2024

오늘도 창문이 닫혔다.

 다가구에 살아본 경험이 있습니까?


 평범한 시골 동네에 반월공단이 들어서면서 안산이라는 도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안산을 계획도시라 부릅니다.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중심으로 아파트가 밀집된 동네, 빌라가 밀집된 동네, 다가구 건물이 밀집된 동네 등 특색이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안산은 다른 도시에 비해 유독 다가구 건물이 많습니다. 다가구 건물은 공단으로 출, 퇴근하는 젊은 청년들, 또는 신혼부부가 선호합니다. 아파트나 빌라보다 가격이 매력적이죠. 어느 동네를 가면 같은 모양으로 지어진 다가구 건물들이 쌍둥이처럼 나란히 서 있습니다. 다가구 건물의 특징 중 하나는 사생활 보장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우리 집 창문과 옆집 창문은 손을 뻗으면, 서로 악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붙어 있습니다. 창문을 열고 생활하는 여름에는 가끔 속옷만 입고 생활하는 옆집 부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으로 신혼부부로 추정되는 젊은 부부가 이사를 왔습니다. 다가구의 특성 중 또 하나는 이웃 간에 특별한 왕래가 없습니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사람들이기에 정을 주기에 시간이 부족했고, 서로 바쁘기에 관심도 없는 편입니다. 우리는 열려있는 창문을 통해 옆집 부부를 슬쩍슬쩍 쳐다보며 나름 추측했습니다.

“여자가 아주 이뻐. 부럽다.”

“남자가 몸이 좋아. 부럽다.”

“여자가 옷을 야하게 입어. 절대 평범하지 않아.”

“혹시, 유흥 업소?”

“그럼 남자는 기둥서방?”     


 심심했던 우리는 옆집 생활을 탐구하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목소리를 들으며 고향을 맞혀보고, 남자의 출, 퇴근 시간과 여자의 씀씀이를 보면서 직업도 추측했습니다. 명탐정이 된 듯 우리는 사소한 것도 놓치는 법이 없었습니다.

“여자가 음식을 안 해.”

“예쁜 여자는 음식을 안 해도 돼.”

“그럼, 나도 음식 안 해도 돼?”

“내일 퇴근할 때 거울 하나 사 올게.”

“그럼, 나는 음식 해야겠다.”

“똑똑하네. 거울값 굳었다. 고마워.”

“굳은 거울 값으로 애들도 좋아하는 치킨을 먹는 것은 어떨까?”

“역시, 당신은 현명해. 현명한 당신에게 나의 닭다리를 양보하지.”     


 부부 사이가 좋은 옆집에도 문제는 있었습니다. 잦은 부부싸움이었죠. 특이하게 옆집의 부부싸움은 집 안의 물건을 창밖으로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더 많이 던지느냐로 부부싸움의 승패를 나누는 것 같았습니다. 창 너머로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에 나는 벽에 붙어 손거울을 사용해 옆집을 훔쳐봤습니다.

“서로 말없이 노려보는 중이야.”

“아무 말도 안 해?”

“아마, 할 말은 미리 다 하지 않았을까?”

“말씀드리는 순간, 여자가 무선 전화기를 들어 창밖으로 던졌습니다. 당황한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 손에 화장품이 들려있습니다. 남자가 화장품을 창밖으로 던졌습니다.”

“비켜봐. 나도 좀 보자.”      


 창밖으로 던져진 물건들은 실시간으로 고물 줍는 할아버지 손으로 들어갔습니다. 옆집의 부부싸움은 일주일에 한 번, 또는 열흘에 한 번 정도로 잦았습니다. 그 덕에 고물 할아버지가 우리 동네에 나타나는

빈도도 점점 늘고 있었습니다. 나도 가끔 쓸만한 물건이 있나 살펴볼 정도였습니다.

“나는 저렇게 싸우면 이혼할 것 같은데 생각보다 잘 살아.”

“옆집 부부가 이혼 안 하는 비밀을 나는 알고 있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

“코에 침 바르며 쪼그려 앉아 손거울로 훔쳐보며 알아낸 비밀이다.”

“비밀이 뭐야?”

“첫 번째, 던져지는 물건들이 값이 없는 물건들이야. 텔레비전이나, 비디오 같은 비싼 가전제품은 안 던진다는 거지. 두 번째, 나도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는데 어제 부부싸움을 보면서 확실히 인지했지.”

“그래서 그게 뭔데?”

“부부싸움이 끝난 후에 창문이 닫혀.”

“그게 뭐?”

“날 더운데 창문을 왜 닫겠어? 상상이 안 가?”     

 

 오늘도 고물 할아버지는 신이 났습니다. 창밖으로 떨어진 냄비와 주전자를 양손에 들고, 흐뭇한 미소와 함께 창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집사람은 쪼그려 앉아 손거울을 들고 옆집을 훔쳐보고 있습니다. 간혹 다리가 저린지 코에 침을 바르면서, 식은땀까지 흘려가며 보고 있습니다.


“어머나, 세상에 정말 창문이 닫히네. 역시 신혼은 신혼인가 보다. 부럽다.”     

매거진의 이전글 벽간소음이 기다려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